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회복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마이클 루이스와 팻 코너티가 쓴 『전환의 키워드, 회복력』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보다 450원 오른 6,030원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던 노동계의 실망과 반발은 당연지사.
학자금 대출이나 월세에 쫓기고 아르바이트나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는 이들에게 6,030원은 그리 큰 금액이 아니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이들의 생활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 수준의 생계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다. 내일을 위한 저축이나 투자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 조건인 셈이다.
“6,030의 의미를 곱씹습니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26만 원입니다. 2015년 116만 원 대비 약 10만 원이 인상 된 금액입니다. 현재 저임금 노동자의 삶은 생존을 위한 기준선에서 적자 상태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 적자 기준선을 흑자로 전환하고, 남은 여백을 인간으로서의 삶과 존엄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입니다. 126만 원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고 가야 할 길이 많은 금액입니다.
하지만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 현재의 삶은 끊임없이 역동합니다. 저는 이 10만 원이 고된 취업준비 끝에 오는 커피 한 잔, 영화 한 편의 여유로 기억되길 소망합니다. 집에 있는 자식들에게 짜장면을 사주면서 탕수육도 함께 시켜주고 싶다는 어머니의 간절함으로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단 몇만 원이라도 저축함으로써 불투명한 미래를 조금씩이라도 구체화시켜나가길 소망합니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민수
한편, 최저임금 6,030원에 얽혀있는 사회 각층의 이해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450원 인상이 결정되자 영세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사용자’라고 하나로 뭉뚱그려 전부 다 똑같다고 볼 수만은 없다. 내수부진과 임대료 및 각종 비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자영업자들은 ‘월급쟁이’보다 못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전환의 키워드, 회복력』에서 ‘회복력'(resilience)이란 ‘어떤 시스템이 견뎌낼 수 있는 변화의 정도’를 말하는 생태과학의 개념이다. 생태계가 외부환경의 교란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능력을 뜻한다. 이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과 더불어 공동체가 재난에 처했을 때 이를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 개념이다.
‘회복력’의 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6,030원의 대한민국 사회는 어떠한가. 만약 회복력을 산술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회복력’은 바닥 수준이지 않을까.
두 번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벼랑 끝으로 밀려가는 사회적 약자들은 생존을 건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최저임금 6,030원을 둘러싼 갈등은 ‘강자와 약자’가 아닌 ‘약자와 약자’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불편하고도 고통스럽다.
사회가 ‘회복 불능’의 상태로 완전히 빠져들기 전에 우리는 어떤 조치들을 취해야 할까.
경제성장 지상주의에서 회복력 지상주의로
책에서는 기후변화, 석유정점, 도박판과 같은 경제를 ‘불확실성의 삼위일체’로 규정하고 우리가 현재 사는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면 인간의 어떠한 존엄성도 보장받지 못한 채 생존 자체를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지금 필요한 것은 급진적이면서도 빠른 변화다. 이들이 말하는 전환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경제 성장 지상주의’에서 ‘회복력 지상주의’로의 변화다. 성장의 신화에서 벗어나 경제를 시장으로부터 사회로 환원시키고 협동의 원리에 기초해 공동체의 부를 창출해야 한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적 민주주의와 평등적 실천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생태-경제 전반에 드리워진 만성적인 위기를 극복하려면 ‘회복력’의 관점에서 각 분야를 재조직해야 한다.
1931년 덴마크 농부들이 농장 압류를 막기 위해 시작한 ‘JAK 무이자 협동조합은행’은 회원들의 예금을 공동출자해 무이자로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다. 아무런 통제 없이 부채를 만들어내고 폭리를 취하고 있는 현대금융시스템의 원리를 거부하는 ‘JAK 무이자 협동조합은행’은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무이자 은행 시스템의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미국 몬트리올의 극빈 지역을 탈바꿈시킨 ‘사우스웨스트 경제사회그룹’은 지역공동체의 민간, 공동 및 시민사회의 다리를 연결하고 기존의 분리된 영역들을 소통시킴으로써 경제 민주주의의 역동적인 모델을 만들어냈다.
소득이 낮은 지역주민과 지역공동체를 돕고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충분하고 적정한 생활, 노동 및 학습의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사명을 추구하는 ‘연안기업’은 미국 내 4천여 개 ‘지역공동체개발금융기관’들 중에서도 선두주자로 평가된다. ‘연안기업’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공공, 민간 및 시민사회 등 공동체와 지역사회에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과 조직체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결합한 자원들을 만들어냈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회복력은 사라지고 있지만, 다행히 아직 ‘전환점’은 지나지 않았다는 희망의 신호들이다. ‘전환점’이란 어떤 시스템에 누적된 스트레스의 영향이 너무 심각해서 원래의 기능과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시점(332쪽)을 말한다.
저자들은 인류가 전환점을 넘어서기 전에 ‘회복력 지상주의’를 통해 ‘궁극의 균형경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의 균형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네 가지의 추진전략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공유재의 확보. 배타적인 사유재산권에 의해 창출된 ‘칸막이’를 제거하고 공유재를 확보해야 한다.
공유재의 범위는 토지나 자연자원에 국한하지 말고 자본, 우리들이 생존하는 터전, 우리가 의존하는 생물권을 모두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민주주의의 재창출. 회복력 있는 사고는 우리의 민주적인 움직임들을 확장시키고 더 실효성 있게 행동하기 위해 권한을 분산시킬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분권화되고 더 자율적인 지역공동체는 전환을 위한 전략적 자원이자 그 자체로 목표이다.
셋째, 사회연대경제의 구축. 연대는 공동체의 회복력 증진 전략을 고안하고 실행하는 틀이자 공유재를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선점하는 것이 아닌 협동의 방식으로 진전시켜내는 것이다.
넷째, 인류와 지구의 문제에 대한 가치 측정. 지속가능한 경제는 지구가 가진 생태적인 한계 내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과연 경제를 사회적 형평, 생태적 현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조직할 수 있는가와 보다 앞선 목표에 주목할 수 있는가이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상적 민주주의와 평등의 실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구체화해야만 하는 변화 과정의 모든 것이다. 민주주의는 비록 가치는 있지만 배급된 시민의 권리 정도의 수준에서 탈피하여 일상적인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행동하는 소비자, 생산자, 사회적 투자자, 참여하는 시민 이해관계자로서 경제민주주의를 실천한다면, 우리는 상호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향한 문을 활짝 열어젖히게 될 것이다.(587쪽)
원문: 시골 아낙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