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세이는 보톡스를 맞는다. 맞다. 바로 당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조지 R.R. 마틴의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원작으로 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조프리 엄마’ 겸 ‘짝손이의 그녀’ 세르세이 말이다.
정확히는 ‘세르세이’를 연기하는 레나 헤디다. 헤디는 보톡스를 정기적으로 맞음에도 〈왕좌의 게임〉에서는 명연기를 펼친다. 촬영 시즌이 아닐 때만 보톡스를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왕비가 되려면 보톡스를 맞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감정을 전달하는 표정
TV에서 어느 가수의 무대를 보았다. 정말 노래를 잘했다. 그런데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어떤 이질감일까. 금방 깨달았다. 들리는 감정과 보이는 감정이 달랐다.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느낌과 얼굴에서 보이는 표정이 일치하지 않았다. 왠지 과한 시술이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낸다. 타인의 표정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따라하며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공감하고, 몰입한다. 그렇게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폴 에크만은 7년 동안의 연구 끝에 표정이 인류 공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이야기는 표정은 타고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회나 문화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개인이 짧은 시간에 노력해서 자신만의 표정법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즐거울 때 입술을 오므리는 자신만의 표정을 만들 수 있을까? 굳이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스피드왜건 : 폴 에크만을 모델로 한 〈라이 투 미〉라는 미드가 있지!)
자신만의 표정을 만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표정이 다르니 공감하기 힘들고, 공감하기 힘드니 거리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표정을 보면서 이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느라 뇌가 바삐 돌아갈 것이다.
내가 세르세이의 연기를 보면서 암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연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감정과 표정은 인류 공통이다. 즉, 인간의 표정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 이소룡이 ‘아뵤!’ 할 때의 표정, 마이클 잭슨이 골반을 탁! 튕길 때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표정은 함축적이다. 우리의 뇌는 순식간에 얼굴을 인식하고, 해석한다. 백 마디 말보다 잠깐의 표정으로 더 강력하게 소통할 수 있다. 표정 없이 아름다운 것보다, 자연스러운 표정이 더 예술적이다.
대중 앞에 서는 이로서 보다 아름다운 혹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게, 혹은 대중이 원하는 게 아름답기만 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꼭 아름답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냥 넘어가자.)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 보톡스는 주름을 예방하기도 하지만 과하면 표정이 어색해진다. 과유불급이다. 대중예술인이나 그들을 상대하는 의사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