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시팅(House Sitting)은 거주자가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집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일이다. 빈집털이 방지와 함께 때때로 반려동물 관리가 옵션으로 따라오기도 한다. 오래된 주택의 경우 장기간 수도나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어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이뤄진다.
미국에선 출장 간 비즈니스 우먼네 집, 호주에선 친구의 친구네 가족이 프랑스로 가족 여행을 두 달간 갔을 때 해본 적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선 듣도 보도 못했는데. 타인과 집이라는 공간을 쉽게 공유하지 못하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고, 집에 죽고 집에 사는, 이른바 집을 신성시하는 분위기 탓에 집은 공유의 대상에서 일찌감치 벗어난 완벽한 소유의 대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
렌트한 집을 장기간 비울 때 다시 렌트하는 서브렌트도 힘든 것이, 집주인이 걸고넘어질 소지가 많은 데다 설사 괜찮다고 해도 눈치는 또 오죽 보이겠나. 특히 우리나라는 같은 건물에 건물주가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서 이거 꽤 지옥 같을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에서 집은 그 자체로 신성불가침의 존재, 집값 떨어지니 남편은 집안일도 하면 안 된다. 부동산 만만세.
서울 한복판에서 찾은 하우스시팅
하우스시팅 자리를 내놓으신 분은 싱어송라이터다. 아일랜드로의 음악 여행 두 달간 고양이를 돌보면서 집도 봐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위치는 내가 사랑하는 마포구. 문제는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이었는데, 어지간한 촬영 일정이 모두 4월부터 시작하는지라 이왕 있을 거 두 달 눌러앉아 있다 가자 싶어 얼른 손을 번쩍 들었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진짜 살림집으로 간만에 복귀하니 참 여러 가지 손이 가는 것들이 많았다. 공과금, 우편물, 보일러(단독주택인지라 혹독한 추위에 여러 번 말썽을 부렸다), 수도 검침, 정화조 청소 신청, 그 외 청소나 설거지 같은 걸 제외하고라도 은근히 일일이 손이 가는 집 관리.
재고가 부족한 물자 조달 및 상태 불량한 물자 교체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닌 것이 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했다. 집을 소유한다는 게 참 어떻게 보면 돈도 돈이지만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잡아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성찰과 함께 꼼꼼히 쓸고 닦으며 지냈다.
산더미 같은 짐, 판매와 기증으로 정리하다
행정처리 외에 이번에 서울에 머무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항상 마음속에 짐짝처럼 머무르던 서울에 남겨놓은 짐 정리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는 다~ 쓸 데가 있겠지!”라며 각종 살림살이며 옷이며 하는 것들을 싹 다 창고 서비스를 이용해 맡겨 놓고 나갔다.
짐 보관 서비스는 1-2평 단위로 이용할 경우 경기도나 충청도 쪽에 창고를 가지고 있는 곳들이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하다. 지방은 방문 서비스 가격이 왕복 10만 원을 훌쩍 넘고, 서울은 픽업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이 지방의 2-3배로 무지막지하게 비싸다.
소량이고 서울 보관을 원했기에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다 최종적으로 맡아줘박선생을 선택했는데 가격도 가격이고 서비스 면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박스 단위로 보관하고 1박스당 월 1만 원. 나처럼 비규격 보관 물품도 보관이 가능하다.
아래의 짐무더기는 한국보관시스템을 통해 보관했다. 1평 이용 시 1년에 20만 원대. 정리를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쑤셔박다시피 하고 나갔던 터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카오스다. 지옥도가 따로 없다. 한 방에 깔끔하게 처리할 방안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벼룩시장을 열기로 했다.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최종적으로 남은 거대한 옷 박스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기증 과정은 간단했다. 대량 기증의 경우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일시를 예약하면 아름다운 가게에서 기사님이 직접 와서 픽업해가신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한국에 남게 된 짐은 슈트케이스 하나와 짐 가방 하나. 코트를 비롯한 겨울옷, 서류, 사진첩, 편지 등이 들어 있다. 이렇게 내가 이번에 팔거나, 주거나, 기증하면서 정리한 짐은
- 노트북 2개
- 아이패드
- 고프로
- 헤드셋 2개
- 디지털카메라 2개
- 블루투스 스피커, 전자사전, 무선공유기 등 각종 전자기기
-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빨래건조대, 밥솥, 다리미 등 각종 살림살이
- 커피 테이블, 3단 선반
- 셀 수 없는 가방과 신발
- 3단 메이크업 박스, 메이크업 파우치 5개, 대형 메이크업 브러쉬 세트, 각종 화장품
- 옷 가장 큰 이사 박스로 2박스
- 여행 배낭 2개와 슈트케이스 2개
- 우쿨렐레
- 책과 음반
- 각종 그림, 이젤, 기타 인테리어 소품
이 정도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짐을 정리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바로 “이 많은 것을 도대체 왜 사 모았을까?”였다. 당시에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샀을 텐데 지금 보고 있으니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가. 그 대답은 아래 영상 2분 30초가량부터 나온다.
서울을 떠나면서 느낀 소유의 문제
큰 TV, 반짝거리며 빛나는 새 벨트, 멋진 핸드백, 드디어 살 수 있게 된 이 신발, 드림카, 매주 우리는 새로운 물건을 좇는다. 우리가 남겨진 이 슬픈 현실의 그림자에서 우리는 이 구멍을 채우기 위해 물건들을 장만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입고 싶지 않은 옷을 입고 당신과 하등 관계없는 일들로 당신의 인생을 소모한 대가로 얻는 것들이다. 이게 바로 당신의 인생이다.
경험을 살 수 있는 시간과 돈을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에 해결이 가능한 물건을 사는 일에 소모하는 것 말고 우리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던가. 회사에서 내 삶의 일부분과 맞바꿔 얻은 돈을 회사에서 생산한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다시 반납한다.
내가 저질러 놓은 것들을 펼쳐놓고 보자니 정말 많이도 이것저것 끌어다 모았다. 몇 번 쓰지도 입지도 않는 것들을 한 번씩 보고 쓰다듬는 변태 짓(?)에서 만족감을 얻으며 지내다 이제껏 이 많은 물건들 중 없어서는 안 되는, 내게 정말 필요한 물건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길 위에서 깨달았다.
노마드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무런 자각 없이 물건을 쌓아둘 고정된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만족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장만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내 소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정말 내게 필요한 물건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지. 그리고 그 나머지 소유물들이 내 삶에 끼치는 영향력은 또 어느 정도 될지. 이런 문제는 생각해볼 만한 화두다.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처분하고 노마드로 1년을 보낸 한 기업가의 이야기 ‘Why a Tech Entrepreneur Got Rid of All Her Possessions and Lived as a Nomad for a Year’도 읽어볼 만하다.
원문: Dare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