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C는 채무자의 신용을 분석할 때 적용하는 가이드라인이다.
1) Capacity(갚을 능력), 2) Characte(갚을 의지), 3) Collateral(담보), 4) Covenant(채무조항)에서 앞글자를 하나씩 따왔다. 일종의 글로벌 스탠다드인데, 나는 회사채를 볼 때 위의 기준을 하나씩 따져본다. 기준을 적용해서 문제가 있으면 그만큼 부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을 제공할 당시 EU와 IMF 멤버들도 그리스에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을 텐데, 나도 궁금해서 4C를 그리스에 적용해 봤다.
1) Capacity(갚을 능력)
채무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본다.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기업의 경우 유동성, 이익률, 부채비율 같은 정량적 지표를 유심히 봐야 한다. 국가에 적용하면 GDP대비채무비율, 재정적자비율, 대외채무비율 등 이다.
그리스가 첫 구제금융을 받던 2010년에 GDP대비국가채무비율과 GDP대비재정적자비율은 각각 150%, 12%였다. 2012년 haircut 이후에도 해당 비율들은 각각 160%, 8%였다.
적자국가가 저 많은 빚을 어떻게 갚는단 말인가.
2) Character(갚을 의지)
다음으로 중요한 게 갚을 의지다. 어떻게든 아껴쓰고 쥐어짜서 돈을 갚으려는 채무자가 있는가 하면, 빚내서 흥청망청 쓰다가 배째라는 채무자도 있다. ‘의지’는 정량적으로 판단하긴 힘들다. 기업의 경우 기업문화, 경영자의 마인드 같은 정성적 요소를 판단해야 한다. 국가라면 정치, 문화, 국민성쯤 되겠다.
과거 부도 경험이 있는 회사는 주의해야 한다. 한 번 부도났던 회사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쥐어짜면 부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상습적으로 부도를 선택하곤 한다. 특정 기업에 나태한 문화가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거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회사는 유심히 봐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라서 상습 부도국가가 존재한다. 로고프 교수의 『이번엔 다르다』에 따르면 그리스는 1800년 이후 무려 7번이나 채무를 불이행했다. ‘갚을 의지’가 별로 없다고 이미 증명한 셈이다.
3) Collateral(담보)
갚을 능력&의지가 미덥지 못하면 담보를 잡아야 한다. 대상이 기업이면 공장, 본사 건물 등 유형자산을 담보로 잡아놓고, 돈 안 갚으면 해당 담보의 소유권을 가져오면 된다.
국제기구가 돈을 빌려주면서 타국의 소유자산을 담보로 설정하는 게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스는 갚을 능력과 의지 모두 부족해 보이기 때문에 담보를 (설정할 수 있다면) 받아야 했다.
채무를 불이행하면 그리스 섬, 신전, 공항, 항만 이런 것들 다 몰수 하는 것으로…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담보가 있었다면 그리스가 대놓고 배째진 못했을 것이다.
4) Covenant (채무조항)
채무자의 ‘흥청망청’을 제약하는 조항을 설정하면 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테면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부채비율이 정해진 퍼센트를 넘으면 만기 이전에 채무를 강제 상환하도록 조항을 달면, 해당 기업은 재무 건전성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경우 ‘긴축’이 ‘조항(Covenant)’이었던 셈인데, 너무 타이트하게 설정하는 바람에 그리스의 경제를 더 위축시켰다. ‘조항’이 거꾸로 채무 상환능력을 감소시키고 말았다.
종합해보면, 그리스는 갚을 능력(Capacity)과 의지(Character)가 처음부터 미심쩍었는데 담보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무리한 조항(Covenant)까지 설정해서 상대의 채무 이행 능력을 오히려 감소시켰다.
배째라고 버티는 채무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갚을 능력 없는 상대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권자도 잘한 것 같진 않다.
원문: 부엉이 소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