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rna Gupta의 Why a Tech Entrepreneur Got Rid of All Her Possessions and Lived as a Nomad for a Year 를 번역한 글입니다.
성공한 기업가인 그녀는 왜 모든 소유물을 처분하고 디지털 노마드로 1년을 보냈을까
내 남편 Parag와 나는 캘리포니아의 로스 알토스 힐에 있는 침실 4개짜리 우리 집의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우리는 체력 단련실로 쓰던 방에 들어왔고, 나는 잽싸게 어떤 물건들이 이 방에 있는지 확인했다. 러닝머신, 사이클, 스테퍼, 아령 세트, 그리고 벽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거울들.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다림질 방’으로 소개하곤 했던 방에는 다리미판, 손님용 침대, 서랍장, 스탠딩 램프, 그리고 쿠션들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기부하자는 데 동의했다.
다이닝 룸에는 우리가 이사 왔을 때 설치했던 고화질 빔 프로젝터와 벽을 한 가득 채운 스크린, 최첨단 음향 시스템, 그리고 L자 모양의 소파가 놓여 있었다. 남편은 나를 바라보았고 우리 모두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왜 우리가 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걸까?
2년 전 우리는 아틀란타의 한 소박한 집에서 살았다. 남편은 조지아텍의 교수로 인공 지능과 음악을 가르치고 있었고, 나는 별다른 월급 없이 내 사업을 홀로 꾸려 나가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Old Fourh Ward로 알려진, 무단침입과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자동차들이 그다지 별일이 못 되는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벼룩시장에서 찾은 중고 소파와 이케아에서 사온 발 발판, 그리고 오래된 텔레비전 정도였으니까.
7월의 어느 날 아침, 나는 엄청나게 긴장한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내 남편과 함께 착안했던, 음성을 노래로 바꿔주는 내 가장 최근 스타트업 ‘Songify’을 며칠 전에 론칭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의 앱이 앱 스토어에서 몇 위에 올라가 있는지를 확인했고, 내 일생일대의 충격을 경험했다. Songify는 무료 앱 분야에서 전세계 1위에 올라와 있었다. 내 메일함은 방송국과 신문사들이 보내온 인터뷰 요청 이메일과 우리의 향후 계획에 대해 궁금해하는 투자 회사들의 이메일로 가득 차 있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6개월 안에 우리는 베이 에어리어로 이사했고 우리의 스타트업은 실리콘 밸리의 한 회사에 합병되었으며, 우리는 그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 우리에겐 난생처음으로 돈이 생겼고, 경치가 좋은 동네에 있는 멋진 집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마치 댐을 트는 것과도 같았다. 우리는 이웃들의 창문을 통해 그들이 가진 멋진 가구들을 발견했고, 진입로에 놓여 있는 비싼 차들을 보았다. 우리 집 양쪽에 있는 집에는 끝이 안 보이는 수영장이 바로 아래에 포도밭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었다. 첫 번째 닷컴 버블 때 자신의 회사를 거금에 팔아넘긴 한 이웃은 자신의 아이들이 더 많은 야외활동을 하도록 자신의 집 마당에 집 라인을 설치했다.
우리는 사고 사고 또 샀다. 페르시안 양탄자, 에스프레소 머신, 그리고 장식용 램프들. 그리고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프라이빗 소셜 클럽에도 가입했다. 우리의 와인 취향은 희귀한 나파산 와인들로 인해 갈수록 고급스러워졌다.
“텔사가 좀 더 기술적으로 좋아 보여. 그리고 환경에도 좋은 걸.”
라고 내가 말하면 남편이 반박했다.
“하지만 마제라티가 더 멋진 걸”
“당신이 신경 쓰는 건 오직 멋있게 보이는 것뿐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우리는 전혀 싸운 적이 없었다. 우리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내려 애쓰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아틀란타에 살 적에 코스타리카에 있는 서핑 타운으로 여행갔던 일을 떠올렸다. 우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사는 사람들을 만났고, 한 곳에 몇 주건 몇 달이건 머무르면서 기분따라 옮겨 다니는 사람들을 만났다.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경험과 모험을 좇아 사는 이 삶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충분한 금액의 돈을 저축해왔다. 우리는 함께 소설을 쓰는 것이나, 서핑을 배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지금이 이 꿈들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아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거나 어느 날 또 다른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단순하게 노마드로서 책을 쓰면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우리는 가구 몇 개와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몇 가지 물건들을 창고에 넣었다. 소나타 자동차도 함께 보관했다. 우리는 사진과 책, 많은 추억들이 담긴 음반들을 디지털화해서 여권 크기의 작은 하드 드라이브 몇 개에 몽땅 저장했다.
우리가 여행길에 소지하기로 결정한 건 수트케이스 하나와 작은 배낭 두개, 노트북 가방 두개, 그리고 내 남편의 기타 케이스였다. 나는 날씨가 따뜻한 해변가에서 머무르고 싶었기 때문에 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키니는 별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11월에 출발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우리가 이 여행의 영감을 받은 코스타리카의 서핑 타운이었다. 우리는 저렴한 호텔에 짐을 푼 뒤 해변가에 있는 집을 찾아 다녔다. 우리가 찾은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어 풍경이 정말 멋졌다. 침실에만 양 사방에 벽이 쳐져 있었고, 다이닝 룸, 욕실, 그리고 쟁반 2개, 그릇 2개, 머그컵 2개, 그리고 와인잔 2개와 너구리 때문에 자물쇠가 달려 있는 냉장고 하나가 전부인 주방은 전부 외부로 오픈된 공간이었다.
나는 우리가 빠른 속도로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는 해가 뜰 때 잠에서 깨어났고, 알람 시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으며, 아침 서핑을 하러 집을 나섰다. 아침 식사 후에는 해변을 따라 걷다가 리조트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코코넛을 마시며 책을 쓰곤 했다.
흔들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 건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오후의 더운 날씨는 오랜 시간 글을 쓰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생산적이었다. 집중하는 일은 갈수록 쉬워졌다. 오후에는 식재료를 사거나 빨래를 하곤 했다. 남편은 석양과 함께 서핑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요가를 했다. 우리는 그 언덕 위의 작은 집에서 세 달을 지냈다.
우리는 엘 살바도르와 파나마를 여행했고, 스리랑카와 인도, 그리고 스위스의 알프스와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도 머물렀다. 이동은 엄청나게 쉬웠다. 1-2주 전에 에어비앤비를 통해 미리 집을 예약하고, 모든 짐을 꾸리고 다시 길을 떠나는 데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즉흥적인 계획들은 신나기 짝이 없었다.
때때로 고통스러울 만큼 속도가 느리기도 했지만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삶에서 즉각적인 외부와의 연결이 없이도 사는 법을 배웠다. 나는 코스타리카에서의 첫 한 달 동안 밤에 내 아이폰을 충전하는 일을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아이폰은 몇 주간 내 노트북 가방에 처박혀 있었다.
우리는 여행 중에, 특히 스리랑카의 해변가에 위치한 한 공동 주택에서의 한 달 간 다른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소셜 라이프는 더 활발하고 즉흥적으로 변했는데, 이는 지난 몇 년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열심히 공을 들여 몇 주 전에 미리 저녁 식사 약속을 잡곤 하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소셜 라이프는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것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다른 여행자들과 만나면서 “그러니까, 어디서 오셨죠?” 라던가, “무슨 일을 하시나요?”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대신 우리는 서핑과 석양의 빛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 달 정도 여행을 했을 때, 스위스와 크레타 섬 사이의 어딘가에서 나는 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안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그토록 매달리고 신봉했던 그 어떤 사회적 위치나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내 자신의 자유가 내겐 더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골칫덩어리는 바로 우리가 써오고 있던 책이었다. 남편과 나는 몇 백 페이지 정도를 썼고, 수정본을 교환하고 플롯과 등장인물들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는 원고를 친구들에게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상냥하지만 확실한 비판들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여기에 착안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스마트폰을 위한 소셜 픽션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구상하기 시작했다. 스냅챗 세대를 위한 스토리텔링말이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보기 위해 실리콘 밸리에 들르기로 했다. 우리는 몇 주간 에어비앤비에 머무르면서 친구들과 투자자를 만났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전에 다시 코스타리카로 돌아가고 싶었다.
뭔가 익숙한 압박감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시선을 돌리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새 아이폰을 가지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은 쌀쌀했고, 모든 내 친구들은 멋진 부츠를 신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시 쇼핑을 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다른 몇 가지를 알아챘다. 한 친구가 최근에 자신의 자동차를 자전거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 다른 친구가 자신의 모든 소지품을 처분하고 열 명 정도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 주택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두 명의 자녀를 지닌 또 다른 지인은 안정적인 그들의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지출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디어를 미디어 스타트업으로서 피칭했고, 투자자들과 미팅을 하고 투자유치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샌프란시스코의 금융 구역에 위치한 거대한 회색 빌딩 앞에 도착했다. 주차 요원이 발레 파킹을 위해 내 차 문을 열고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아마도 이 빌딩에 먼지를 뒤집어쓴 소나타를 몰고 들어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고, 내가 이전에 이 프라이빗 클럽의 멤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빌딩에 들어선 나는 리셉션 데스크에서 내가 만나기로 한 투자자의 이름을 댔고, 곧 투자자가 앉아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고,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는 내가 예상하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당신은 어디서 살고 있나요?” 나는 대답했다. “그 어느 곳도 정확히 정해져 있진 않아요.”
나는 그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이곳 저곳 에어비앤비에서 지내죠. 우리는 지난 1년간 여행을 했고, 지금도 이 생활을 지속하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투자유치를 끝내고 나면 어딘가에 정착할 것 아닌가요?”
“아마도요”
라고 말하고 나는 웃었다.
우리는 그 봄에 성공적으로 첫 번째 라운드의 투자유치에 성공했고, 작은 팀을 꾸리기에 충분한 자금을 모았다. 우리는 주저하면서 12개월짜리 아파트 임대 계약서에 사인했다. 우리는 최소한으로 살림살이를 장만하기로 했고, 물건을 사기 전에 두 번씩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가 줄곧 두려워하던 일거리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우리 짐을 보관해두었던 산호세의 창고로 향했다. 먼지가 쌓인 전등갓이 박스들 사이에 쓰러진 채 막 땅에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후 내내 우리가 창고에 넣어둔 물건들을 확인했다. 나는 내가 완전히 잊고 있던 부츠 하나를 찾아냈다. 남편은 와인잔 몇 개와 커피 주전자를 꺼내왔다. 그리고 우리는 문을 닫고 그 곳을 떠났다. 남은 모든 것을 기증하기로 한 채 말이다.
원문: Dare Your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