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활동을 하면서 가장 관심 있는 주제 중의 하나가 ‘늙은 개발자들의 상황’에 대한 부분이다. 회사 내에서 진급하지 않고 실무를 하는 개발자의 경우나 정리해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는데 새로운 회사에는 들어가기 어려워지는 경우, 그렇게 떠밀려서 창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 나이가 들수록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충분한 소득이 없는 경우 등.
나이 든 실무 개발자의 경우는, 얼마 전 송재경 대표와 이야기에서 힌트를 좀 얻었다. 경영자가 나이 든 개발자들이 관리 업무를 하지 않고 개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면 문제가 약간 쉽게 풀릴 수도 있다. 늙은 개발자의 장점은 ‘실패해봤다’는 부분에 있다. 젊은 개발자들에 비해서 두뇌 회전이 빠르거나 체력이 뒷받쳐 주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적 직관적으로 (실패를 줄임으로써) 문제를 푸는 방법을 좀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실무자를 지향하는 나이 든 개발자가 사회에서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더러 있다는 거다. 마흔쯤 된 사람이라면 대충 부장~이사급은 되어야 그럴듯해 보이고, 뭔가를 이룬 것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우리 윗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전적인 조직 구조에 대한 이해는, 대학을 졸업해서 회사에 입사하고 X년 차가 되면 대리, X년 차가 되면 과장… 하는 식으로 진급해 마흔쯤이면 부장쯤 되는 게 정상적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현대의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이 공식은 완전히 틀린다. 이십 대~삼십 대 초반에 좋은 아이디어로 창업을 해서 성공한 사업가들이 수두룩하고, IMF 이후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졌으며 ─엄밀하게 말하면 대기업들이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뭉개버린 것이지만─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프로젝트 단위 이직이 아주 흔한 일이 됐다.
결국 이제 나타난 ‘늙은 실무자의 문제’는 이렇게 된다.
- 고용 단계의 문제: 젊은 관리자가 늙은 개발자를 뽑고 싶지 않아 한다.
- 주도권의 문제: 리더-팀원 관계에서 주도권을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 사내 호칭의 문제: 늙은 개발자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른다.
- 관리 업무의 문제: 나이가 들면 으레 관리 업무를 해야 한다, 혹은 높은 직급을 가져야 한다.
- 연봉의 문제: 직급이 낮으면 높은 연봉을 주지 않는다.
- 이미지의 문제: ‘젊은 기업’ 이미지에 ‘늙은 개발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내 호칭의 문제라거나 위계의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 부분인데, 젊은 리더의 경우 늙은 실무자의 관록과 경험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이건 마치 군대의 소대장과 고참 부사관의 관계 같은 느낌이고, 실제로 이 문제의 해결 방법도 군대와 같이 서로 존중해주는 선이 합리적일 수 있다. (또 그 안에서 다양한 문제와 변화들이 나타나겠지만.)
급격하게 변화(진화)하고 있는 IT 업계에서 구시대적인 조직론 관리론이 적용되고 있으면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고, 사회가 IT로 변하는 동안 변화하지 않고 뒤처지는 업계의 관념과 이쪽 업계의 관념이 충돌하는 그런 상황이기도 하다.
최근 나타나는 모든 면에서 그렇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적응하고 변화하는 쪽과 기존의 관념을 보수하려는 쪽과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다. 이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환경이 변하고 있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존을 못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 진화의 관점에서 적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20년 동안 발전한 기술은 그 이전 2천 년 동안의 발전보다 빠르고 급격했다. 인류는 지금 겪어본 적이 없는 급격한 환경 변화로 진화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적응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느냐 이 기술들을 과거의 사회에 다시 끼워 맞추느냐 뭐 그런 선택 사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문 : Nairrti 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