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붕괴, 달러제국의 몰락…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 전부터 전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는 달러는 그 지위를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주고 몰락의 길을 걷을 것이라는 묵시론적인 예언을 심심찮게 듣곤 한다. 이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은 지난 70여년 간 국제통화체제와 금융질서를 수립해 오면서, 전세계 무역, 통화, 금융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해 왔는데, 이런 미국이 기축통화 자리를 다른 국가에게 물려준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쉽게 상상이 가진 않는다.
중국의 위안화가 과연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물론 현재 중국은 미국과 함께 G2로 대변되는 동시에, 전세계 수요와 공급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더욱이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중국 당국은 최근 시장 지향적인 경제/ 금리 자유화/ 환율 변동폭 확대/ 외국인 자본 유입 규제 완화 등 개혁의 신호탄을 쏘았다는 것도 위안화의 국제화 혹은 기축통화라는 믿음을 강화시켜주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중국의 변화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자리를 잡기 위해선 시스템적인 측면이나 국제시장에서의 신뢰도 측면을 고려해보면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유로화? 물론 유로화 출범 직후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달러의 아성을 위협할 만한 존재로 부각됐지만, 지난 유로존 재정위기부터 현재까지의 유로존 상황을 보면 기대가 현실로 일어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렇다. 미국은 쉽게 안 망한다. 그래서 달러의 기축통화 자리는 적어도 수십년 동안 유지될 것이다. 쌍둥이 적자 시절을 숱하게 겪었고, 금융위기의 진원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살아남았다. 달러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현재 달러는 연준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작년 9월부터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 전제에서 출발해 『왜 달러는 미국보다 강한가』(오세준 지음, 원앤원 북스)의 리뷰를 간략하게 써보고자 한다. 달러 패권의 역사는 지속될 것이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달러화를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접근하면 뛰어난 금융상품이 될 수 있기에 달러화 자산을 편입해보자는 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자산 배분의 진짜 핵심은 ‘글로벌’이다
분산투자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자산 배분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투자 성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종목 선택이나 마켓 타이밍이 아니라 자산 배분이라는 유명한 연구결과도 있다. 이 자산 배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서로 각기 다른 자산들을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의 장점은 상관계수가 다른 자산들끼리 묶음으로서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금융위기처럼 거의 모든 자산들의 상관계수가 +를 보이는 상황이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시장의 하락이나 경기 침체가 각각 다른 시기에 발생하기 때문에 전세계 모든 자산군에서 투자 대상을 찾아 편입한다면, 보유한 포트폴리오의 가치는 안정적인 변동성을 보여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의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등에서도 자산 배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곳이 많으며, 관련 해외 투자 상품들을 출시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자산 배분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대중화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왜 달러는 미국보다 강한가』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분산투자를 할 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자산은 주로 부동산, 현금, 증권으로 이루어져있다. 각 자산간의 배분은 매우 중요한데, 잘 분산되어 있을수록 좋은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다. 해외펀드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환율이 헤지되어 있을 것이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서는 특정국가의 자산을 통해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지 환투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환율에 대한 리스크를 헤지한다.
그래서 즉 해당국의 환율 변동이 펀드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헤지를 하는 데 드는 비용도 수반되고, 100% 완벽하게 헤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향이 최소화된다고 할 수 있겠다. 헤지되어 있지 않은 상품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우리는 대부분의 자산을 원화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글로벌 관점으로 우리 자산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관점으로 보면 김과장의 재산이 부동산, 주식, 현금으로 나누어져 있는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냥 원화표시 한국 자산에 몰빵한 것이다. 즉, 글로벌하게 자산 배분을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위험한 포트폴리오라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다. 자기 딴엔 분산투자를 실행한다고 했고, 이왕 하는 거 위험관리 도 하고자 환율 리스크도 헤지하는 상품에 투자했는데, 그게 사실상 원화 표시 자산에 몰빵한 것이었다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원화 일변도 분산투자(또는 자산 배분)이 아니라 달러를 하나의 금융 상품으로 간주하고 달러화 예금, 미국 주식, 미국 국채 같은 달러 표시 자산을 편입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어떤 특징이 있길래 달러 표시 자산에 투자하라는 것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우리나라 주식시장과 달러/원 환율이 역 상관관계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주식시장은 하락하고, 환율이 하락하면 주식시장은 하락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말은 달러를 보유하면 일종의 한국 주식시장 하락에 대비해 풋옵션이라는 파생상품을 보유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둘째, 채찍효과와 관련이 깊다.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는 주력 수출 품목들이 소재 및 자본재이기 때문에 선진국 소비시장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전세계 공급체인 끝에 있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글로벌 위기나 이벤트가 발생시 달러/원 환율이 요동을 친다. 이렇게 원화의 변동성이 커지면 달러라는 풋옵션의 가치도 높아진다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셋째, 일반적인 풋옵션은 만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감소하지만. 달러는 풋옵션의 성격을 보유하면서도 만기가 무한하다는 매력적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장기투자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달러화 예금이든, 달러화 주식이든 간에 달러화로 된 자산을 소유하게 되면 만기가 없는 풋옵션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이 이야길 들으니 자산 배분 시 환율 헤지를 하지 않고 달러화 자산에 그대로 투자하는 것도 괜찮은 분산투자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융위기 같은 최악의 경우에도 원화 자산들은 폭락을 면치 못하겠지만, 달러 표시로 된 자산의 원화 환산 수익이 일정부분 손실을 상쇄시켜주면서 깡통 계좌를 맞이하는 것은 방지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달러의 기축통화가 수십 년 간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분산투자, 자산배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 한 책, 『왜 달러는 미국보다 강한가』
원문: Got to Be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