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한 대륙을 지배해 권좌에 오른 이가 있었다. 대륙 밖까지 크게 명성을 떨쳤으며 누구도 그에게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부와 권력은 막강했다. 사람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권좌 위에서 깊은 회의에 빠진다.
더 이상 인생이 즐겁지 않다. 무한히 반복되는 전쟁에 질렸고, 하나 둘씩 떠나보낸 전우들을 바라보며 괴로웠다. 떠난 전우들을 위해 외치던 구호도 이젠 지쳤다. 이 세계를 떠나 편히 쉬고 싶다.
그는 곧바로 창고에 쌓인 호화로운 병기와 재물들을 파괴해버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마치 중세 유럽이나 춘추전국 시대의 중국의 일화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06년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현실세계가 아닌 인터넷 속 0과 1의 세계, 인터넷 게임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고작 게임에서 일어난 일’치고는 생각 외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 되었다. WOW(World of Warcraft) 게임의 유명한 한국인 유저였던 drakedog의 게임 속 자살은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에 퍼졌고, 한 미국인은 이를 주제로 ‘가상세계에서의 자살’이라는 논문을 쓰기까지 했다. 많은 팬들이 그의 동상을 게임 속에 만들어줄 것을 WOW의 제작사인 블리자드에 요청하기도 했는데, 캐릭터가 아닌 유저를 기념하려는 시도는 최초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의 ‘자살’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것이 변질된 가상세계에 대한 반항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계속해나가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반복해야 하는 지루한 과정들, 가상 세계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상업적 운영… 현실에서 이탈해 가상세계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했지만, 그 가상세계가 현실 못지않게 피곤하고 지루하게 변해버려 게임이 유희가 아닌 노동이 되어버린 세태를 비난하는 강렬한 선언.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MMORPG(대규모 다중접속 인터넷 롤플레잉 게임)의 시작은 현재와 같지 않았다.
호빗
유년기에 아버지가 죽고, 그 이후 어머니가 개종했다는 이유로 친척들에게 버림받은 젊은이. 가난한 생활을 하다 12세에 어머니마저 잃었던 젊은이. 그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하여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죽는 것을 목격해야 했고, 스스로도 전장에서 얻은 열병으로 인해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고비를 겪기도 했다.
종전 이후 옥스퍼드의 교수자리를 얻은 그는, 특출한 언어학자로서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도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유년기와 청년기에 겪었던 불행은 그에게 만성적인 우울증을 안겨주었다. 우울증이 도져 의욕 없이 양탄자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양탄자에 뚫린 구멍을 보고 번뜩이는 영감을 얻었다.
우리가 모르는 중간계라는 세상이 있고, 거기엔 호빗이라는 키가 작은 종족이 살고 있다.
공상은 우울한 자들의 것. 현실의 참혹함을 인생 내내 보아왔던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나간다. 인간 외에도 여러 종족들이 뭉쳐서 살아가는 세상. 선과 악의 대립. 그리고 세상을 구하기 위한 모험. 스스로는 무력하지만 결국 세상을 구해내는 데 큰 기여를 하게 되는 호빗족.
그의 우울의 깊이만큼 이야기는 방대해져갔다. 그는 독자적으로 2~3개의 언어를 창조해냈고, 세상의 기원부터 새로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기획한 작품은 10년의 집필과정 끝에 1000p 분량의 ‘실마릴리온’ 그리고 500p 6권 분량의 우리가 영화로 잘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으로 완성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를 매료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지루하고 험악한 현실과는 다른, 꿈과 희망 그리고 모험이 있는 세상.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데 그치지 않고, 소설의 설정을 통해 맘껏 공상을 펼칠 수 있었다.
판타지의 아버지 J.R.R. 톨킨, 그의 독특한 세계관과 설정은 여러 사람에게 차용되어 많은 이야기들을 재생산시켰다.
Dungeon & Dragons
‘반지의 제왕’ 팬들은 한 번 읽고 잊는 대신 평생 동안 그 스토리와 세계관에 매료되어 살았다. 팬들이 서로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그 세계관을 차용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고, 극중 등장인물의 복장을 모방해 차려입은 코스츔 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작품 속 전쟁을 재연하는 등의 이벤트도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사람들은 이런 망상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다. 그럴 방법이 없을까?
머릿속으로 공상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모험을 하고, 적들과 맞서 싸우고 세상을 구하는 체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꿈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통해 구현되기 시작한다.
1974년 판타지 세계관에 규칙을 도입하여 게임화한 최초의 RPG였다. ‘Table talk’라는 말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하며 정해진 룰과 세계관 속에서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연기하고 모험을 하는 가상체험. 한 명의 게임마스터가 정해놓은 시나리오 속에서 3~4명의 플레이어들은 마치 자신이 중간계의 전사인 것처럼 고대의 보물을 찾고, 사악한 용을 사냥하고, 심지어 국가를 세워 대규모전쟁을 할 수도 있었다.
각 캐릭터들에게는 체력, 근력, 순발력 등의 수치가 주어졌고, 전투는 그 수치에 주사위를 굴린 값을 계산하여 공격성공 여부와 상대방의 피해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테이블 위에서 주사위를 굴려가며 대화를 하는 방식이라 지루하게 여긴 사람도 많았고,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았지만 열성적인 판타지 마니아들에게는 굉장한 환대를 받았다.
자기 자신이 신비한 세계 속에서 선택한 성별과 외모 그리고 스스로 지은 이름에 따라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었다. 마스터와 플레이어, 그리고 플레이어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긴 했지만, 그런 갈등 과정조차도 가상세계에 현실성을 더해주는 요소로서 받아들여졌다.
가장 짜릿한 것은 느슨한 룰 속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상상해서 스스로 결정한 모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마스터에게는 세상을 통제하는 신의 만족감을, 플레이어에게는 다른 세상을 모험하는 탐험가로서의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MUD
Dungeon&Dragons가 소수의 마니아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진입장벽이 컸다. 직접 모여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공간상의 제약. 주사위를 던져 계산해야 하는 번거로움. 1~2시간의 플레이를 위해 며칠이나 스토리를 짜내야 하는 마스터의 고생. 이는 마니아들에겐 참아낼 만한 일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겐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MUD(Multi User Dungeon)란 형식의 게임이 PC통신을 통해 시도되었다. 기본적인 룰 등은 D&D 같은 TRPG(테이블 토크 RPG)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그전까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던 단점들을 상당부분 해결된 형식이었다.
MUD에선 인터넷 접속을 통해서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복잡한 게임 룰을 신경쓸 필요 없이 그저 짜여진 시스템을 따라 쉽게 즐기면 되었다. 무엇보다 복잡한 공식에 따른 계산을 할 필요가 없다는 수학적(?) 편의성 등이 인기의 요인이었다.
그림 하나 없이 텍스트만으로 진행되는 게임이었고, 행동 모두를 손으로 직접 타이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동북으로 이동한다, 오크를 공격한다 등), 그 전까지 테이블에서 이루어지던 TRPG에 비하자면 혁명과도 같았다.
1990년대 당시 시간당 부과되던 PC통신 요금 때문에 MUD게임에 빠져 100만원에 육박하는 요금을 청구 받거나, MUD 게임을 하다가 고시에 떨어지거나, 심지어 직장에서 게임을 하다가 해고당하는 등 게임중독이 최초로 사회문제로 이슈화되기도 했다.
바람의 나라, 울티마 온라인
MUD게임이 점점 인기를 끌자 이를 그래픽의 세계로 진화시키려는 욕구가 가열되었다. 그에 발맞추어 1996년, 한국 최초의 MMORPG인 MUG(Multi User Graphic)게임 ‘바람의 나라’가 출시된다. 이전까지 텍스트로만 진행되던 머드 게임과 달리, 자신의 캐릭터를 화면으로 보면서 직접 조종할 수 있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파티 플레이’라는 개념도 도입되었다. 그 이전의 게임들은 여러 플레이어들이 다중접속을 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었지만, 유저간의 협업시스템은 거의 전무했다. 바람의 나라는 5개의 직업을 고를 수 있게 하고 각자의 약점을 동료들과의 조합을 통해 커버해줄 수 있는, 함께 즐기는 재미가 있는 게임으로 진화하였다.
그래픽 시스템을 도입하여 얻게 된 직관성과 편의성. 직업 간의 상성을 도입한 좀 더 정교한 설정 등은 많은 이들을 MMORPG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한국에서 바람의 나라가 상용화가 되던 당시인 1997년, ‘오리진’이라는 회사는 ‘울티마 온라인’이라는 또 다른 MMORPG를 상용화했다. 바람의 나라가 쉽게 플레이할 수 있는 편한 시스템을 추구했다면, 울티마 온라인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노선이었다.
아직도 ‘가장 자유도가 높은 온라인 게임’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 게임은 다른 게임에는 없던 엄청난 자유도를 목표로 설계되었다. 이전의 게임들이 특정한 목표, 이를테면 ‘악을 처단한다’ ‘세상을 구해낸다’ ‘전설의 검을 찾아낸다’ 같은 단편적인 목표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울티마 온라인에서는 심지어 이런 목표도 가능했다.
– 거지가 되어서 빌어먹고 살겠다.
– 강도가 되어 사람들의 집을 습격해서 먹고 살겠다.
게임 시스템을 이용하여 유저가 운영자를 살해한 적이 있었는데, 운영자는 플레이어를 처벌하는 대신,
이것이 진정한 자유도가 아닌가!
라며 오히려 플레이어에게 상을 주었다고 한다. 자유도에 대한 운영사의 강한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간을 플레이해도 다른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질 수 없어서 사람들이 불만을 가졌고, 과도한 자유도가 역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이후 신규 게이머들을 끌어오기 위해 자유도를 억제하고 스토리라인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했으나, 오히려 그 과정에서 어정쩡한 게임이 되어버려 기존 유저들에게까지 외면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울티마 온라인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MMORPG들이 디테일과 완성도를 추구하는 데 있어 훌륭한 롤모델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직도 전성기의 울티마 온라인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 의미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리니지, 현질의 시작
1998년 그 이름도 유명한 NC소프트의 ‘리니지’가 발매된다. 마우스만 가지고도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한 사용자편의적인 인터페이스, 그리고 다른 어떤 게임보다 우월한 그래픽 수준을 가지고 출시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MUG게임은 5MB를 넘지 않았는데 리니지는 시작부터 40MB의 용량을 자랑했다.
1998년 당시는 가정집에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에 MMORPG를 즐기려면 전화선을 통한 PC통신을 이용해야 했다. 조악한 그래픽과 인터페이스는 불편하지만 감수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런데 리니지는 PC 통신으로는 플레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이 게임 망한다.
그러나 분명히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게임이 게임을 해 본적도 없는 사람들까지도 이름을 알 정도로 성장하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붐으로 늘어나고 있던 PC방의 가능성을 간파한 NC소프트는 공격적인 PC방 영업을 통해 동반상승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리니지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가정집에 초고속 인터넷이 빨리 보급되도록 만들기까지 했으니 정말 사업이란 모를 일이다.
리니지는 온라인 게임 내의 협업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인기를 얻었다. 여러 사람들이 혈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함께 활동하면서 성을 차지할 수도, 다른 성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차지한 성은 부와 직결되었다. 성을 갖는 순간에 성에 속한 마을에서 거래되는 물품에 대한 세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내에서도 권력과 지위를 갖는 순간 남들보다 부유한 계층이 될 수 있었고, 이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현실의 논리를 가상세계로 확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축적한 부를 가상세계에만 남겨놓으려 하지 않았다. 게임 속의 부를 현실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시작했고, 그래서 ‘현질(현금질. 현실의 돈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아이템에 의존해서 강해지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현금거래를 통해서라도 캐릭터를 키우고 싶어했다. 리니지의 현질은 곧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
게임방에서 열 시간 백 시간 하면 돈 드는 건 마찬가진데, 까짓 거 차라리 속 편하게 돈 주고 아이템을 사면 될 거 아냐?
다른 플레이어를 살해하고 아이템을 빼앗아가는 PK(Player Kill), 조직폭력배들의 개입, 현질, 거래사기 등의 현실세계의 폐해는 그 전까지 어느 정도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던 가상세계로 급속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게임이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이 돌자 게임을 하다 과로사로 죽는 사건도 발생했고, 다수의 컴퓨터로 직업적으로 게임을 하는 소위 ‘작업장’도 생겨났다.
게임 속의 돈과 현실의 돈을 환전해주는 거래상들도 게임 세계로 유입되어 활동을 했다. 본래 아이템거래는 약관위반이었지만 운영사는 유저들이 메리트를 느끼는 현금거래를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이처럼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리니지는 1998년 동시접속자 1,000명, 1999년에 1만 명, 2000년에 10만 명, 2001년에는 30만 명을 넘는 폭발성을 이어간다.
부분 유료화
리니지는 매월 일정액을 내야 플레이할 수 있는 ‘정액제’ 게임이었다. 후발주자들은 리니지에 맞서기 위해 무료화로 시작하여 접속자를 끌었지만 유료화로 전환하는 순간 유저들은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골치를 앓던 운영사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돈을 내지 않으면 ‘게임을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무료로 하면 조금 불편하게, 돈을 내고 하면 훨씬 더 쾌적하도록 만들면 어떨까?
소위 ‘부분 유료화’의 시작이었다. 물론 아직도 정액제 게임들이 있지만, 상당수는 부분 유료화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핸드폰 소액결제와 상품권 등으로 일정액을 내고 아이템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형태를 도입하자, 운영사는 게임 내 현금흐름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강력한 아이템이 일정 확률로 나오는 상자 시스템, 일정 확률로 자신의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아이템 자체가 사라지는 강화 시스템, 결제를 하면 남들보다 빠르게 경험치를 쌓게 되는 버프 시스템 등…
물론 그런 아이템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소위 말하는 붉은 여왕 효과(남들이 달리고 있기 때문에 걷는 것만으론 뒤쳐진다)로 인해 현금결제를 하지 않고서는 남들의 성장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신규 아이템이 주기적으로 나오는 상태에서 자신이 지닌 무기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감가상각현상, 레벨이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장비가격, 플레이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냥.
게임은 어느 순간 현실을 벗어나 자신이 꿈꾸는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유희가 아닌 스트레스와 피로를 주는 ‘노동’이 되어버렸다. 현실세계에서 많은 돈을 끌어오는 이들이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자,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은 가상세계에서도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미 가상 체험이라는 초심은 상실되었고, 사람들은 게임의 세계관과 설정을 망각한 채 기계적으로 마우스를 클릭한다.
결국 2010년 1월 10일 대법원에서는 게임 아이템의 현금거래에 무죄 판결을 선고한다. 그 소식을 전한 앵커의 멘트는 아래와 같았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일반 게임의 현금 거래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게임 시장도 더욱 활성화될 전망입니다.
몇몇 게이머들은 게임의 본질이 왜곡되는 것을 가슴아파하고 다시 초기의 목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곤 한다.(나만 그런가?) 그러나 대부분 한탄에서 멈추어버리고 이내 게임 운영사가 정해준 룰에 익숙해져 문제의식 없이 타성적으로 게임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론 앞으로를 기대해본다. 가상세계의 역학도 현실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원시사회, 폭도들이 날뛰던 무정부주의, 권력자가 나타나는 전제군주제. 그리고 탐욕의 시작과 천민자본주의까지도. 게임 속 가상현실에 운영사가 깊숙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무정부시대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체계를 이루어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게이머들이 스스로 룰에 개입하여 자체적인 체제나 ‘~주의’를 만들어내는 공상을 해본다.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한 변화를 보인 만큼 역으로 현실세계를 앞지르는 새로운 사회적 모델이 가상에서 나오는 상상도 망상은 아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