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몇 가지 언급해 두고 싶은 사실들이 있다.
1. 자연이 인간의 욕구나 희망에 항상 맞춰서 움직여 주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는 불편한 자연과학적 진실 속에서 살아간다. 특별한 신체적 증상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신체적 통증을, 그것도 종일 겪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우리가 그런 병의 존재를 아무리 부인한다고 해 봤자 그런 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연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전과 신체적 특정이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정말로 영향을 준다는 경험적 증거가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진실로부터 달아나는 것은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2. 이러한 시도들이 현실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들로부터 어떤 ‘의도’를 읽어내려 하는 오류를 우리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 부른다. 과학자들은 결코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연구를 한다.
3. Bayesian이 이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떤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Bayesian의 일차적 관심사는 이 연구의 내적 완결성이다. 이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얻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타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였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일차적 관심사인 것이다. 다른 것은 별로 고려하고 싶지 않다.
4. Bayesian은 진화심리학이라는 특정한 연구 프로그램에 대해 완전히 지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연구 프로그램의 가치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5. 이 논문은 아직 정식으로 출판된 논문이 아니다. Psychological Science라는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지만(accepted), 구체적으로 언제 실릴지는 알 수 없다(해당 학술지의 online first publication 난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논문의 제1저자(Peterson)의 홈페이지에서도 아직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았음을 명시하고 있다. 아마 논문을 본 분들은 ssrn이란 사이트를 통해 논문을 다운로드받았을 것인데, 거기 보면 아래와 같이 이 논문은 아직 ‘working paper’ 임을 명시해 두었다. working paper란 아직 정식 출판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6. 방법론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통계 용어가 좀 등장할 것인데, 미리 양해를 구한다.
“알통 굵으면 보수”? 실제 연구자들이 한 얘기는 좀 다르다
신체적 힘이 정치적 의사결정(특히 정치적 갈등의 상황에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Peterson et al. (2012)에 의하면 ‘그렇다’. Peterson 등에 의하면, 정치적 의사결정에 대해 논하고 있는 현재의 연구들 중 대부분은 신체적 요소를 무시한다. 대신 이들은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접근을 통해 정치적 갈등 현상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신체적 요소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들이 이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이두근의 굵기는 바로 그러한 요소에 해당된다.
신체적 힘은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가? 연구자들은 행동생태학의 ‘AWA'(Asymmetric war of attrition) 이론을 가지고 이 과정을 설명한다. (사실 이 이론은 이 논문의 논의 전개에서 핵심적인 사항인데, 지금 넷상에서 이루어지는 논의 중 이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매우 중요하므로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이 이론의 핵심은 바로 사람들은 ‘분수’에 걸맞게 가지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수’라는 것은 신체적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과거 수렵/채집 사회의 정글 같은 사회에서, 만약 힘이 약한 자가 자신의 힘으로 지키기 힘들 정도로 많은 자원을 독차지하려 한다면, 그는 그 넘쳐나는 자원을 노리는 많은 타자들과의 싸움을 겪어야만 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러한 불필요한 싸움의 결과로 갖고 있던 자원을 잃게 되거나, 설령 지켜냈다손 치더라도, 지켜낸 자원에 비해 훨씬 더 큰 신체적 피해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막무가내로 너무 많은 자원을 지키려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행동이 될 것이고, 그러한 선택을 했던 개인들은 자연 선택의 과정에서 도태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에 ‘걸맞은'(?) 수준의 많은 자원을 차지하려 들지 않는 개인이 있었다면, 그 또한 같은 힘을 갖고 있으면서 그 힘으로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만한 많은 자원을 획득하려 하는 개인에 비해 ‘생존과 번식’ 에 있어서 불리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개인들 또한 진화의 과정에서 도태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진화사는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안겨 주었는가? 바로 ‘나 정도의 힘이면 얼마나 많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는 성향(그리고 그 신경학적 기반)이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타인과 자신의 신체적 힘을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하며, 이러한 능력은 10에서 13개월 된 어린아이들에게서도 그 초보적인 형태가 발견된다고 한다.
일단 자신의 힘을 정확하게 지각했으면, 그다음으로 해야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바로 그 힘에 걸맞게 ‘소유’하는 것이다. 많이 갖고 있으면 내놓고, 적게 갖고 있으면 빼앗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가진 힘에 비해 내가 적게 가졌다고 판단한다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자신보다 약한 자들로부터 자원을 빼앗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격행동’의 원인이 된다고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반대로, 만약 가진 힘에 비해 가진 자원이 많다고 생각한다면(그 자원을 효율적으로 지켜낼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런 사람들은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불필요한 싸움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스스로 가진 자원을 내놓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을 진화시킨 ‘환경’은 비교적 최근까지 계속 이어졌으며, 비록 갈등의 양상이 현대 사회에 들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방식의 정치적 의사결정 방식이 진화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과거의 환경에 맞게 진화된 의사결정 방식, 즉 ‘네 분수에 맞게 소유해라’ 라는 원칙은 현대 사회의 정치적 의사결정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 사회에서 그것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바로 ‘재분배’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만약 힘이 강한 사람이 재산도 많이 갖고 있다면, 그는 그것을 지키려 할 것이다. (나 정도면 이만큼은 가져야지…) 하지만 힘이 약한 사람이 재산을 많이 갖고 있다면, 그는 그 재산을 내놓으려 할 것이다(이 많은 재산을 어떻게 지키나…무서워 죽겠네…). 따라서 힘이 강한 사람은 재산이 많을수록 재분배에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힘이 약한 사람은 반대로 재산이 많을수록 재분배에 찬성할 것이라는 것이 AWA에 기반을 둔 예측이다.
또한 이 이론은 여성들에게서는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이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여성들의 신체적 힘은 남성들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그중에서 비교적 힘이 센 여성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을 공격 행동에 이용하여 자원을 획득하거나 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할수록 빼앗아라’ 라는 행동양식은 여성들에게서는 ‘생존과 번식’의 측면에 있어서 별다른 이득을 낳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성향은 진화되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의 가설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예측된다:
1. 부유한 남성들은 신체적 힘이 강할수록 재분배에 반대할 것이고, 힘이 약할수록 재분배에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남성들은 신체적 힘이 강할수록 재분배에 찬성할 것이고, 힘이 약할수록 재분배에 반대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통계학 용어로 ‘상호작용’이라 부른다.)
2. 여성들에게서는 위와 같은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아르헨티나(남 113, 여 110), 미국(남 211, 여 275), 덴마크(남 421, 여 372)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한편 이 연구에서 중요한 변수인 ‘신체적 힘’은 ‘쓰는 쪽 팔의 이두근에 힘을 주었을 때의 둘레’로 조작적으로 정의되었다. (Fighting ability was operationalized as the circumference of the flexed bicep of the dominant arm) 한편 ‘재분배에 대한 찬성’은 설문조사 방식으로 측정되었으며, 분석에 앞서 표준화되었다(z-score).
연구자들이 얻은 데이터와 그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아쉽게도 Bayesian이 본 논문은 아직 정식으로 출간된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도표가 빠져 있어서 싣지 못했다.)
1. 남성 집단에서 연구자들에 의해 예측된 상호작용 효과(신체적 힘에 따라 재분배에 대해 찬성하는 정도가 달라졌다는 것)가 실제로 관찰되었다. 아르헨티나, 덴마크, 미국에서 각각 p=.003, .007, .001이었고, r제곱 값은 각각 .082, .032, .124였다. 이러한 상호작용 효과는 나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성향, 신체적 운동 등과 같은 변수들을 통계적으로 통제했을 때에도 여전히 유의미했다.
2. 여성 집단에서도 연구자들의 예측대로, 상호작용 효과가 관측되지 않았다. 이는 여성 집단에서 신체적 힘에 따라 재분배에 대해 찬성하는 정도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양방검증 방식으로 하였을 때 p값은 아르헨티나, 덴마크, 미국에서 각각 .24, .54, .73이었다(대개 심리학 연구에서는 p값이 0.05보다 작아야 유의한 차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3. 이러한 양성 집단에서의 상호작용 효과의 차이는 미국과 덴마크 집단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으로 드러났다(3-way interaction effect, 각각 p=.009, p=.033, 단방검증). 이는 ‘신체적 힘에 따라 재분배에 찬성하는 정도의 차이’의 성차(!)가 있었다는 의미다. 비록 아르헨티나에서는 3원 상호작용이 유의하지 않았지만(p=.358), 이는 아르헨티나의 참가자 수가 적었던 것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power 의 부족). 실제로 베타계수는 ‘비슷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09 대 .13)
결론에 대한 비판
이상의 결과는 연구자들의 결론을 지지하는 듯하다. 하지만 몇 가지 비판을 덧붙이고 싶다:
1. 신체적 힘이 재분배에 대한 찬성의 정도를 ‘얼마나’ 설명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위에서 r제곱이 각각 .082, .032, .124였다고 하였는데, 이 수치들은 나라별로 상당히 많이 다를뿐더러 충분히 ‘큰지’도 의문스럽다. 덴마크의 경우, 상호작용 효과에 의해 설명되는, 재분배에 대한 찬성 정도의 분산은 3.2%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논문 저자들이 논의에서 재분배 정책에 다른 요소들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있으나, 이 정도의 효과 크기를 갖고 신체적 힘이 실질적으로 얼마만큼의 ‘차이’를 빚어내는지에 대해서는 알기 힘들다. 사실 연구자들도 신체적 요소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친다’ 정도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지, 그것이 정치적 성향을 ‘결정’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다.
“…Humans are undeniably complex and unusual animals, and other more traditionally accepted factors certainly play a role in determining how individuals approach mass politics. Nevertheless, modern mass political conflict appears to be another important domain of human behavior in which our decision-making bears the stamp of our hunter-gatherer past.”
2. 각국의 통계 수치 차이에서 알 수 있듯, 이 연구는 오히려 원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정치적 성향이 문화적으로 결정됨을 시사하는 하나의 증거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다. 왜 r제곱 값이 국가별로 크게 다른가? (오히려 문화를 독립변수로 한 3원 상호작용의 효과가 유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비록 표본 크기가 달랐다고는 하지만, 왜 아르헨티나에서는 p값이 저렇게 나왔을까? 만약 sample을 더 많이 모았어도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과연 저런 연구결과가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반복검증(replicate)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3. Bayesian이 생각하기에는 제일 중요한 비판. 남성들이 자신의 신체적 힘을 가지고 재분배 정책에 대한 의견을 달리한다는 것이, 과연 연구자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지지해 주고 있는가? 다시 말해, ‘신체적 힘에 대해 지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빼앗을지/내놓을지를 결정하는, 진화된 모듈’ 의 존재를, 이 실험의 데이터가 지지해 주고 있는가? 이 실험의 데이터는 그러한 인지 과정이 학습될 수 있다는 주장을 효율적으로 반박하고 있는가? (Bayesian의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
4. (마지막으로, 이건 약간 트집 같기는 하지만) 3. 에서 갑자기 단방검증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방검증으로 p=.033이었다는 것은 양방검증으로 p=.066이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게 된다)
참고문헌 : Michael Bang Petersen, Daniel Sznycer, Aaron Sell, Leda Cosmides & John Tooby, The ancestral logic of politics: Upper body strength regulates men’s assertion of self-interest over economic redistribution, unpublished paper(forthcoming in Psychological Science).
사족 몇 가지
1. 이 연구가 ‘진보/보수’ 개념과 관련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사실 진보/보수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고, 지형 자체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재분배’ 가 진보/보수의 차이를 드러내는 한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이 연구가 분명 진보/보수 구분과 연관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Bayesian도 이 연구가 진보/보수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2. 뉴스 제목은 확실히 연구를 과장한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뉴스 내용까지 잘못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내용에서는 진보/보수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며, ‘재분배에 대한 신념’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3. 진화심리학 연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 그것과 연구의 타당성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