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갑자기 좋은 직장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간다고 한다. 예전에 편하게 술 마시던 어떤 지인이 스타트업을 하나 차리더니 코스닥 상장(IPO)해서 몇천억대 부자가 되어 페라리를 끌고 다닌다고 한다. 외국계 투자자로부터 몇천억 투자 받은 회사의 CEO가 예전 직장의 부하 직원이다. 나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을까? 내가 하면 더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들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몇백억 투자 받았다는 얘기는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몇 년 전 잘 다니던 회사 때려치우고 스타트업으로 옮겨봤던 사람 입장에서, 그리고 최근 다시 스타트업을 시작해 몇 달간 약 100여 개 이상의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고 이야기한 경험을 토대로 이 바닥 현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저 기사에서 접하는 스타트업 관련 성공 스토리, 장밋빛 판타지보다는 사실적일 것이다.
2008년 어느 날, 갑자기 같이 다니던 회사 그만둔 아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저 창업했어요.”
“어 그래? 뭐 하는데?”
“게임 만들려구요.”
“그래, 놀러 갈게. 뭐 필요한 거 없냐?”
“아직 사무실도 없는데요. 엄마네 학원에 얹혀 있어요.”
이미 예전부터 잘 알던 친구지만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창업했다니 한 세 번 창업했다가 망했던 경험이 있던 나는 이 고행길로 들어온 동생이 안쓰럽기도, 대체 뭐 하는지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엄마 학원 구석에서 독립(?)하고 나서야 찾아간 그 사무실은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책상 몇 개와 2층 침대가 전부인, 닷컴 시절(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내 주변 지인들이 창업했다고 초대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사무실에 앉자마자 약 2시간 동안 그 친구는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지, 해외에는 어떤 사례가 있고, 어떻게 시장을 확장하고 어떤 일들을 할 것인지 등을 쉬지 않고 침 튀겨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난 게임 마케팅과 관련된 예산, 프로세스, 시스템 등은 알았지만 오히려 일반 IT 서비스들에 대한 이해가 더 높았으며 실제 게임 만드는 과정을 잘 몰랐었기에 매우 흥미로운 만남이었다.
그게 국민게임 ‘애니팡’을 만든 스타트업인 ‘선데이토즈’의 초기 모습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NHN(지금은 두 개의 큰 회사로 분리되었다)의 팀은 네이버와 한게임이라는 서비스의 마케팅, 브랜딩, UX/UI 디자인, UI 개발까지 관련된 560명 인원이 있는 본부 단위의 경영전략 조직이었다. 그때 막 새 일들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열심히 직장 생활하며 집 관련 대출금을 갚던 시절이었다. 그 이전에는 네이버 블로그/카페 같은 SNS, 커뮤니티 서비스와 기술적 시스템이 필요한 디자인 업무를 했던 터였다.
어쨌든 은퇴하긴 했어도 전직 디자이너이기도 하니 그 친구가 부탁한 ‘CI(Corporate Identity)’부터 시작해서 명함, 회사소개서 등 부족한 걸 채워나가는 간단한 일을 회사 퇴근하고 조금씩 도와주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매출도 미미한 데다 당연히 먹고 살기도 힘든 초기 스타트업이다 보니 내가 도와주는 일로 돈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부족한 것 도와주는 게 재미있어 시작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작업할 모니터 하나 사달라’는 부탁을 하고 책상도 없어 아일랜드 식탁 위에 카드로 긁은 컴퓨터 하나와 컬러프린터, 스캐너, 팩스 겸용인 복합기 하나 사다 놓고 일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실 난 그 회사 주식 한 주 없고 공동 창업자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초기시절부터 회사로서 필요한 각종 시스템들과 필요한 부분들을 닥치는 대로 하나씩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대놓고 “와서” 도와달라는 부탁도 받았다. 사실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가족을 위해 대출 받은 집 덕분에 억 단위 빚이 있었고, 당장 내 월급을 포기하면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인 데다, 다른 큰 제조 IT 회사의 오퍼도 받았다. 솔직히 어찌 보면 내가 옮기기엔 매우 작은 회사이기도 했다. 게다가 옮길까 고민이라고 주변 지인에게 얘기하면 “미쳤냐, 그 좋은 회사 남들은 못 들어가서 난리인데 왜 그것도 후배가 사장이라는 회사로 옮기냐?”라는 말들뿐이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신규 사업 프로젝트도 발 담그고 있던 상황인지라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도 하던 일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인수인계 절차를 밟다 보니 실제로 그만두기까지는 약 8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더불어 아버지 병 간호도 해야 했는데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말 이때 아니면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사이 선데이토즈는 매출 1억도 안 되던 회사에서 10억대로 매출이 늘어났고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도 받은 데다 원래 받던 연봉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먹고 살고 매월 대출금 갚을만한 정도의 급여는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그리고는 그냥 옮겨 버렸다. 예정된 승진 기회와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 끊임없이 많은 복지들과 주변 시선들, 그리고 반대를 뒤로한 채.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많은 상황이 당연히 나와 같진 않을 테고 만약 그 당시 이성적·전략적으로 결정했더라면 지금의 나와 같은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카오톡 같은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했던 사람, 소위 초창기에 고생해서 많은 스톡옵션 및 주식과 함께 일종의 ‘대박’난 사람은 나와 매우 비슷하게 ‘그냥’ 옮겼던 사람들이 내 주변의 대부분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꼭 나처럼 이렇게 하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예전 벤처, 닷컴버블 시절도 겪어 봤고, 초기 스타트업의 거의 모든 경험을 먼저 해본 입장에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1. 지금 회사의 도피처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일이 시시하고, 상사에게 내 의견이 묵살되고, 전체적으로 지금 다니는 회사가 불만족스럽고 더럽고 치사한 상황인가? 하지만 아무리 내 능력을 못 알아보는 상사라 한들 최소한 주변 동료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 자신도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옮기기 전의 회사에서도 일종의 롤러코스터 같은 굴곡의 경험이 있다.
여러 피곤한 개인사 틈바구니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번아웃(Burn-out)’이 찾아오기도 했고 회사 내부의 평가에서도 호불호가 갈린 적도 많다. 하지만 스타트업으로 옮겨가는 것과는 상관 없이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의 퍼포먼스나 그 이외 무엇이든 특정 분야의 인정은 받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새로운 스타트업이 본인의 직급 상승과 일종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도피처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지금 회사에서도 남들에게 최소한의 인정은 받을 수 있을 만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내 인생을 걸고 올인할 수 있는 주제이거나, 정말 나의 장단점을 잘 아는 친구가 진정성을 가지고 인생을 올인한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것이 맞다.
당시 내가 옮긴 스타트업의 대표와는 사실 같은 직장 이전부터 같이 알고 일했던 사이이기도 하다. 닷컴시절 큰 웹에이전시에서 근무하던 때, 내가 다니던 회사의 일들뿐만 아니라 이후 다른 회사를 창업했을 때, 개발과 디자인 업무도 서로 맡기어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었고, 내 지인 또한 그 친구의 룸메이트였기에 장단점을 매우 잘 알던 친구였다.
단순히 회사에서 그저 친한 동료보다는 마치 결혼에 가까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장단점에 대한 이해와 감내, 오래 쌓은 신뢰가 없다면 이 관계가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스타트업 사장이란 때로 회사를 위해 동료에겐 개자식이 될 결정을 내려야 하고, 당장 나 자신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감내하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할 때도 매우 많다.
회사야 때려치면 되고 연애는 헤어지면 그만이라지만 이건 결혼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관계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듯 스타트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절대로 ‘직장’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간혹 잘못되면 본인 경력의 오점이 됨은 물론 실패의 책임에 대해 남 탓만 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실패의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있다면 사실 당신은 스타트업에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2. 당장 내 건 아닐지언정 함께 나눌 파이를 키운다고 생각하라
많은 친구가 스타트업으로 이적하면서 스톡옵션 등 현실적인 조건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그래, 자본주의 사회고 열정페이가 가득한 지금 당연한 대가를 받으면서 일하는 게 ‘직장인’으로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으로서 당연하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아마추어 시장이며 마이너리그다.
전체 스타트업 중 약 0.2%가 벤처캐피털을 통해 투자 받고, 이른바 투자 이전에는 ‘거지’와 다름없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 제아무리 좋은 사업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투자할 수 있는 자원에는 매우 큰 한계가 있으며, 이 중 가장 많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른바 ‘인건비’이다.
당신이 창업한다고 생각해보자. 수중의 1억 원을 투자해서 회사를 차렸다. 4명이 150만 원의 인건비, 임대료나 PC 등 온갖 비용 다 포함해서 300만 원 정도 나간다고 치고 나머지 경비를 지불하면 아래와 같다.
(300만 원 × 4명) × 12개월 ≥ 1억 원
대개 1년도 버틸 수가 없다. 보통 인큐베이터들이 시드(seed) 단계라 부르는 초기에 투자하는 금액이 1억 원 남짓임을 감안할 때 스타트업은 정말 돈 없는 것이 당연하다. 3년 전 이 스타트업 업계에서 “로켓에 올라타라”는 채용 공고를 처음 올린 사람 중 하나지만, 최근 아직 궤도를 계산하기도 전에 제대로 발진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로켓을 자처하는 곳이 많아졌다. 게다가 투자유치 받아 이미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스타트업은 당신에게 오라고 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는 걸 명심하자.
매출이 급상승하는 상황이라면 옮기는 데 다소 안심이 될런지는 몰라도 그런 회사라면 데스 밸리(Death Valley)라 불리는 초기 단계는 이미 넘어선 시점이다. 당신이 받을 수 있는 파이는 작을 것이며 생각하는 그 로켓은 이미 떠났을 확률이 높다. 이른바 직원으로서의 합류인 것이지 결코 로켓 조종사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요구할 돈에 대한 고민은 잠시 내려놓아야 나중에 오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큰 곳이 바로 스타트업이다. 단순히 재무적 투자 관계를 떠나서 이 회사가 매출 몇백억, 몇천억의 매출과 그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가져야 그중 몇 %의 지분이라도 의미 있지 않겠는가. 이미 경험해본 친구들은 잘 알겠지만 앞서 결혼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했듯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결혼 관계가 성립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3. 내가 충분히 도전적인지 생각해보고 옮겨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익숙하다는 생각을 놓치곤 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실제로 신사업과 관련된 진취적인 일을 많이 했다 치더라도 영업, 매출관리 등 회사가 살아남기 위한 비즈니스와는 다른 ‘기획’과 관련된 일들만 했을 확률이 높다. 그전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부서들의 도움과 노력에 의해 ‘내가 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런 업무 환경’과는 작별이다.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온갖 터프(tough)한 경험과 날 것(rare) 상태의 연속이다. 큰 회사에서 겪던 정치적 갈등이나 위계적 구조와 의견 묵살 정도는 애교인 경우가 많다. 최소한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는 제대로 굴러가는 상황이니 그런 것 아니던가. 생각보다 우리는 기존에 일하던 시스템에 익숙해서 정말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에 남겨졌을 땐 모래성을 쌓는 것조차 어렵다. 이런 부분이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많다.
스타트업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 회사에 기대하는 ‘기본’이라는 게 있었다면 스타트업은 그 ‘기본’조차 없다. 당장 없는 그걸 만들어내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몫이다. 그건 내 일이 아니고 누군가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스타트업에 공동 창업자나 핵심 멤버로서 생각하고 이직한다면 그건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며 주변의 동료들을 위해서 세워야 할 탑이다.
이걸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온 것에 익숙했던 경험(특히 대기업이나 컨설팅 등 큰 회사에서)이 많은 사람이라면 당신의 지식은 오히려 쓸모없을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지만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에 맞는 가볍고 당장 가능한 솔루션이 아니면 매우 어렵다. 개발이든 경영이든 마찬가지며 당장 ‘린(lean)’하게 실행할 게 아니면 대기업에서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메카, 소규모 초기 투자와 교육을 실시하는 미국의 유명 인큐베이터인 Y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서 전설에 가까운 폴 그레이엄(Paul Graham) 선생께서 한 말이 매우 인상 깊다.
“규모가 안 나오는 일을 해라(Do Things That Don’t Scale).”
선데이토즈에서 가장 초기에 했던 일 중 하나는 일에 지친 친구들이 휴가 신청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게 구글 문서로 간단한 인사 시스템과 휴가 체계를 만들었던 일이다. 외부의 거창하고 무거운 솔루션은 당연히 비싼 데다 필요도 없다.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는 일 중 먼저 필요한 것부터 닥치는 대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게 스타트업의 일이 ‘실행’되는 모습이다. 내가 개발자든 아니든 상관없다. 리소스(인력, H/W, S/W)는 항상 모자라니까.
애니팡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당시 인원으로는 정말 턱없이 모자라 매일 밤을 새는 그 헬게이트 틈바구니에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도 “로켓에 올라타세요”로 유명했던 간단한 채용지원 페이지를 만들어 여기저기 올리고, 주변에 전화해가며 사람을 구하는 일이었다. 누가 해달라는 얘기 안 했지만 당장 필요했기에 했다.
누군가의 지시사항에 의해 만들었다면 이런 일들은 ‘실행’되지 않는다. 큰 방향에 대해 경영진과 코드를 맞춰두었다면 당장 팀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어야 스타트업의 멤버로서 적합한 사람 아닐까.
4. 자유로운 업무환경과 막강한 권한의 뒤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외부에서 보는 스타트업은 매우 자유롭고 혁신적이며 소통이 편안한 분위기에 기존 회사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복지로 가득 찬 달콤한 선물상자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혁신하겠다는 힙(Hip)한 분위기에 기존 다니던 직장과는 차원이 다른 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그건 그저 겉모습이다.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마저 없다면 내부에서 정말 견디기 힘들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나중에 회사가 상장(IPO)까지 하면서 상장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보통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이라고 하며, 각각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상호통제할 수 있도록 조직별 분리시켜야 한다) 회계팀, 재무/IR팀, 인사팀, 경영지원팀, 마케팅/홍보팀 등등을 점차적으로 분리해서 세팅해야 했지만, 그 이전에는 30명이 될 때까지 모든 경영 관련 일들은 내가 혼자 해야만 했었다. 실로 막강한 권한이 아닐 수 없다.
말이 쉬워 혼자서 하는 것이지 막상 이런 상황에 여러 이슈가 겹쳐서 닥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 역량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매일매일 받고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을 회피할 곳 역시 없다. 비단 이런 경영 관련 일뿐 아니라 서버개발이든 클라이언트/프론트 개발이든 어느 직무를 막론하고 다 똑같은 상황이다.
만약 내가 책임진 부분에서 큰 사고라도 터진다고 가정해보자. 큰 회사야 이런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할 팀이 있겠지만 이건 나 혼자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결해야 한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누군가의 악의적 고발 민원으로 사법기관의 조사요청을 받았는데 대응하기 위해 수십 페이지의 답변서류를 쓰고 새벽에 퇴근하고 그 다음 날 9시에 조사받으며 제출하고 나서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적도 있다. 모든 것이 다 내 일인 셈이다.
소위 스타트업들의 실험적인 복지들, 회사에 수영장이 있네, 야근이 없네, 집에서 재택할 수 있네, 해외로 워크샵을 가네 같은 건 사실 이런 무거운 책임에 대한 최소한의 위로와 보상인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지도, 이상적이지도 않을 것임을 장담한다. 스타트업 생활이란 베트남에서 대규모 미군 화력과 싸워야 하는 게릴라전이며, 정글 숲을 헤치며 내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터다.
나중 되면 익숙해지겠지만 창업을 3번 정도 해본 나조차도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전에 있던 큰 회사에서 내가 숫자 하나 바꾸면 자회사의 직원들이 해고되는 상황도 겪어보고 어떤 의사결정 하나로 커다란 부서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상황도 자주 보았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선 직접 내 손으로 어떤 일들을 직접 결정해야만 한다. 클릭 한 번과 메시지 한 번에 그 여파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안에 상의는커녕 내 스스로 당장 결정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의 연속이다.
5. 이상을 바라보고 미래에 투자하기 위해 옮기지만 현실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으로 가야만 한다면, 그런 마음의 소리가 자다가도 들리면, 현재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은 무수히 많은 문제를 해결할 자신이 있다면, 어디 큰 회사의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되어 답답하게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인생 올인하더라도 정말 도전해야만 하는 시간이라면 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 전에 일단 현실적인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스타트업에 멤버로 합류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장거리 마라톤에 가깝다. 100m 달리기의 ‘스퍼트를 올리기 위해 가는 시간’은 어찌 보면 매우 짧지만 벤처캐피탈의 막대한 자금이나 어떤 운 좋은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스타트업은 매우 길고 힘든 여정일 확률이 높다. 로켓 연료라고 해봐야 저기 화성 갈 정도밖에 없는데 궤도를 잘못 잡았다면 저 넓은 우주를 추진력 없이 유영하면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따라서 스타트업으로 옮기기 전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인지 먼저 생각해보기 바란다. 하다못해 이 스타트업에서 월급 제대로 못 받는 상황이 지속되더라도 당장 어디 취직할 수 있거나, 다른 일이라도 하면서 이 일을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지는 비단 대표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멤버들도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선데이토즈도 초기에는 자본금 마련을 위해 온갖 게임 관련 일을 하면서 자체 게임 만들 준비를 2년 가까이 했다. 주변에서는 대규모 투자 유치 소식과 함께 굉장히 빠른 성장 이야기가 들려 오지만 사실 이건 나에게 해당되는 일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오히려 급격한 성장은 치명적인 독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
여러 차례 투자 받은 대표분들의 얼굴에도 항상 ‘아 이제 어떡하지’라는 근심을 지우기 힘들다. 일단 연료 공급을 받은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하고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exit)를 위해 바삐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생각했던 대로 안 풀리고 거의 원점에서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회사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맞물려 동일시 될 때 같이 일하는 대표, 동료들과 이 도전을 계속하기 위한 깊은 고민과 방법을 지속적으로 함께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고민조차 없이 스타트업으로 갈 것이라면 결코 같은 여행을 하는 멤버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그저 ‘직원’일 뿐이다.
스타트업이란 작은 회사 입장에서도 감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적조건을 대표와 솔직하고도 깊게 미리 이야기해둘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솔직해져야 대표와 같이 일하는 팀 입장에서도 최소한 그 금액을 위해서는 무조건 수익을 내야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부분은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믿고 기다려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떤 방법이든 그 시간을 늘리며 도전할 수 있다면, 그건 자신에게 더 좋은 성공의 기회가 올 수도 있는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은 매력적인 곳
가끔가다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 같이 일했던 대표의 제안을 거절하고 원래 다니던 회사에 계속 다녔더라면? 보통 직장인들, 특히 고연봉 엔지니어의 연봉을 생각했을 때 1억씩 몇십년을 받아도 그렇게 버는 돈과 스타트업에서 스톡옵션 등을 통해 버는 돈에는 매우 큰 차이가 난다.
재테크, 주식투자의 귀재라 한들 수익률로 얻을 수 있는 돈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오히려 확실한(물론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식견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운도 많이 따라야겠지만) 로켓이라면 고객이 원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열심히 만들어 나가다 보면 상대적으로 돈을 잃을 리스크는 적다. 어디 직장의 부속품으로 살면서 나이 들어 구조조정, 퇴직 걱정하며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기회인 것은 분명히 맞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할 때 수억대 세금을 내며 내게 찾아온 이 기회들은 어찌 보면 위에서 얘기한 것들을 그저 두려워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던 나 자신이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번의 창업 경험과 망업 경험이 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힘든 시간이었다. 짧지만 다채로운 이런 경험이 최근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청하는 분들께는 부족하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조언을 드리려 한다. 나뿐 아니라 내 주변 선배, 동료, 후배 등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조언은 외국의 먼 사례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와 닿을 것이다. 사실 새로 시작하는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는 아니지만 일종의 콘텐츠 테스트로서의 강의를 만들고 운영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유니콘 네트워크라는 교육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서울 강남권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공간에서 이런 교육과 만남의 장을 열어보려고 한다. 이 교육의 주체는 어떤 교육을 사업의 목적으로 하는 회사도 아니요, 투자자나 어떤 이권을 바라고 도와주는 곳도 아닌, 바로 우리가 서로 배우고 이끌어주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한다.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용기를 내어 시작하려 하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자신의 경험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런 강의에서 직접 이야기하셔도 좋다. 관심 있고 함께 참여하시거나 도움 주실 분들은 언제든지 [email protected]으로 연락해주시기 바란다.
원문: Yann H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