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창조 과정이 처음으로 분석된 것은 계몽주의 시대 영국인 윌리엄 더프(William Duff)라는 사람에 의해서였다. 18세기 후반, 더프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창조의 과정이 생리심리학적인 것이라고 봤다. 창조의 과정을 이전과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심리이론
이전까지 창조적인 사람은 천재적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남들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면 그 부류를 천재라고 불렀고, 창의성은 그렇게 극소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국한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더프는 그 천재들을 생리심리학적인 능력에 의거, 창조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주장한 세 가지 능력은 상상력(imagination), 판단력(judgment), 기호(taste)다. 어떤 천재건 그가 미쳤기 때문에 창의성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세 가지 능력이 그들의 창의성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한 이론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더프의 명제는 창의성을 천재성으로부터 최초로 구분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후 인간이라면 누구나 창조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의 기초가 되었다.
이 접근 방식은 19세기 이후 인간의 창의성에 대한 설명의 근간이 되었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등장은 이 연구에 과학적 관점을 점화시켰다. 프란시스 갤톤(Francis Galton)으로 대변되는 연상주의, 헤르만 본 에렌펠스(Hermann von Ehrenfels)로 대변되는 게슈탈트주의 등의 학파는 인간의 창의적 사고과정에 대한 설명을 실험과 논증으로 과학화시켰다.
그 흐름은 결국 20세기 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시대에 이르러서 현대심리학으로 정착되었다. 이런 생리심리학적 연구 흐름은 결론적으로 창의성이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심리적, 환경적 능력이라는 의견으로 수렴되었고 이것이 현대 창의성에 대한 정의가 되었다.
20세기에는 더 본격적으로 창의성 연구가 꽃을 피웠다. 심리학자 길포드(J.P. Guilford)와 토렌스(E. Paul Torrence)로 대변되는 이 창의성 연구의 흐름은 확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그 밖에도 그들의 후학들에 의해서 개념혼합(conceptual blending), 연마(硏磨)이론(honing theory) 등 창의성에 대한 여러 설명기법을 양산했다.
최근에는 뇌 의학의 발달로 우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려는 노력과 결부되면서 창의성에 대한 설명은 더욱 과학적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심리학과의 창의성 강의나 시중의 책, 창의성을 개발하기 위한 다양한 컨설팅들까지 우리 주위에 넘쳐난다. 하지만 그 이론들 속으로 세밀히 들어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다.
- 더프가 200년 전 처음으로 외쳤던 ‘창의성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뇌 활동의 결과’라는 명제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의 20세기 후학들의 연구결과가 바탕으로 하는, 창의성을 개인성과 연결시키는 확신 없이는 그것들은 우리에게 무용지물이다.
- 20세기에 일어난 창의성 연구의 결과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우주의 신비까지 풀어낸 다른 과학 분야의 눈부신 발전과는 달리 20세기 이후 창의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정체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창의성을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말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다. 우리가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모두 다르고 개인마다 창의성이 존중된다. 만일 창의성이 완벽히 과학에 의해 설명된다면 로봇이 세상을 창조하는 과학영화와도 같이 인류의 종말을 뜻하지 않겠는가.
한편 최근 창의성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주춤거리는 이유에는 스티브 잡스의 영향도 있다고 본다. 1990년대 이후 창의성 연구는 기업의 혁신과도 긴밀히 연결되었다. 많은 석학, 특히 미국 최고의 경영학·심리학 대학교수들은 기업에서 어떻게 혁신을 하는가, 창의성을 제품혁신에서 어떻게 발휘하는가에 대해서 끊임없는 연구와 이론을 쏟아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본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5년 동안 세상에 보여준 것은 그 이론들이 아니었다. 창의성에 대한 실천이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와 꿈을 현실화한 한 개인의 실천.
투자 이론 Investment Theory
그런 점에서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처럼 실용적 측면의 창의성을 옹호하는 심리학자도 있다. 1995년 첫 출간된 후 몇 차례 개정판이 나온 저서 Defying the crowd, Free Press에 정리된 그의 창의성에 대한 생각은 ‘투자 이론’으로 설명된다. 창의적 과정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의미다. 이 ‘투자’의 과정에는 6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있다. 이 6가지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1. 지적 기술 Intellectual Skills
6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적 기술은 다시 합성기술(Synthetic Skill), 분석기술(Analytic Skill), 실용기술(Practical Skill)로 나뉜다. 즉 통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인 합성기술, 아이디어 중에서 의미 있는 것을 고르는 분석기술, 아이디어를 남에게 의미 있게끔 설명하는 능력인 실용기술의 조합이 강력한 아이디어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
2. 지식 Knowledge
지적 기술이 가능키 위해서는 지식 자체가 있어야 한다. 지식 없이는 창의성이 발현될 수 없다. 그러나 지식이 곧 창의성이 될 수 없고, 때로는 지식이 오히려 창의성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3. 사고유형 Thinking Styles
개개인은 모두 다양한 사고의 유형을 갖고 있다. 본인만의 생각하는 방식이 지적 기술과 결합할 때 개인은 창의적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정확한 방향이나 설명, 단계적 과정을 선호하는 실행성향(Executive Style)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처음부터 계획하기를 좋아하고 자신만의 방식이나 덜 구조적인 과제를 선호하는, 자신만의 법을 만들어나간다는 의미로 입법성향(Legislative Style)의 사고방식이 더 창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주어진 과제들을 우선순위에 입각해 정리하는 위계성향(Hierarchic Style), 한 가지 과제 수행에 집중한 후 다음 과제로 하나씩 넘어가는 군주성향(Monarchic Style)이 보다 더 창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므로 본인만의 창의성에 적합한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
4. 개성 Personality
사고유형과 비슷하게 사람마다 다양한 개성이 있으며 그 개성에 따라 창의적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경향적으로 봤을 때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력, 애매함에 대한 강한 내성, 지치지 않는 자기능률 등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더 창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 개성들 역시 상대적이다. 순수예술가에게는 의지력이 핵심적이지만 일상적인 창조과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5. 동기 Motivation
외부적인 동기 요인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들보다는 내적인 요인에 의해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일수록 창의적이고 역경을 잘 극복할 가능성이 높다.
6. 환경 Environment
창의성을 지원하고 보상을 주는 환경이 중요하다. 이런 환경이 없는 곳에서도 개인의 초인적인 의지가 있다면 창의성이 탄생하겠지만 대개 불가능한 사례다.
스턴버그에 의하면 창의성은 이 6가지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합류하면서 일어난다. 최소한의 조건은 있다. 기본적인 지식 자체가 없이는 창조적이 될 수 없지만 두 가지 혹은 세 가지의 합류는 단순한 수리적인 합을 넘는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남에게 설득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스턴버그는 창의성을 어렵고 복잡한 심리 과학적 설명이 아닌, 실용적인 측면에서 일반적인 언어로 설명했다. 그 이면에는 모든 개인 누구나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창의성이란 태도의 문제다. 창의적이 되고자 하면 누구나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원문: 직장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