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 발달하면서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이 여럿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의료영역에서 환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플랫폼(이하 헬스케어 플랫폼)들이 여럿 시도되었다. 여기서 플랫폼이라고 하는 것은 의료소비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배달의민족>이나 <카카오택시>의 의료 버전이랄까. (꼭 수수료 모델이 아니라도.)
미국에서는 Zocdoc, healthTap, RealSelf 같은 서비스들이 자리를 잡고 성장 중인데 반해, 한국에서는 아직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헬스케어 플랫폼은 없는 것 같다.
현재 헬스케어 플랫폼의 한계
2000년대 IT 벤처 붐이 일었을 때 건강포탈을 지향하며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지금도 굿닥, 메디라떼, 하이닥 등의 서비스들이 꾸준히 생존하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시도에 비해서 가시적인 성과가 두드러지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다른 서비스와 비교한다면 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엄격한 의료법도 있을 수 있고, IT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진 의사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는 가장 큰 이유는 이용자의 주체와 각각의 니즈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크게 서비스공급자(배달앱으로 치면 식당)과 소비자가 있다. 공급자를 살펴보면, 의사의 니즈와 병원의 니즈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의사’라고 여기지만, 병원과 의사는 다른 존재다.
우리나라야 병원의 오너나 최고결정권자가 거의 의사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르다. 병원은 조직이고, 사업체다. 의사는 사람이고, 피고용자인 경우도 있고, 고용자인 경우도 있다. 요리사와 비슷하다. 식당을 자신이 차린 오너쉐프가 있는가 하면, 식당에 고용된 쉐프가 있고. 뭐 그런 셈이다. 병원이라는 조직 입장에서 보는 것과 의사라는 사람 입장에서 보는 것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헬스케어 플랫폼에서도 차이가 있다.
의료서비스는 사람이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자체가 상품이 된다.
의료서비스는 크게 결정적인(Critical)요소와 비결정적인(Non-Critical) 요소로 나눌 수 있다. 결정적인 요소는 거의 전적으로 의료진에 의존한다. 가격, 친절, 분위기 등등은 비결정적인(Non-Critical) 요소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의료소비자는 잘하는 사람을 찾는다. 쌍꺼풀 수술 잘하는 사람, 암 진료 잘하는 사람, 침 잘 놓는 사람 등. 그리고 안 해도 되는 걸 하라고 하거나, 바가지를 씌우지 않을 도덕적인 사람을 찾는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의사를 찾았다고 하자. 그런데 이 의사가 마라도에 있으면 서울에 있는 소비자가 찾아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말 절박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건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접근성이 중요하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전문성, 도덕성, 접근성, 이 세 가지가 결정적인 요소들로 작용한다.
결정적인 요소가 평준화되어 있을 때는 비결정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2000년대 초에는 비결정적 필수요소(Non-critical Essentials)라 해서 의료 외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했다. CS 개념이 도입되고, 인테리어 수준이 높아지고, 병원 내에 카페가 생기기도 했다.
대부분의 헬스케어 플랫폼들이 의료소비자와 병원을 중개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수익모델도 대부분 수수료였다. 병원 마케팅은 주로 노출빈도를 높이고, 단기매출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래서인지 대개의 플랫폼이 소셜커머스나 오픈마켓 같은 형식이었다.
그래서 의료진의 전문성과 도덕성보다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이벤트, 프로모션 등에 집중해왔다. 예를 들자면, ‘쌍꺼풀 수술을 하는 의사’대신에 ‘쌍꺼풀 수술’이라는 시술을 상품으로 파는 것이다. 전자는 시술의 적합성을 판단하고,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숙련도, 안전성, 미적 감각 등 무형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소비자─공급자 모두의 필요를 엄밀히 파악해야
본질적인 요인을 살펴보자. 의료소비자와 의사를 연결하는 헬스케어 플랫폼이 있는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일반적인 수준의 정보와 전문적인 지식 간에는 괴리가 있고, 이 괴리로 인해서 니즈가 발생한다.(같은 이유로 법률서비스, 세무서비스 등도 향후 이런 플랫폼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이 니즈를 여태까지는 네이버 같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어느 정도는 충족을 해왔다. 하지만 강을 덮는 녹조처럼 광고성, 홍보성 정보들이 범람하면서, 유용한 정보를 찾는 게 한강에서 붕어 잡는 것처럼 어려워졌다.
의료소비자 입장에서는 살아있고 유용한 정보를 나누고 얻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경험을 할지 예측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기존의 채널들─카페, 블로그 등─에서 접하는 정보들의 진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의사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통해 보람을 얻는다. 그런데 개개인의 의사들이 잘하는 범위는 의외로 넓지 않다. 그래서 의료소비자들이 자신의 진료 분야나 진료 철학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방문하기를 원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기존 고객을 관리하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다양한 접점을 관리하는데 많은 노력을 할애한다. 홈페이지, 메신저, SNS, 문자, 전화 등. 여태까지는 여러 가지 플랫폼들이 산발적이고 단편적으로 만들어져 이용에 번거로움을 느끼는 경우도 컸다. 다양한 접점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는 게 관리하기에 편하고 유용할 것이다. 온라인 창구(홈페이지)와 오프라인 창구(차트 혹은 CRM)를 일체화할 수 있는 플랫폼이 개발되면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
지금은 헬스케어 업계의 대격변기이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사람들의 삶도 많이 바뀔 것이고, 의사와 병원의 역할도 바뀔 것이다. 이 와중에 보다 혁신적인 서비스로 세상이 건강해지는 데 기여할 플랫폼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