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철버거를 지독히도 많이 먹었다. 일단 싸고, 밤늦게 식사대용으로 먹을 게 딱히 없었고, 자취방에서 가까웠다. 그 당시에 고대 앞에는 편의점도 흔치 않았다.
손수레만 한 노점상에서 비디오 가게 처마 밑으로 확장 이전했을 때가 내 기억으로는 영철버거의 전성기였다. 불고기와 야채를 넉넉하게 넣은 영철버거는 맛있고 푸짐했으며, 콜라를 무한 리필로 제공했다. 안성기를 닮은 미소는 덤이었다. 영철버거는 고대생의 소울푸드로 자리 잡던 시기였다.
영철버거의 경영학
영철버거의 성공은 이영철 대표의 성실함과 싹싹한 성격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맛, 양, 가격의 요소들이 경쟁력 있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고전적인 마케팅믹스로 한 번 살펴보자.
3C
- Customer – 돈이 없고 굶주려있는 학생들
- Company – 영철버거 아저씨
- Competitors – 3,000원짜리 순대를 파는 트럭, 이삭토스트…
STP
- Segmentation
– 돈이 없고 굶주려있는 데다가 야행성의 대학생들, 특히 남자– 솔로 자취생
- Targeting
– 제품의 차별화 전략: 탄산음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 서비스의 차별화 전략: 새벽까지 영업한다. - Positioning
– 니치 시장에 의한 포지셔닝: 식사대용의 저렴한 스낵. 특히 야간
– 감성적 속성에 의한 포지셔닝: 친근하고 성실한 동네 형
– 사용상황에 의한 포지셔닝: 생색내면서 한턱 쏘기 좋은 아이템(선배로서 가오 잡기)
마케팅 4P믹스로도 살펴보자.
- Product – 일단 양이 많고 맛있었다.
- Price – 영철버거도 싼데 콜라를 공짜로 주니 엄청 싸다.
- Place – 영철버거가 최초로 위치했던 고려대 정경대 후문 쪽은 그 당시에는 활성화가 덜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번화가인 길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경쟁업체가 적고, 유동인구는 많이 늘어나는 최적의 입지였던 것이다.
- Promotion –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면서 단체구매가 많이 늘어났다. 영철버거 측에서 고려대 행사에 협조도 많이 했기 때문에 일종의 상생 프로모션이 제법 이루어졌다.
그때쯤이었던가, 다른 동네에서도 영철버거가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고대 앞의 본점처럼 영철버거만 파는 것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분식, 호떡 노점상에서 메뉴의 하나로 취급되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말만 영철버거지,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이영철 대표의 여러 인터뷰에 따르면, 그 당시에 분점을 내달라고 하면 선심으로 쉽게 내줬다고 한다. 물론 가짜 영철버거도 있었다.
늘어나던 가맹점이 좌절의 씨앗은 아니었을지
여기에서 브랜드 전략을 살펴보자.
브랜드의 본질은 미션, 비전, 핵심가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본질을 실현하기 위한 브랜드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이영철 대표 개인이 영철버거를 통해 추구하는 바가 다른 분점들에도 일관적으로 이루어졌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제품과 서비스의 질, 경영 전략 등 모든 면에서 일관성이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분점으로 인해 본점의 이미지가 악화되는 현상이 생겼으리라 생각한다.
졸업하고 오랜만에 고대 앞에 들러보니 비디오가게는 없어지고, 영철버거는 가두 매점을 차렸었다. 원래의 1,000원짜리 영철버거는 1,500원이 되었고, 아메리카노에 생과일주스며 각종 웰빙버거들이 메뉴에 올라있었다. 그 이후로 영철버거의 가격은 계속 올랐고, 심지어는 수제버거로 메뉴전환을 시도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소비 수준과 입맛이 높아지고, 회사의 규모가 커지니 매출과 마진율을 높여야 하는 게 그 이유였다고 한다.
이쯤 해서 아까 언급한 일관성과 지속성을 떠올려보자. 나 같은 소비자입장에서 영철버거는 귀갓길에 서서 저렴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매장 안에 들어가는 것과 서서 먹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MOT의 프로세스가 다르며, 소비자가 느끼는 감성적 편익과 경험도 다르다.
특히나 음식의 경험은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그렇기에 맛은 기억이며 추억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음식이 있을 것이다. 삶의 일부로 존재했던, 그렇기에 함축적인 음식 말이다.
나의 대학 시절, 저녁 늦은 시간의 외로움과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그 영철버거는 어느덧 추억이 되었다. 이영철 대표님의 재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