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미국 게임업체 블리자드가 제작한 ‘스타크래프트(Starcraft)’는 영원한 국민게임이다.
대한민국에 발매된 모든 게임을 통틀어 단일 게임으로 이 정도 인기와 영향력을 갖춘 게임이 있었을까.
인간 종족 테란(Terran)과
신비한 외계 종족 프로토스(Protoss),
괴물 종족 저그(Zerg)가 자웅을 겨루는
이 게임의 이야기는 현재 ‘스타크래프트2’로 이어져 세 번째 확장팩 발매를 앞두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 내 스토리에서 가장 위협적으로 묘사되는 종족은 어디일까.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는 테란?
신비한 기술과 발전된 과학을 보유한 프로토스?
둘 다 아니다.
바로 괴물 종족인 저그다.
스타크래프트 공식 스토리에서 저그는 프로토스의 고향인 아이어를 함락하고, 테란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저그가 테란과 프로토스를 압도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경영학 측면에서 본다면 바로 저그가 완벽한 ‘수직적통합(Vertical integration)’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저그가 왜 이렇게까지 강해졌는지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스토리와 함께 수직적통합 전략을 이해해 보자.
프로토스와 저그, 그리고 젤 나가
저그는 고대 종족 젤 나가(Xel’ naga)가 창조한 피조물이다.[1]
젤 나가는 프로토-유전자 진화 공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세계선을 타고 우주를 돌아다니다 ‘제루스’라는 이름의 불안정한 화산 행성에 정착한다.
이곳에서 자그마한 곤충형 동물 저그를 발견한 이들은 유전자 조작 실험을 한다. 하지만 자아의 발달에 따른 위험을 처음부터 제거하기 위해[2] 젤 나가는 저그의 집단의식을 통합해 초월체(Overmind)로 모은다.
모든 종족이 하나의 머리로 이뤄진 체계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
초월체는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상명하달식의 효율적인 명령체계를 확립한다. 그리고 상대방에 기생하고, 이들을 흡수한 뒤 그들의 장점만을 취하는 끊임없는 변증법적 진화를 통해 점점 강한 전투 종족으로 거듭난다.[3]
하지만 젤 나가의 실험은 비극으로 끝난다.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하던 저그가 종족 발전을 위해 결국 자신의 창조주까지 공격하게 된 것. 애미리스
스타크래프트 표현을 빌리자면 우월한 젤 나가의 ‘정수(Essence)’를 얻고자 한 것이다.
계속 밀려오는 저그 물량 앞에 젤 나가의 방어선은 결국 뚫리고 초월체는 젤나가의 지식과 능력까지 손에 넣는다.
그리고 초월체는 흡수한 젤나가의 지식을 통해 저 멀리 다른 우주 어딘가에 프로토스라는 강력한 종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그족의 번영을 꿈꾸는 초월체는 곧 프로토스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이들을 멸망시켜 본인들의 힘에 편입시킬 방법을 찾는다.
이후 저그는 같은 우주 공간에 있던 인간 종족 테란과 프로토스와의 끊임없는 소모전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제라툴이란 프로토족의 영웅이 초월체의 심복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제라툴과 초월체의 정신이 일시적으로 이어져 서로의 기억을 엿볼 수 있게 되고, 초월체는 프로토스의 고향, 아이어의 좌표를 알게 된다.
곧 저그 군단은 프로토스의 본성 아이어에 전군을 동원한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한다. 때마침 내분이 일어난 프로토스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아이어를 점령당해 우주를 떠도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수직적통합이란?
처음 스타크래프트 스토리를 접했을 때 단순한 게임에 이런 원대한 스토리가 녹아들어 있었다는 것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이 생산→훈련→전투의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기업 역시 생산과 판매 등의 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 그럴수록 조직이 점점 커지고 세분화되며, 그에 속하는 기업도 많아진다. 이때 어느 한 기업에 대해 그 밑에 속한 다른 기업을 ‘계열사’라고 한다.
그리고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이 원료 공급부터 제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생산·판매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를 ‘수직적통합(Vertical integration)‘이라고 부른다.[4]
저그를 살펴보자. 저그의 창조주인 젤 나가는 초월체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통합을 의도했다. 초월체가 저그족의 병력 생산과 훈련, 연구와 전투 지시까지 모두 아우르게 된 것이다.
실제 산업에서의 예를 찾아보자. 국내 영화산업에서 투자와 배급, 마케팅, 그리고 극장 상영까지 전부 도맡은 CJ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용어로는 ‘수평적통합(horizontal integration)‘이 있다. 수평적통합은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나 혹은 경쟁의 정도를 줄이기 위해 같은 산업 내의 기업을 통합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것이 수평적 통합의 예다.
기업이 아예 새로운 사업영역에 진출하려는 전략은 ‘다각화(Diversification)‘라고 부른다. 식품회사로 시작한 CJ가 현재 CGV, CJ E&M 등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표로 정리해보자.
수직적통합을 이뤄낸 기업이 제품이 잘 팔리고 건실한 성장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간의 시너지 효과, 즉 상호 상승 효과가 커지게 된다. 같이 크고 성장한다는 의미다.
- 거래비용 감소
- 생산요소 조달 시 수요공급 시기 일치
- 불확실성 감소
- 각종 전략적 대처 가능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저그의 예로 돌아가보자. 젤 나가의 의도대로 저그는 여러 개의 개체가 초월체라는 하나의 집단지성으로 이어져 조직 간 거래비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또 한 조직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다 보니 저그의 모든 병력은 해처리에서 나오는데, 생산해야 하는 병력마다 따로따로 건물을 지어야 하는 프로토스에 비해 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계획수립 → 유전자 연구개발(R&D) → 병력생산 → 전투’라는 일련의 과정이 전부 초월체를 정점으로 한 조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테란과 프로토스 간 격화되는 전쟁 상황에도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물론 수직적 통합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조직 안에 모든 구성원이 있기 때문에 조직 내 ‘조율비용’이 증가하고, 다른 공급자로의 ‘전환비용’도 증가하며, 서비스 향상을 위한 동기 하락, 독과점으로 인한 ‘불공정거래 가능성’과 ‘경직적 조직 운영’등이 단점으로 꼽힌다.
쉽게 말해 조직을 관리하기 힘들고 모든 것을 안에서 처리하다 보니 서비스를 향상시키겠다는 의지도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시장지배자로서의 여러 독과점과 이로 인한 폐해도 심해진다.
국내 영화산업에서 CJ와 롯데가 영화 배급 및 상영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이에 대한 폐해가 자주 지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토스의 고향 아이어를 정복한 저그는 그 후에 어떻게 됐을까. 여러 전투를 거친 뒤 저그의 우두머리 초월체는 테란과 프로토스 연합군에 의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5]
그리고 구심점을 잃은 저그는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성을 상실한 채 단순한 짐승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초월체의 죽음으로 인한 저그의 와해는 수직적통합을 시도한 기업이 만약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으면 한 계열사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열사가 동시에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겠다.
나중에 ‘스타크래프트2’ 스토리에서 초월체를 대신해 캐리건이 저그 군단을 재건하고 조직을 융합하긴 하지만 이것은 훗날의 얘기다.
덧붙여,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저그로 플레이한다는 것은 플레이어가 초월체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바로 네가 수직적통합의 정점인 것이다.
가슴 뛰지 않는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묵묵히 군단을 위해 희생한 백만 저글링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
아님 말고
- 지금은 멸망했다. 하지만 이들이 남겨놓은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게임 내내 영향을 준다. ↩
- 이들은 저그에 앞서 프로토스를 창조했으나 예상보다 그들의 자아가 너무 빨리 커서 제어에 실패한 바 있다. 저그는 젤나가의 두 번째 창조 작품 ↩
- 이 과정에서 그 생물의 정수(Essence)를 뽑아내서 자신의 진화에 활용한다. ↩
- 수직적통합은 소비자 접점의 효율성을 목표로 하는 ‘전방통합(foward integration)’과, 원재료 구매 등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후방통합’으로 구분된다. ↩
- 정확히 얘기하면 프로토스의 영웅 테사다르가 공허의 힘을 이용, 초월체와 자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