※ 본문은 스타크래프트(Starcraft) 스토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저그는 어떻게 프로토스를 압도할 수 있었을까?」
오늘 다룰 주제는 미시경제학에서 나오는 ‘정보경제학’ 이론이다.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스타크래프트 아이콘을 클릭했을 때 로딩 화면 한가운데 나오는 무섭게 생긴 여인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라 케리건(Sarah Louise Kerrigan)
사라 케리건, 그녀는 스타크래프트 세계관의 히로인이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지난번 기업의 ‘수직적 통합’ 전략을 설명한 「저그는 어떻게 프로토스를 압도할 수 있었을까?」의 끝에서 테란·프로토스·저그의 종족전쟁(Brood War) 결과 초월체는 결국 파괴됐고, 케리건이 와해된 저그 종족을 다시 추스려 일으킨다고 했었다.
이번에는 날카로운 외모만큼이나 ‘칼날 여왕(Queen of Blade)’, ‘우주 최고의 썅년(Queen Bitch of the Universe)’[1] 이 우주의 썅년은 나야 등 작중 여러 별명으로 불리는 케리건을 통해 경제학에서 정보이론에 대해 맛보는 시간을 가져보자.[2]
저그에서 인간으로 돌아왔으나…
종족 전쟁이 끝난 이후 케리건은 4년 동안 자신의 행성에서 숨어지낸다. 그러던 중 젤나가(Xel’Naga)의 유적을 조사하던 제라툴은
초월체의 남겨진 기억에 접촉하게 되고, “케리건만이 우주를 구할 유일한 희망이며, 만약 케리건이 죽을 경우 미래는 파멸한다”는 예지를 듣게 된다.
제라툴은 곧 그녀의 옛 연인인 짐 레이너를 찾아가 예지를 전한다.
“그녀의 목숨은 네 손에 달려 있다.”
이후 케리건은 밖으로 나와 테란 자치령을 다시 공격하고 80억 명의 테란 종족이 케리건에게 살해당한다. Queen Bitch 인증
그의 옛 연인인 레이너는 케리건과 맞서 싸우던 중 머릿속에서 인간 모습의 케리건이 “자기를 구해달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살육을 저지르고 있지만 저그에게 오염된 채 칼날 여왕이 되어 자아를 잃고 싸우는 자신을 마음 한구석에서 불행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 후 레이너는 젤나가의 유물이 케리건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동료들과 연합해서 케리건을 공격해 구출하려 한다. 싸움 끝에 레이너는 젤나가의 유물을 케리건에게 작동시키는 데 성공하고, 케리건은 정신을 잃은 채 인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간 모습으로 돌아온 이후 케리건은 요양차 연구소로 옮겨진다. 그녀는 서서히 회복돼 가지만 아직 불안정한 상태를 보인다.
그때 자신을 노리는 함대가 연구소로 들이닥친다. 케리건은 파괴돼 가는 연구소에서 레이너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중간에 다리가 끊어져서 둘은 헤어지게 된다.
케리건은 레이너에게 말한다.
“죽기만 해 봐,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케리건은 레이너가 준비한 수송선을 타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정작 레이너는 적에게 사로잡힌다. 이후 케리건은 지속적인 공격 위협을 힘겹게 막아낸 뒤 수송선에 지친 표정으로 돌아온다. 애타게 레이너를 찾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곧 케리건이 있는 방 TV에서 ‘짐 레이너가 처형되었다’는 발표가 나온다.
이에 케리건은 절망하고 폭주하면서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반드시 복수할 것을 결의한 채 저그 종족을 다시 통솔하러 떠난다.
정보의 중요성
정보(information)는 경제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정보의 정확성과 신속성은 그 나라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바른 정보는 그 나라의 경제를 부강함으로 이끌지만,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는 그 나라의 경제를 끌어내린다.
정보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대부시장이다.
우리는 제1금융권, 제2금융권, 제3금융권으로 내려갈 때마다 갚아야 할 이자가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부업자에게 와서 연 이자 40%에 돈을 빌린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실 아무리 사채(私債)를 썼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제때에 잘 갚는다. 울고 있는 아이들과 가압류 딱지가 붙은 가구들, 그리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지’라며 으름장을 놓는 채권자의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통계적으로 못 갚는 사람은 10명 중 1~2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많은데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돈을 잘 갚은 채무자 입장에선 괜히 이자를 높게 낸 꼴이 된다. 만약 그 높은 이자를 지불하느라고 다른 소비활동을 하지 못했다면 경제활동에도 손해인 셈이다.
그런데 대부업자 입장에서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성실한 채무자인 줄 알았다면 이자를 내려 더 많은 돈을 빌리게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정보 부족으로 과감히 이자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이득을 얻을까? 바로 돈을 갚지 못한 1~2명의 채무자다.
결국 정보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부업체의 높은 이자를 감내하는 8명의 채무자는 1~2명의 위험까지 떠안게 됐다.
모두가 투명하게 정보를 알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절대 돈을 빌리지 못했겠지만, 정보의 불확실성 때문에 대부업자의 돈을 빌릴 수 있는 수혜를 입게 된 것이다. 경제 교과서에 실린 ‘보이지 않는 손’도 정보가 충분히 있어야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다.
인터넷이 충분한 정보를 주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자동차·TV가 외국보다 훨씬 비싸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은 알지 못했다. 똑같은 자동차가 우리나라에서 3,000만 원에 팔린다면, 외국에서는 2,000만 원에 팔리는 불합리한 현상을 보이지 않는 손이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발달된 IT로 인해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는 요즘 그런 짓을 했다가는 계속 조롱거리만 될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계속하고 있다.
케리건과 정보의 비대칭
케리건으로 돌아가 보자.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는 마음에 케리건은 저그 행성으로 돌아가 혹독한 실험 과정을 거쳐 과거의 힘을 능가하는 ‘원시 칼날 여왕’으로 변태한다. 그리고 주변 저그 군주들을 제압해 더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실 죽은 줄 알고 있었던 레이너는 살아 있었다. 납치한 일당의 감옥선에 갇혀 있었는데 그들은 케리건에게 레이너가 처형됐다고 거짓 정보를 흘린 것이다.
만약 케리건이 ‘레이너가 사실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자신과 레이너가 끔찍이 증오했던 저그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보다는 힘을 규합해서 하루라도 빨리 레이너를 구출하려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왜곡된 정보로 인해 케리건은 복수를 꿈꾸며 저그 여왕이 다시 되기 위한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그동안 ‘레이너 구출’이라는 중요한 경제활동을 하지 못했다. 또한 이로써 케리건이 얻은 댓가는 혹독했다.
대부업자도 각 개인의 신용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각각의 위험도에 따라 사람마다 이자를 다르게 매기고, 돈을 다른 경제활동에 사용하면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모르니까 (제1·2금융권에서 거절당하고 온) 채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높은 이자를 매겨 혹시나 떼일 돈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이너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케리건은 곧바로 그를 구출하러 떠난다. 케리건은 레이너를 구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레이너는 케리건이 다시 저그 여왕으로 돌아간 것을 보고 경악한다.[3]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돌아선다.
“우린 이제 끝이야”
단호박
케리건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슬픈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올바른 정보의 중요성을 이보다 더 얘기해주는 스토리가 있을까.
뭐, 경제학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케리건의 칼날 여왕으로의 회귀는 스타크래프트의 대(大)서사시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긴 했다. 곧 출시될 <스타크래프트2: 공허의 유산> 에피소드에서도 칼날 여왕으로 돌아간 케리건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예고된다.
▲ <공허의 유산: 망각> 내 목숨을 아이어에게
만약 케리건에게 레이너 신변 정보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됐다면 사건이 빨리 해결될 수는 있었겠지만 스토리 재미는 없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케리건과 레이너는 어떻게 됐냐고? 그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여기까지만 소개하겠다. 궁금하면 따로 물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