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초보가 UFC 선수와 격투 시합을 할 거라며, “어디를 때려야 이길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별로 해줄 말이 없다. 투자에 있어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그 질문은 “어떤 종목에 투자해야 하나요?”이다.
전문가들은 ‘어디에’ 투자할지에 대해서만 말하지 ‘어떻게’ 투자할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가 아니라 ‘어떻게’인데도 말이다.
1. 승률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손절이다.
주식의 나라 여의도 횡단보도에선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때 셀트리온 5천만 원 샀었는데, 그거 놔뒀으면 지금 11억이다. 대박이지?”
안타깝지만 그녀는 20배 갈 주식을 샀었음에도 불구하고 11억을 벌지 못했다. 그리고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제2의 셀트리온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 그때 걔가 가드 내릴 때 펀치를 날렸어야 했는데 못 날렸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그런가? 상대가 누군지 다시 생각해보자. 수많은 투자 초고수와 거대자본이 우리의 상대다.
투자에 있어서 잘못된 생각 중 하나는 10번 투자해서 5번 이상 벌어야 돈을 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자연스레 상승할 종목을 하나라도 더 찾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초고수를 상대로는 투자 승률이 중요하지 않다. UFC 선수의 펀치는 한 번만 맞아도 기절이고, 투자에서 10번 중 두 번만 반토막이 나면 게임은 끝난다.
이 게임이 승산을 높이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상대 선수로부터 받는 데미지를 제한하는 것. 투자에서 손실을 5%에서 막을 수 있다면, 초고수와의 싸움도 해볼 만한 게임이 된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은 2011년 증권사 2년 차 직원일 때였다. 운이 좋게도 나는 천만 원으로 한 달 만에 460%의 수익을 올렸는데, 계좌를 열어보니 승률이 예상과 달랐다.
5배를 벌려면 열 번 중 일곱 여덟 번은 이겼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나의 승률은 40%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을 벌었는데, 잃을 때 적게 잃고, 벌 때 많이 벌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투자 승률에 집착하지 않게 됐고,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바로 손절이다.
2. 손절할 수 있기에 상승하는 포지션에 진입할 수 있다.
복싱에서 이기기 위해선 치명타를 날리고 상대의 공격에 가드를 올리면 된다. 투자에서 치명타는 벌 때 돈을 더 넣고 버티는 것이고, 가드를 올리는 것은 손절이다.
근데 이 둘을 한 큐에 해주는 방법은 투자 대가들의 투자 원칙에 있다. 바로 ‘잃지 않는 투자’이다. 그들은 잃지 않기에 과감한 배팅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올해도 한샘, CJ CGV, 대림 B&Co 등 무섭게 오르는 주식들을 봤다. 그리고 우리에게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막상 이런 주식들을 사기는 쉽지 않았다.
2011년부터 30배가 오른 메디톡스 주가를 살펴보자. 저점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이런 주식을 살 수 있는 날은 4년 중 하루밖에 없다.
이렇게 올라가는 주식은 상승세가 시작된 이후에 올라탈 수밖에 없는데, 만오천 원이던 주식이 오만 원이 되면 사기 두렵다. 하지만 손실이 제한되어 있다면 어떨까?
달리는 말에서 내릴 줄 알면 달리는 말에 올라타는 것이 두렵지 않듯이, 손절할 줄 알면 상승하는 주식을 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 판은 손실은 제한되고, 상단은 몇 배로 열려있는 배팅이 된다.
문제는 기회는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잡지 못하는 것이다. 제2의 셀트리온이 오더라도 발만 동동 구르며 또다시 놓친다면 기회가 무슨 소용인가?
3. 손절할 수 있기에 수익이 확대될 때 버틸 수 있다.
손절의 진짜 매력은 상승세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데에 있다. 돈을 많이 벌지, 적게 벌지는 버티기에서 결정된다.
워런 버핏이 코카콜라를 1달러 이하에 사서 4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은 주식을 잘 샀기 때문이 아니다. 종목 선택이 중요하다면, 그와 같은 때에 코카콜라를 산 사람도 쉽게 40배의 수익을 올렸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40배의 수익을 누렸을까? 수익이 날 때 버티는 것은 종목 선택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잃지 않는 투자’의 기준은 하나다. 잃으면 팔고, 잃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 덕분에 달리는 말을 계속 타고 있을 수 있다. 돈을 벌 때는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버핏은 돈을 벌 때 어떻게 버틸까? 2011년 기사를 살펴보자.
버핏은 2008년 금융위기 때 골드만삭스 주식을 샀는데, 골드만삭스 회장은 버핏에게 주식을 다시 사가려 했다. 이에 버핏은 주식을 다시 사려면 CIA가 빈 라덴을 찾듯이 자신을 찾아 나서야 될 거라고 응수했다.
게다가 버핏은 골드만삭스 회장의 전화를 받아 “지금 버핏 회장이 자리에 없다”며 농담까지 던졌다. 주식으로 돈을 벌 때 어떤 자세로 버텨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버핏은 같은 가격에 우선주를 골드만삭스에 넘기고 지분 2%를 받았다. 2년 동안 10억 달러의 배당과 지분 가치 18억 달러를 합쳐서 50억 달러 투자에 28억 달러 수익을 얻었다.
버핏은 돈이 많기에 포스코에 투자했을 때처럼 손실이 나도 버티기도 한다. 하지만 버핏만큼 돈이 없는 사람이 손절하지 못하면 수익이 날 때 버틸수도, 잃은 후 재기할 수도 없다.
손절이 이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하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우리는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희망에 기대게 된다.
4. 희망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절망은 우리를 움직인다.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사고 전문가들은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사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애널리스트 역시 투자의 실패 확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사건 밖에 있다. 실패 확률을 몇 %로 낮추든 사건이 일어나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겐 100%의 현실이 된다.
사건 안에 있는 사람에겐 사건의 원인보다 사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 파악은 사후의 문제이고, 심지어 원인을 알아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투자의 사건들이다.
중앙차선을 넘어오는 차를 보며 우리는 ‘도대체 왜?’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충돌이 일어나면 나는 다치기에 원인 파악은 뒤로하고 피하는 게 우선이다.
투자에서 위험을 다루는 것은 중앙차선을 넘어오는 차를 대하듯 해야 한다. ‘도대체 왜?’를 고민하지 말고 눈앞에 떨어지고 있는 가격 그래프에 대해 대응해야 한다.
돈을 벌고 잃는 것은 변하는 가격 때문이지, 가격이 변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굳이 찾아내 이것이 가격 하락을 막아주길 바란다.
다음 주식을 살펴보자. 9만 원이던 주식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도대체 왜 떨어지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기존에도 떨어졌다가 반등한 적이 있기에 큰 문제가 아니길 바라면서 가격하락을 버텨낸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주가는 거짓말처럼 9만 원에서 만 원까지 하락했다. 이 주식의 이름은 내추럴앤도텍이다. 과연 그 때 하락의 원인이 중요했을까?
투자자들은 식약청 검사가 잘못됐기를, 다른 투자자가 마음을 돌리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정보는 항상 가격보다 늦다. 가격은 정보가 닿기 전에 다 빠져버렸다.
만약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받아들이면 어떨까?
시장은 돌아서지 않고, 주식은 오천 원까지 빠질 것이라는 절망적인 가정을 한다면,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에서도 선장, 선원, 해양경찰 그 누구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는 가정을 한다면, 그제야 우리는 남이 뭔가를 해주길 바라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투자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희망이고,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절망이다. 사건이 절망적일수록 절망적 상황을 직시하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야 한다.
5. 당신의 투자는 실패할 겁니다. 그에 대비하세요.
투자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이중적이다. 돈을 벌 때는 희망을, 잃을 때는 절망을 가까이 둬야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통해 이를 이해해 보자.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쟁 때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8년간 갇혀 있다가 살아 돌아왔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살렸다. 이런 그를 짐 콜린스가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하겠다.
“(수용소 생활을) 견뎌 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가 말했다. “아 그건 간단하지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낙관주의자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나는 정말 어리둥절했다. 백 미터 전에 그가 한 말과 배치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낙관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하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갑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부활절이 가지요.
다음에는 추수감사절, 그리고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가 상심해서 죽지요.”
또 한 차례 긴 침묵이 이어졌고,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건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결단코 실패할 리는 없다는 믿음과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은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까지도 나는 낙관주의자들을 타이르는 스톡데일의 이미지를 가슴에 품고 다닌다.
“We’re not getting out by Christmas. deal with it!”
“우리는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가지 못할 겁니다. 그에 대비하세요.”─ 짐 콜린스, 『Good to Great』─
투자에서 실패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건 간단하다. 낙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시장이 폭락할 때 전문가들의 ‘건전한 조정, 당연한 이익 실현, 단기성 이벤트’라는 말에 희망을 건다.
반면 현명한 투자자는 투자가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가진 동시에 냉혹한 시장 상황을 직시한다. 시장이 폭락할 때 ‘당연한 이익 실현에 의한 하락’과 같은 말로는 이들의 눈을 가리지 못한다.
훌륭한 투자자일수록 시장이 잔인해질수록 눈을 돌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다.
“당신의 투자는 실패할 겁니다. 그에 대비하세요.”
6. 수익은 기대하고, 손실은 관리하라.
훌륭한 F1 머신, 팀 크루, 그리고 감독은 우승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일단 트랙 위로 올라가면 레이서는 다른 차들의 움직임을 보며 가속과 감속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투자에서 애널리스트의 분석 능력은 꼭 필요한 능력이지만, ‘분석’이 돈을 벌어주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 돈을 벌어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정확한 내비게이션을 갖고 있어도 앞차의 움직임을 보지 않는 운전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는 공생 관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투자 승률을 높일 좋은 종목을 분석하는 것은 애널리스트의 일이고, 승률이 높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판을 짜는 것이 투자자의 일이다.
투자 승률이 20%밖에 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을까? 10번 투자에 2번 수익이다. 가능하다. 20% 이길 때 두 배를 벌고, 80% 질 때 손실을 -10%로 막으면 +20 대 -8의 게임이 된다.
승률이 높아지고, 수익이 얼마가 될지는 ‘더 높으면 좋겠거니’하고 기대하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수익이 날 때는 딱히 할 일이 없고 수익은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반면 손실이 날 때는 정해진 구간에서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손절은 한 번, 두 번, 열 번을 해도 상관없다. 언젠가 터져줄 수익이 모든 것을 만회해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실패한 종목을 산 자신의 선택 때문에 자책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투자는 원래 복권처럼 다수가 실패하는 게임이고, 투자가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실패할 때 실패가 커지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복싱에서 상대방이 펀치를 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가드를 올리지 않는 건 내 잘못이다. 투자에서도 손실이 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손절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7. 투자는 나의 게임이고, 이것이 나의 게임 플랜이다.
트레이더 김동조는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누구는 스마트폰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누구는 세상을 상대로 게임을 한다.’고 했다.
사람은 인생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세상과 게임을 한다. 투자는 나의 게임이고, 잃지 않는 투자를 하는 것. 이것이 나의 게임 플랜이다.
주식 시장에서 돈을 잃는 사람들이 내 생각으로 인해 줄어들길 바라지만, 내가 스스로 투자 원칙과 게임 플랜을 증명하지 않는 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4년 반을 다닌 증권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반년 만에 그동안 받았던 5년 치 연봉 이상을 벌었다.
사실 금액은 중요치 않다. 앞으로 때론 돈을 크게 잃기도 하고, 크게 벌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치열함을 경험한 나는 남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바뀐 나는 무엇보다 값질 것이기에 이 여정은 최종 결과에 상관없이 실패가 아니다. 나의 험난한 여정이 앞으로도 당신의 투자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어디로 가든, 당신도 야간열차를 타야 할 때가 온다.
당신은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당신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그곳에 남는다.낯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발을 딛고 역사에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당신은 겉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외딴곳에 왔음을 깨달을 것이다.그 먼 곳을 돌아 다시 찾아왔을 때,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이미 예전의 당신이 아닌 당신일 것이다.─ 파르켈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