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본가에 가서 닭도리탕을 먹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닭도리탕을 먹으러 본가에 다녀온 거겠죠. 닭을 사러 마트에 들렀다가 아내와 사소한 의견 차이를 보였습니다. 아내는 “닭볶음탕이 맞다. 도리(鳥·とり) 자체가 새를 뜻하는 일본말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었고, 저는 “그건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는 견해였습니다.
불분명한 ‘도리’의 어원
일단 감자탕처럼 닭도리탕 자체가 그리 뿌리 깊은 음식이 아닙니다. 옛날 신문 기사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감자탕을 검색해 보면 1982년이 돼서야 기사에 처음 등장합니다.
그전까지는 닭도리탕이 그리 익숙한 음식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설렁탕은 1922년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는 게 반증입니다.
• 당시 기사가 바로 ‘닭볶음탕’ 파(派)에서 흔히 주장하는 내용.
심지어 이런 웃지 못할 造語(?)까지 생긴다. 닭을 일본어로 「도리」라고 하는데 음식점 간판데 「닭도리탕」이 있는가 하면 「모찌」가 떡인데 「모찌떡」이라고 부르는 판국이다.
그런데 일본어 위키피디아를 보면 닭도리탕은 일본어로 그저 ‘タットリタン‘입니다. 일본 관점에서 외래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카타카나로 표기한 것입니다. 그저 “도리는 새를 뜻하는 일본어 도리에서 유래한 것 같다. 이 때문에 국어 순화를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닭볶음탕’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トリ」は日本語の「鳥」に由来するらしい。 このため国語醇化を推進する立場からこれを「タッポックムタン」と呼びかえるべきだとする声もある。)”고 앵무새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죠.
그러면 ‘국어 순화’ 최고봉인 국립국어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묻고 답하기‘에 올라온 답변을 보면:
질의하신 ‘도리’에 대해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국어원 누리집 자료실)에서는 ‘닭도리탕’에서 ‘도리’가 일본어 ‘とり[鳥]’에서 온 말이므로,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으로 순화하였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원에 대한 하나의 견해일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도리’가 일본어 ‘とり[鳥]’에서 온 말일 가능성이 있는 이상, 이 말을 순화하여 쓰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약하면 ‘그럴 확률이 있으니까 순화해 쓰는 게 맞다니까요’ 정도가 될까요? 자세한 어원은 모르겠지만 일본어 느낌이 나니까 쓰지 말자는 겁니다. 이어지는 문단은 더 재미있습니다.
또 이와 같은 ‘순화’ 차원과 더불어 사전 정보를 참고하면 “닭고기를 토막 쳐서 양념과 물을 넣고 끓인 음식. 경우에 따라 토막 친 닭고기에 갖은 양념과 채소를 넣고 먼저 볶다가 물을 넣고 끓이기도 한다”와 같이 뜻풀이될 수 있는 이 대상을 ‘닭도리탕’이 아닌 ‘닭볶음탕’으로 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며, 지금은 ‘닭도리탕’의 순화어인 ‘닭볶음탕’이 실제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는 점도 헤아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하자면 “근거는 없지만 우리가 여태 닭볶음탕이 맞다고 해왔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쓰니까 이제 닭볶음탕이 맞다니까요”가 되겠습니다.
닭볶음탕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닭도리탕
이런 논리에 불만을 품은 게 제가 처음은 아닐 터.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 씨(57)는 2013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음식이야기’ 닭도리탕 편>에서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에서 비롯된 말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면 ‘짜장면’처럼 복권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하고 썼습니다.
오늘도 어머니는 “얘는 이렇게 국물이 있는 걸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저는 오늘도 닭도리탕에는 당연히 국물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데, 닭볶음탕이 유행하면서 식당에서 파는 이 음식에서는 국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닭도리탕을 닭도리탕이라고 부를 자유를 원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부추전이 정구지 찌짐을 결코 대신할 수 없듯, 제게도 엄마가 만들어준 그 요리를 닭볶음탕이라고 부르면 절대 그 맛이 살아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족발도 되고, 살사소스도 풀어쓰면 소스(salsa)+소스인데 닭도리탕이 닭닭탕 또는 닭새탕이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요?
원문: Kini’s Cre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