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장 맛있는 초밥부터 먹는가, 가장 맛없는 초밥부터 먹는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 선택의 문제에서 뇌과학자들은 중요한 의미를 찾는다.
점심 메뉴는 초밥(스시)이다. 다양한 초밥이 나왔다. 당신은 가장 맛있는 초밥부터 먼저 먹겠는가, 가장 맛없는 초밥부터 먹겠는가?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고, 뭔 상관이냐고? 과학자, 특히 뇌 과학자들에게는 초밥을 선택하는 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실제 148명을 대상으로 실험하고, 국제 학술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실험 과정은 이렇다. 20개의 초밥이 놓인 접시 앞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이긴 사람이 먼저 초밥을 먼저 고르고, 진 사람이 그다음 초밥을 선택하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7차례 되풀이했다. 실험이 끝났다고 알려주고 초밥을 편하게 먹도록 했다. 이 결과 좋아하는 걸 제일 먼저 먹는 사람이 40%, 맨 나중에 먹는 사람이 35%, 특별한 순서 없이 아무렇게나 먹는 사람이 25%로 각각 분류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성의 경우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먼저 먹는 경향이 45%로 매우 강했다. 이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변수는 형제의 수였다. 막내로 갈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또 눈길을 끄는 건 좋아하는 초밥을 제일 먼저 먹은 사람들은 그다음 좋아하는 초밥을 2번째, 3번째로 먹는다는 점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맨 마지막에 먹는 사람들도 같은 경향을 보였다.
이 같은 연구 분야는 ‘의사결정의 동역학’으로 불린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뇌는 점심시간 대화하며 식사를 하는 시간에도 어떤 초밥을 언제 먹을지 정교하게 선택하도록 만든다. ‘최고의 맛’을 통해 식사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다. 초밥은 알고 있는 셈이다. 당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초밥 선택 방식 통해 비선형적 복잡계 탐구
정 교수는 이 실험 결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연구결과는 각각의 초밥이 개인에게 주는 보상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먹는 순서에 따라 보상의 총합은 달라질 수 있으며 적절한 패턴으로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음을, 즉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비선형적인 복잡계가 보이는 굉장히 중요한 현상입니다.
여전히 사람의 뇌는 미지의 세계다. 첨단과학도 그 일부만 비밀을 풀어냈을 뿐이다. 세계 각국은 무게 1.4kg에 불과한 ‘또 다른 우주’를 개척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오바마 존 대통령은 2014년 ‘BRAIN(Brain Research through Advancing Innovative Neurotechnologies)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첫해 예산만 ,1000억 원에 달한다. 두뇌 활동의 모든 경로를 지도로 만들어 그 작동 원리를 밝혀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뇌 영상이나 뇌의 활동을 빛으로 조절하는 광유전학 등이 등장한 것이다. 한때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지만, 그 말은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뇌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동시에 뇌 과학은 다른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생명과학이나 의학뿐 아니라 IT, 정치학, 경제학 등 인간활동과 관련 있는 거의 모든 분야와 접촉을 시도한다. 덩달아 뇌 관련 책도 쏟아져 나온다. 서점에 가면 뇌 과학서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뇌에 대한 전문적인 책부터 뇌를 프리즘으로 삼아 인간의 각 분야를 다룬 대중교양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회사로 오는 과학서적에서 뇌 과학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눈에 띄게 늘고 있다.
『1.4킬로그램의 우주, 뇌』는 ‘KAIST 명강’ 시리즈 두 번째로 출간된 책이다. KAIST 명강은 일반인을 위한 과학기술 교양 강좌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사이언스북스와 KAIST 출판부가 공동기획한 단행본 시리즈다. 지난해 출간된 시리즈 첫 번째 책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정하웅, 김동섭, 이해웅 교수의 강연을 담았다. 두 번째 시리즈인 이 책은 ‘국가대표 뇌 과학자’로 꼽히는 정용, 정재승, 김대수 KAIST 교수가 참여했다.
“책을 펼치는 순간 강의 듣는 학생이 되기를”
뇌 연구자이자 뇌 질환을 고치는 의사인 정용 교수는 장대한 진화의 역사와 인간 개인의 역사를 넘나들며 뇌의 일생을 들려준다. 복잡계 과학으로 뇌를 분석하는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인간의 의사결정과 선택 뒤에 숨겨진 뇌의 작용 기작을 파헤친다. 김대수 교수는 쥐의 뇌전증을 다룬 획기적인 논문으로 대학원생으로는 최초로 ‘네이처’에 뇌 과학 논문을 기고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뇌를 통해 생명의 궁극적인 목표인 생존과 번식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낸다.
이들 세 명의 뇌과학자는 각각 다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선다. 뇌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일생을 겪는가? 뇌는 원하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뇌는 어떤 전략을 갖고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는가?
그리고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 중인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와 나눈 정담(鼎談)을 통해 강연에서 다 풀어놓지 못한 뇌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담의 주제는 ‘뇌 과학은 신인류의 꿈을 꾸는가?’ 뇌 과학 기술이 가져올 미래, 뇌 과학을 둘러 썬 논쟁적인 이슈들을 풀어냈다.
진 교수는 특유의 입담으로 세 명의 교수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철학 하는 입장에서 보면 뇌 과학자들이 좀 위험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김대수 교수님은 전극을 꽂아서 행동을 관찰하지 않습니까? 여기까지는 괜찮아요. 그런데 정재승 교수님을 보면 그것으로 남의 생각을 읽으려고 하시거든요. 그러면 굉장히 원초적인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당신 뇌 좀 스캐닝합시다’, ‘영장 받아 오셨나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것은 독자들의 궁금증이기도 하다. 최고의 뇌 과학자들에게 강의를 들어도 뇌는 여전히 어렵다. 책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공부하는 학생’의 자세로 잠시 돌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자들도 이렇게 주문한다.
독자들이 책을 펼치는 순간 대학 시절로 돌아가 좁은 강의실에서 열정으로 가득한 강의를 듣는 학생이 되기를, 그래서 일상으로 녹초가 되어 버린 우리 사회에 24시간 앞만 보며 달려가는 이 한반도가 학구열에 불타오르는 ‘KAIST 캠퍼스’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놀랍게도 사람은 하루 평균 1만 번 ‘선택’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우리가 스스로 뭔가를 선택했다고 인식하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손에 쥔 우리도 동시에 수많은 갈등과 고민과 선택을 하게 된다.
너무 고민하진 말자. 책을 읽는 동안 잠시 학생으로 돌아가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출석도 부르지 않고, 과제도 없으며, 무엇보다 시험과 평가도 없다. 이런 점에서 책은, 독서는 최고의 ‘학교’로 불릴만하다.
원문: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