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에서 존재하는 보고서란 오로지 단 두 종류이다.
회사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년 안되었을 때, 훌륭하고 일 잘하고 손발이 척척 맞던 동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서른도 안된 나이였을텐데, 그 나이에 그런 걸 알다니 참 훌륭하다.
“이 위원님, 회사에 보고는 딱 두가지 밖에 없잖아요.
가. 이런 이런 일을 해서 어떠한 성과를 냈다. ( =그러니, 나를 관리하는 당신 실적도 올라간거고, 칭찬해 달라.)
나. 이러 이런 일을 해서 어떠한 성과를 달성하려고 했으나 미달되었다. However, OO을 해서(=대안을 쓰던지 아니면 쥐어짜든지, 어떻게든) 이를 메꿔내겠다.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한테 피해 안 가게 할테니, 시간을 좀 달라.)
세상에 아니 적어도 회사에서는 “~~ 때문에 미달입니다.”로 끝나는 보고가 존재할 수 없는데 대체 회사 생활을 몇 년을 한 사람들이 대체 왜 이걸 안 지킬까요.”라며 늦은 밤 공장을 산책하며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전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는데, 회사를 동아리로 아는지 나이 지긋이 먹고도 세상에 제3의 보고 형태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심지어 fact를 모으는 research보고서 조차도 관점이 저 두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너무 심하게 하면,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감추는 복지부동으로 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회사에서 제3의 보고가 있다는 생각으로 뭔가 죽 나열하는데, ‘그래서 안 되거나, 못 하겠는데요.’라는 걸 보면 회사 생활 어찌 할지 심히 걱정이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 두 가지 형태의 보고서로 작성할 수 없는 것은… 마치 판토마임의 대가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굴어야지 그걸 보고 해서 뭐하나. 회사의 문제를 해결해서 남(=주주 or 상사)의 근심 걱정을 덜어주라고 월급 받으면서, 남에게 문제 해결 or 근심 걱정을 떠넘기면 어쩌자는 건지.
2. 회사에서 해서는 안되는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
절대 해서는 안되는 커뮤니케이션은 직장 상사가 한 예시, 디테일을 가지고 뭐가 틀렸는지 바로잡되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은 이야기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뭔가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히 예를 들어보도록 한다.
예전에 모 회사의 컨설팅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오너가 공장을 둘러 보고, 어느 법인장 한테 이건 왜 이 모양이고 저건 왜 저 모양이냐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이에 법인장이 목이 백척간두에 달하자 허둥지둥했는지 그 메일에 대한 답변을 급히 보냈는데, 이게 정말 회사 생활에서 해서는 안 될 커뮤니케이션의 금자탑 같은 모범 사례였다.
그 메일의 내용은 오너께서 지적하신 부분에 대한 조목 조목 fact기반의 반박이었는데, 이를 테면 부품이 노천에 있는데 이게 대체 불량이 나면 어쩌냐? Warehouse공간이 부족하면 토지 매입을 해서라도 제품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할거 아니냐, 거기 뒤에 빈 땅이 있던데 알아는 봤냐? 등등의 폭풍 지적질을 오너께서 이메일로 보내셨다.
이에 해당 법인장은 수십년 월급쟁이 인생 종 치나 싶어서 (인품도 좋고 나이스한 분이시다) 정말 “이렇게 커뮤니케이션 하면 안됨”의 모범 사례에 해당하는 이메일을 보내셨으니, 조목 조목 지적하신 부분이 왜 불가능한지에 대해서 상세히 하나 하나 답변을 하셨다.
이를테면 부품을 왜 노천에 보관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근거를 이야기했고, 말씀하신 땅은 알아본 바 있으나 지반이 약해서 공장 부지로 허가가 안 나오는 땅으로 창고를 지을 수가 없고 등등을 아주 빈틈 없이 사실을 기반으로 적으셨다.
프로젝트 기반으로 일을 하지 않고 기능 부서(function)의 specialist들이 가지는 일반적 속성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상사랑 하는 게 아니다.
이 커뮤니케이션은 위의 보고서의 두 종류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위의 법인장이 상사(?)인 오너에게 올린 말을 요약하자면, “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네가 제시한 예시나 아이디어는 이미 다 알아봤거든.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어서 나는 대안도 안 내고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을거야.”라는 커뮤니케이션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그러면, 돌아오는 이야기는 “그럼 자네 월급은 왜 받는가? 그냥 집에서 쉬게 해주마.”겠지.
여기서 정답은 두 가지가 있는데, 어김 없이 위에서 이야기한 1번과 2번이 있다. 1번은 노천에 보관해도 품질에 무리가 없도록 어떻게 부품의 실내 보관 여부와 실외 보관 여부를 구분하였고, 그걸 바탕으로 어떠한 안전 조치(방수 등) 등이 취해졌기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해서 잘 했으니 칭찬해 주십시오.”라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두번째처럼 ~~은 안되거나 미달하였으나 어떻게 catch up하겠다..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이 있다.
실외 보관으로 인한 품질 우려는 타당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실내 보관의 필요성을 검토 하였습니다만, 인근에 토지 매입은 어쩌고 저쩌고 하여 불가합니다.
<However/ (정확히 말씀하신 예시와 같은 방법으로는 아니지만, 말씀하신 취지에 부합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기존 warehouse를 2층으로 쌓는 방법을 진행하여 품질을 확보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