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시장을 믿지 않게 되었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야 날개를 편다”란 말이 있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서 철학의 한계를 지적한 말인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지혜를 뜻하고, ‘날개를 편다’라는 말은 ‘깨달음’을 뜻한다. ‘황혼’이란 말은 ‘일이 끝난 뒤’를 뜻한다. 일이 끝난 뒤에야 모든 것이 명확하여지고, 우리가 진실을 깨닫는다. 나 개인적으론 좀 더 강하게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은 일이 끝나기 전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시장을 분석하는 사람 ─애널리스트, 전문가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은 결과론적인 시각이다. 이들은 어떤 프로덕트가 성공하면 괜찮은 시장에 좋은 전략으로 진입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그 제품이 실패하면 시장이나 전략이 좋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과거만을 말해줄 뿐, 미래를 말해주지 않는다.
사업가가 비즈니스를 하면서 시장을 잘 분석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를 깨달으려면 그의 제품이 성공하거나, 실패하여야 한다. 그러나 제품이 성공하거나 실패한 이후에나 시장 분석을 잘 했는지/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면, 시장 분석을 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 것인가?
시장 분석은 어쩌면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닐 수도 있다. “어떤 어떤 분석론에 근거하여, 어떻게 분석을 하였습니다.”라는 것에 대해 대학 리포트 맞추듯 A, B, F 학점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결국 이런 분석의 이론 그 자체가 맞는지 틀리는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제껏 대강 맞아왔습니다”라는 말과 “앞으로도 맞출 것입니다”의 상관관계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미술 시장으로 본 비즈니스
SW비지니스(인력 베이스의 SI는 제외한다) 와 가장 비슷한 필드로 난 미술 시장을 들고 싶다. 2등 제품, 아류 제품과 오리지널의 시장이 극명하며, 복제품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상은 본질의 일부분만 반영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본질을 모두 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든 것을 문서화 할 수 있는 제품이 예일 것이다. 보통 정부 쪽에서 요구하는 KPI들이 이렇다. “지름이 1cm, 길이가 3cm, 강도가 얼마인 나사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누가 만들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제품은 제작자가 목표로 하는 이데아를 현실로 모두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보자. 그림판으로 까만색을 칠한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의 까만색일 뿐,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처럼 위대한 그림이 될 수 없다.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미술이 표방하는 의미라던가, IT가 표방하는 고객 만족이라는 것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리이다. 기의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기표의 숙명과 같이, IT 제품은 결코 영원히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고객을 끝없이 쫓아간다. 제품이 고객에게 도달한 그 순간, 고객은 다른 제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피캣이 향하는 시야는 이데아가 아니라 1등 제품이다. 여기서 필연적 왜곡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요즘 어떤 제품이 뜨고 있으니 우리도 같이 해보자.”라는 식의 대응을 보자(보통 이런 일은 정부가 한다). “닌텐도가 떴으니 우리도 명텐도를 개발하자.”라든가, “미국에 애플과 페이스북이 떴으니 우리도 IT를 밀자.”라는 말로 창조경제란 해괴한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성공하기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IT는 그림과 같이, 결코 문서화 할 수 없는 제품류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널이 고객을 바라보고, 이데아를 상상할 동안, 카피캣은 오리지널을 바라보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오리지널의 차이점을 메꾸고, 오리지널 너머에 있는 있지도 않은 고객을 상상한다. 결국 오리지널과 동일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고객을 찾아보려 하지만, 사실 카피캣이 상상하는 고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고객은 오리지널이 가지고 있는 심미안으로만 찾을 수 있다.
게임업계에서 성공하는 사람치고 덕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들의 이상향은 피규어라던가, 만화책들이 향하는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피규어를 보고 찌질하다고 무시하고, 양복 입은 사람들에게 환장하면서 닌텐도를 쫓았다. 성공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애플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의 이상향은 선(禪)이라든가, 요가 난다라든가, LSD에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어우러져 애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우린 이런 것을 다 무시하고 애플의 시가총액만 추종하고 있지 않은가. 시가총액은 한낱 결과일 텐데 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야 날개를 편다
같은 시장이라도 결과는 누가 공략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예전에 학생 때에는 애널리스트라던가 컨설턴트처럼 열심히 시장을 분석하고 공부를 하면 사업을 잘하게 되는 줄 알았다. 요즘 들어, 그 분석, HBR(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케이스스터디 같은 것들은 일종의 결과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의 나는 성공한 사업가(투자를 많이 받거나, 돈을 많이 번 사업가가 아니라,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는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영전략이나 재무를 열심히 공부하고 마켓을 열심히 공부하느냐보다, 자기 자신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운명을 그저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핀터레스트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핀터레스트가 정리에 관한 결벽증이 인터넷을 통해 승화된 케이스라고 생각하면, 카피캣들은 이러한 정리정돈에의 집착을 쫓지 않고 핀터레스트의 UI만을 쫓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내 개인적 경험과도 연관이 있다. 사실 나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못 하는 편이다. 이 때문에 영업 베이스의 사업을 했을 때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돌이켜보건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잘하는 것은 실타래처럼 얽힌 쉬운 여러 개의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매우 명확하고 어려운 한 개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는 내 코딩스타일이나 컴퓨터를 다루는 방법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난 내 컴퓨터의 모든 곳에 자동화 툴을 설치해 넣곤 했다. (심지어 크로스컴파일을 할 때에도 3글자 이하의 명령어만 썼다. 옵션? 그런건 모두 쉘스크립트로 처리했다.) 이러다 보니, HTML이나 CSS에 대해선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한 성격이고 (한 번에 파일 10개를 열다니! 설계자는 생각이 있는 건가!) , 언어레벨부터 디자인까지 전체를 통합하는 엔드투엔드 시스템으로 뜯어내 고치지 않고서는 성격이 못 버텼던 것이다.
결국 내 생각은 이렇다. 성공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비싼 돈을 주고 시장 조사기관 숫자 열심히 엑셀로 옮겨적은 다음 “이런 비즈니스가 유망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절간에 들어가서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한 다음, 그냥 그 잘하는 것을 계속하고 먹고 살다가, 언젠가 세상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가 되었을 때 세상에 나오면 그것이 진정한 혁신이 되지 않을까?
내가 잘하는 것이 마켓이 크면 기쁘게 사업을 키우면 되고, 마켓이 작으면 그런대로 먹고 살면 되지 않을까 한다. 이것이 내가 마켓은 제품의 후행팩터라고 믿게 된 이유다. 마켓이 큰지, 작은지는 부엉이가 날개를 편 이후에나 알 수 있을 뿐이다.
시장보다, 내가 중요하다.
원문: JD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