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다음 스토리볼에서 연재 중인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한국인의 ‘먹방’> 제17화, “치느님 치느님 맛없는 치느님“에 대한 비평문입니다.
1. “치느님 치느님 맛없는 치느님” 요약
사람들이 치킨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많이 주어져 있어서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의 ‘안정 욕구’와 관련이 있다. 또한 사람들의 보수적·체제 순응적 성향상, 값비싼 쇠고기보다는 값싼 치킨을 먹으며 “이 정도면 맛있지”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치킨은 맛없는 음식이다. 닭이든 뭐든 그 몸이 성체로 이어져야 제맛이 나는데, 다른 나라들이 최소 45일된 닭을 도축하는 데 비해 한국은 평균 30일된 닭을 도축한다. 타국 2.7kg, 그러나 한국은 1.5kg의 병아리 수준에서 도축하므로 닭맛이 없다. 한국은 맛없는 닭을 튀김옷맛, 기름맛, 양념맛으로 먹는 것이다. 치킨밖에 못 먹는 세상이라고 해도 세계인이 먹는 치킨 수준 정도는 주어져야 한다.
2. 황교익의 지적은 옳은가?
하나씩 검토해 보자. 먼저 치킨이 많이 주어져서 구하기 쉽나? 황교익 씨는 치킨을 쌀밥이나 빵과 비교했지만, 실제 우리나라 육류 소비의 부동의 1위는 돼지고기다. 이는 통계가 산출된 이래로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참조: “한국 음식문화의 전환기“)
둘째, 대중은 쉽게 많이 구해지는 음식을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는가? 객관적 증거를 대기는 어렵고, 비교 시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농경사회의 쌀밥과 자유무역사회의 치킨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한편으로 나는 대체로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은 나쁜 음식으로 분류되고, 대중은 더 비싼 음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참조: “나쁜 음식“)
다른 한편으로는 똑같이 많이 주어지고 똑같이 자극적이지만 프랜차이즈화에 실패한 탕수육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마지막으로 어린 닭이 맛있나, 늙은 닭이 맛있나? 보통은 국물을 내거나 가공식품을 만들 때 늙은 놈을, 직접 고기 맛으로 먹을 때는 어린 놈을 사용한다. 개인적으로는 맛 차이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 어린 고기가 맛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성체가 맛있다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냉면 육수를 낼 때는 일부러 노계를 넣는다고는 하더라.
3. 양과 질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한 시점
공장식 축산은 나쁜가? 황교익 씨는 한국의 공장식 축산이 저가형 닭을 쏟아내는 것을 나쁘다고 묘사한다. 물론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육 환경은 아니다. 하지만 질이 떨어지지만, 값이 싼 고기를 전 국민이 풍족하게 향유하는 것은 나쁜 것인가? 아니면 질이 좋은 고기를 지금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으로만 판매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일까?
양 또는 질, 이는 우리나라 음식문화가 맞닥뜨린 최대 화두 중 하나인 것 같다. (좀 거창하지만, 자유와 평등으로 표현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황교익 씨는 대체로 음식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서 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과 질 중에서 질을 중시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음식이 양에서 질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지만, 아직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나이에서 소득수준 별 섭취 칼로리를 분석해보면 고소득층의 음식 섭취량이 눈에 띄게 높다. (참조: “통계로 본 한국 식생활의 빈부 격차 ─ 하루 섭취 칼로리“, 2008년 통계인데, 대략 십 년이 지난 요즘은 당시보다 얼마나 나아졌으려나 모르겠다.)
먹는 가짓수, 양, 칼로리, 인지적인 만족도 등, 모든 지표에서 소득이 높은 쪽의 식생활이 더 풍부하고 균형잡혔다. 미국의 사회적 이슈인 저소득형 비만, 영양섭취 불균형성 비만이 우리나라에도 있기는 하지만, 사회 전체적 평균으로는 저소득층의 영양섭취는 불균형보다는 불충분이 문제임을 보여주는 통계다.
양과 질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치킨을 둘러싼 논쟁들을 보면, 사회 전반적으로는 지금의 닭값도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이제 우리 음식도 양에서 질로 전환할 시점이 되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매우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너는 가난하다고 면전에서 말하는 건 사회복지학에서 낙인효과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원문: 찬별은 초식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