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길어지는 미국 음악의 히트 기간
한국 음악 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지 몇 년이 지났다. 이들은 외모와 춤 실력, 음악을 모두 갖추며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커질수록 한국음악의 다양성과 대중성은 줄어들고 있다.
새로 나오는 음악들이 사람들의 다양한 음악 취향을 맞춰 줄 만큼 다양하지 못하며, 뜨는 음악들이 특정 팬들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는 경우는 많지만 ‘국민가요’ 수준으로 대 히트를 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하루, 반나절 반짝 1위를 하는 곡들만 무수히 나오고 있을 뿐이다. (참고: 대중가요가 있긴 한가)
반면 미국은 노래들이 히트하는 기간이 오히려 더 길어지고 있다. 빌보드 메인 순위인 HOT 100을 보면, 10주 이상 1위 한 곡이 역사상 33곡인데, 이들 중 절반이 2000년대 곡이며, 2015년 상반기에만 14주 1위(Mark Ronson feat. Bruno Mars), 12주 1위 곡(Wiz Khalifa feat. Charlie Puth)이 나왔다.
이것은 단순히 1위 곡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빌보드 HOT 100에 역사상 62주 이상 순위에 있었던 11곡은 모두 1998년 이후의 곡들이며, 2012년 이후에 기록을 작성한 곡들이 11곡 중 6곡이다. 최고기록은 Imagine Dragons의 Radioactive가 세운 87주인데, 이 곡은 100위 안에 들어온 지 42주만인 2013년 7월 5위 안에 진입하여 제일 천천히 올라온 곡으로 빌보드 역사에 기록되었다. (참고: 역대 빌보드 차트 기록)
한 사람이 음악을 들을 때 아무리 좋아하는 노래라도 1년 내내 들으면 질리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도 이런 순위 움직임이 가능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첫 번째는 순위가 각계각층의 넓은 대중을 대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가 나오면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먼저 접하고 즐기면서, 먼저 특정 장르 순위에서 슬금슬금 올라오며 인기를 얻는다. 그다음 그 곡이 일반인 대상으로 퍼져 나가고, 그제서야 HOT 100에서 올라온다. 1위를 못 해도 10위권에만 들어도 누가 부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들어는 봤다 할 정도로 폭넓게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두 번째 중요한 열쇠는 라디오 에어플레이다. 음반과 음원은 일단 발매가 되면 구입하는 사람들이 몰린다. 그래서 음반/음원 순위는 발표와 함께 1위가 되기 쉽다. 하지만 라디오 에어플레이는 소수의 팬보다는 전체 음악 팬, 대중을 지향하며, 신곡이 나왔다고 해서 라디오에서 종일 틀어주지는 않는다. 비교적 다양한 곡들이 꾸준히 존재하고, 이것이 빌보드 HOT 100에 바로 1위로 진입하는 케이스가 극히 드문 이유다.
빌보드 HOT 100에 1위로 진입한 사례는 역대로 33번인데, 그나마도 절반이 빌보드 순위 선정 방법이 변동될 시기에 운 좋게 1위로 진입한 경우다. 대신 빌보드는 빌보드 200이라 불리는 음반판매 순위를 따로 집계하여 HOT 100과 함께 빌보드를 대표하는 제일 중요한 순위로 관리한다. 그래서 빌보드에는 음반/음원 힘으로 첫 주에 높이 진입했다가, 그 다음에 순위가 훅 내려갔다가, 다시 에어플레이 및 스트리밍의 힘으로 다시 상승하는 M자형 순위변동이 대단히 자주 일어난다.
제이슨 므라즈가 2012년 신곡 I won’t give up을 발표했을 때, HOT 100에는 1월 21일자 순위에 8위로 진입했다. 하지만 다음 주 22위, 그 다음 주 72로 쑥쑥 밀려났었다. 81위까지 내려갔다가, 그 이후로 3월에 50~60위권에 복귀하고 6월에 30위권에 진입, 10월까지 30위권 내에서 움직였다. 이는 2002년 여름부터 2003년 봄까지 이런 장르의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에서 에어플레이가 높았기 때문이다.
스트리밍이 해답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인구도 많고 넓은 땅에서 움직이는 운전자들도 많고, 이 때문에 라디오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상당한 편이다. 이런 차이점을 한국에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해답은 ‘스트리밍’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구입하면 계속 들을 수 있는 음반과 음원. 반대로 넓은 대중의 얇은 선호를 반영하는 라디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스트리밍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만큼 계속 들을 수 있고 그때마다 집계되기 때문에 음반/음원 구입보다는 사람들의 넓고 대중적인 선호를 좀 더 반영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 광고 기반 라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들이다. 미국의 판도라와 Spotify, 한국의 비트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들은 음악 중간에 광고를 삽입하는 대신 수십 가지 이상의 라디오 채널을 통해 무료로 음악을 들려준다. 의식적으로 노래를 찾아 듣는 사람이 아니라도 이런 라디오를 통해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고 알게 되어, 주류가 아닌 음악 장르의 음악 수요자와 뮤지션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일단 여기서 듣는 스트리밍 자체도 저작권 수익을 제공하지만, 그것이 음악에 대한 유료 구입 및 유료 스트리밍으로 이어져 장르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참고: “소비자 선택 폭 넓힌다” VS “음악=공짜” 우려…광고기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논란)
최근 국내에서 비트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음악은 무료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음악 생태계를 흔들 수 있다”, “해외에서도 이런 서비스는 뮤지션들에게 환영받고 있지 못하다”라는 내용이 반발의 골자다. 하지만 이런 반발은 미국시장과 국내시장의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결과다. 우선 미국은 다양한 음악 계층이 다양한 장르의 신곡을 접할 충분한 라디오 채널들이 이미 존재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하고 이런 스트리밍 서비스는 그것을 도와준다.
다음으로 미국은 음원 값이 비싸다. 노래 한 곡이 대부분 1불 이상이며 CD는 아무리 할인을 받아도 7불 이하에 사기 어렵다. 스트리밍도 애플 뮤직이 제공하는 한 달에 10불이 엄청나게 파격적인 가격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다양한 할인을 통해 노래 한 곡에 100원~200원 정도밖에 안 된다. 이미 음악은 제값을 못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스트리밍이 음악의 가치를 더 떨어트릴 이유가 별로 없다. 더 나아가 한국 음악 시장에서 멜론 등 음원 유통사들의 파워가 지나치게 강한 상태이며, 이런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다양해져 경쟁이 붙어야 한다.
이미 유튜브에 올라오는 뮤직비디오 영상은 무료로 볼 수 있고, 음악을 접하는 매체는 계속 다양해지고 있으며, 가격은 내려갈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뜩이나 더 내려간 가격을 붙잡는 것은 뮤지션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음악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먼저다. 30대가 넘어가면 새로운 음악들에 호의적이지 않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만큼 그들의 신곡에 대한 귀는 늦게 열리며, 자주 자연스럽게 노출되어야 한다.
김동률 라디오에서 ‘노리플라이’가 나오고, 이승환 라디오에서 ‘데이브레이크’가 나오고, 국내외 유명 록밴드 라디오에서 ‘게이트 플라워즈’와 ‘언체인드’가 나오면 그만큼 수요창출 및 음악의 전파가 가능하다. 빌보드에서는 아예 청취자가 곡을 선택하여 듣는 일반 스트리밍 차트와, 광고기반 라디오 채널 스트리밍을 통해 듣는 곡들을 별도로 카운트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다. 라디오 채널에서 청취자가 그냥 안 듣고 넘겨 버린 곡은 카운트되지 않고 완전히 청취한 곡만 카운트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음악 순위를 매기면서 음반/음원의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별도로 묶고, 스트리밍, 라디오, 장르별 음악 순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멜론에도 장르별 음악 순위가 존재하지만, 빌보드의 장르별 음악 순위는 스트리밍과 라디오 에어플레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일반 대중들의 음악 기호와 그 특정 장르 팬들의 기호가 다른데 그것이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스트리밍 라디오 채널이 보다 다양해지면 사람들의 음악 청취를 집계하여 순위로 공개하고 그러면 어떤 장르에서 어떤 곡이 인기가 많은지, 사람들이 찾아보기도 쉬워질 것이다. 현재의 여러 장르별 차트는 다운로드가 합계되어 있어 과거의 인기곡들이 여전히 순위에 머물러 있고 새로운 곡들이 올라오기가 너무 어렵다.
판도라에게는 월정액 가입자가 4백만이나 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7천 6백만 대중이 광고를 듣는 대신 무료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스포티파이 역시 2천만 월정액 가입자 외에 5천 5백만 대중이 광고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트가 광고기반 스트리밍 시장을 개척한 이래 월간 청취자 기준 2백만 명 넘게 새로운 합법적 디지털 음악 청취대중으로 거듭났다. 아이돌 위주, 차트 위주의 국내 음악 시장에서도 ‘대중음악’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한국음악이 대중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우려는 광고 기반 스트리밍 등 다양한 스트리밍을 통해 오히려 개선되고 해결될 수 있다. 마치 네이버 웹툰이 만화가 무료라는 인식을 키워 줬지만 반대로는 만화 시장을 엄청나게 넓혀 준 것과도 비슷하다. 게다가 스트리밍은 어쨌든 엄연히 저작권료가 확보되므로 무료가 아니다. 나는 음악도 접근성의 확보가 더 중요하며, 이것은 곧 뮤지션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돌아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