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취선 – 여기서부터는 ‘쇼’입니다
실로 ‘버라이어티’한 시대다.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드라마의 주연급 배역을 꿰차고,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순위를 가리고 탈락자와 우승자를 뽑는 일종의 오디션에 참가한다. 인디의 메카라던 홍대입구역 앞은 클럽과 오버그라운드 씬 가수들의 공연장이 들어찼고, 음악성을 인정받던 언더그라운드 씬의 밴드들은 TV에 나와 다른 음악인의 심사를 받는다. 2003년 ‘텐 미니트’ 신드롬으로 가요대상을 수상했던 이효리는 2009년엔 ‘패밀리가 떴다’로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방송 프로그램이 리얼과 거짓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외줄타기를 하듯,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연예인들도 늘상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날것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날것이 얼마나 많은 치장과 연출을 거쳤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나름 고등학교 때 날리던 연주자가 아이돌 밴드의 멤버로 합류해 소위 ‘핸드 싱크’를 하고, 하드 록을 사랑한다던 가수는 기타와 베이스, 퍼커션이 반주로 들어갔을 뿐인 부드러운 팝 음악을 부른다.
그의 진짜 직업이 음악인인지 희극인인지, 그들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쇼이고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버라이어티’라는 한 단어로 수렴된다. 무엇으로 정형화할 수 없는, 때로는 얼굴을 팔았다가 때로는 몸매를 팔았다가, 또 때로는 노래를 팔았다가 또 때로는 웃음을 팔았다가 하는 그야말로 쇼 엔터테인먼트의 백화점.
그래서 연예인에 대한 비판의 날은 때때로 그 결을 잃어버리고 만다. 브라운관 너머, 쇼와 리얼의 모호한 경계는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애매하게 만든다. 그들의 진정성 결여를 비판하자니 모든 것이 그저 쇼일 것처럼 보이고, 모든 것을 쇼로 보고 넘어가기엔 그들이 만들어낸 영화, 음악, 무대에 이르기까지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땀의 무게가 무겁다. 차라리 어딘가에 ‘여기까지는 쇼’라는 절취선이라도 있어, 여기까지는 쇼 엔터테인먼트로 비판하고, 여기부터는 작품으로 비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씨엔블루(CNBLUE)라는 밴드
훈훈한 외모의 아이들 여럿이 그룹을 짓고 나와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아이돌이라 불리는 가수들 얘기다. 예전 H.O.T.나 핑클 때라면 모를까, 요새 나오는 이 아이들은 노래나 춤 실력도 준수하다. 인피니트라는 보이그룹은 노래 꽤나 한다는 가수들 틈에 섞여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고, 아이돌 멤버들이 뮤지컬 무대에 나서 나름의 호연을 선보이기도 한다.
씨엔블루라는 팀이 있다. 밴드다. 요즘 컴백 무대에서 꾸준히 보컬뿐 아니라 모든 악기 파트가 라이브 연주를 소화하는 ‘올 라이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뭐, 밴드 맞나 보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많다. 데뷔곡 ‘외톨이야’의 표절 논란은 개중에서도 대표적이다. 관련 소송에서 비록 승소하긴 했으나 이 논란은 음악인으로서 씨엔블루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정용화 씨가 꾸준히 곡 작업에 참여하는 등 음악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려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핸드 싱크 논란 등이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버즈나 FT 아일랜드 등 밴드를 표방한 그룹들에겐 숙명처럼 따라붙는 논란이다.
밴드를 표방한 보이그룹이라는 개념 덕분에,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경계를 짓기 힘든 아이들이 되었다. 모든 멤버가 (목소리를 포함해) 하나씩의 악기를 들고 나오니만큼 그들과 음악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 생긴 네 남자의 조합, 그들이 무대에 설 때마다 터져 나오는 소녀들의 함성, 그들을 적절히 활용해 만들어진 수많은 상품들을 보면, 그들을 아이돌이라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혼란스럽다. 대체 어디가 절취선인가? 대체 어디까지가 음악인으로서의 행보인가? 어디부터가 팬들을 위해 기획된 쇼인가?
도둑! 오프사이드!
논란이 하나 터졌다. 이 씨엔블루라는 밴드가, 유명 밴드 크라잉넛의 노래 ‘필살Offside’ 란 노래를 도용하였다는 논란이다. 크라잉넛의 소속사 드럭 레코드의 사장 김웅 씨가 딴지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기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논란의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크라잉넛의 노래를, 크라잉넛이 부르고 연주한 상태 그대로를 틀어 놓고 립싱크”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영상을 직접 보면, 확실히 이상하다. 무대에 올라온 건 씨엔블루인데, 연주되는 노래는 크라잉넛의 것이다. 심지어는 MR(보컬을 뺀 연주가 녹음된 것)도 아니고, AR(보컬을 포함한 연주가 녹음된 것)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확실히 문제 있는 상황이다. 음악인이든 아이돌이든 상관이 없다. 이건 그냥 도둑질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에서 반전이 하나 나온다. 프로그램을 방송한 엠넷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국장이 직접 해명에 나선 것이다. 월드컵 응원송을 불러달라는 엠넷의 요청을 일정상의 문제로 씨엔블루가 거절했으며, 이에 엠넷이 음원을 준비해주기로 하면서 씨엔블루도 무대에 나섰다는 것. 즉 크라잉넛의 음원을 무단 사용한 것이 씨엔블루의 책임이 아니라 엠넷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DVD 역시 씨엔블루가 아닌 CJ E&M 측에서 발매했다고 말한다.
씨엔블루 소속사 측의 입장도 비슷하다. 소속사 측 입장에 따르면 신인이었던 씨엔블루가 방송사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으며, 음원의 정체를 정확히 몰랐던 방송 후 보컬 정용화 씨가 “코러스가 강하다”고 음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DVD 역시 방송 콘텐츠 관련 저작권을 가진 업체가 소속사의 허락 없이 임의로 기획해 발매했으며 관련 내용 증명까지 발송한 바가 있다고 한다.
일단 저작인접권 침해가 이뤄진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책임소재는 불명확하다. 정당한 몫을 찾고자 하는 크라잉넛 측의 움직임을 비판하기는 어렵지만, 씨엔블루의 소속사와 엠넷, CJ E&M 측의 해명을 들어보면 씨엔블루 역시 눈 뜨고 코 베인 피해자다. 이제 법적 책임은 아마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럼, 법정에 모든 문제를 맡겨놓고 우리는 룰루랄라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법적 문제를 접어두고서라도 화두는 남는다.
상품으로 선 음악인
설령 방송사가 음원을 준비해준다 약속했다 해도, 음악인으로서 씨엔블루의 책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보컬 정용화 씨는 낫다. 크라잉넛이 연주하고 노래한 음원 위에서이긴 하지만, 어쨌든 본인도 노래를 부르긴 했으니까. 립싱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자신이 연주하지도 않은 엉뚱한 음원을 틀어놓고 손만 움직여 완전히 가짜 연주를 한 것이 아닌가. 연주자로서 이는 남이 부른 노래를 틀어놓고 입만 벙긋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니까, 음악인으로서는 그렇다.
하지만 ‘그러니까 씨엔블루 나쁜 놈’, 하고 얘기를 접어버리기에는 걸리는 게 있다. 기획사가 뭐라고 홍보했든, 씨엔블루가 자생적으로 팀을 짜고 홍대 지하의 작고 낡은 클럽에서 활동하는 그런 종류의 밴드는 아니다. 그들은 음악을 하는 음악인이기도 하지만, 기획사와 방송사, 유통사가 세련되게 빚어낸 상품이기도 하다. 보컬 정용화 씨가 갑자기 저항의 정신이 불붙어 “OOO가 대통령인 게 쪽팔려!”라고 외칠 수도 없고, 갑자기 유니티의 정신이 살아나 “크루를 만들자!”고 선언할 수도 없다. 스포트라이트에 노출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씨엔블루라는 상품을 완성시키고 있다. 우리는 정용화, 이종현, 강민혁, 이정신 네 사람을 씨엔블루로 알고 있지만, 사실 씨엔블루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팀 작업으로 만들고 있는 브랜드일지도 모른다.
방송사가 만들고 연출한 그놈의 월드컵 기념 무대는 또 어떤가. 이 무대에서 음악인만의 음악성을 찾는다는 건 또 얼마나 무의미한 이야기일 것인가. 이 쇼를 만드는 것은 모르긴 몰라도 9할 이상 방송사의 몫이다. 월드컵 4강 신화 재현 화이팅 따위를 외치는 이 쇼에서 씨엔블루의 음악성과 양심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좋게 말하자면 쇼 엔터테인먼트의 스타로서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그 위의 한 상품으로서는 그렇다.
굳이 먹고사니즘 같은 얘기를 끌고 오지 않더라도, 필살 오프사이드를 부른 그들의 무대에서 음악인으로서의 면모를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사는 시의적절하게 잘 팔릴 상품을 연출했고, 잘 나가는 신인 밴드였던 씨엔블루를 그 위에 세웠다. 설령 정용화라는 개인의 양심이 이 무대를 마땅찮게 여겼다 해도, 씨엔블루를 만든 것은 정용화 혼자가 아니고, 심지어 씨엔블루라는 이름으로 무대 위에 서는 네 사람이 이 브랜드를 온전히 소유한 것도 아니다. 씨엔블루라는 것은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짊어진 브랜드다.
그래서 음악인으로서의 책임을 요구하기가 모호해진다. 뭐, 정용화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정용화처럼 잘 빠지지도 않았고, 정용화처럼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정용화처럼 악기를 잘 연주하는 것도 아니니(…) 걱정할 필요도 없긴 하겠지만, 어쨌든 만에 하나 내가 그의 입장에 서 있다면, 과연 음악인으로서 나의 양심만을 온전히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회의적이다.
절취선은 없다
물론 씨엔블루라는 브랜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멤버 네 사람이다. 대중이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순 없다. 책임, 당연히 물어야 하고, 비판도 당연히 받아야 한다.
그래도 한 템포 쉬어갈 필요는 있다. 그들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그들과 같은 입장에 섰을 때,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건 그냥 내 일신의 양심만을 고려해서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이건 너무 애매하다. 쇼와 진정성, 음악인과 엔터테이너의 경계가 너무 뿌옇다. 쇼에 선 스타와 내 것을 창작하는 음악인, 그들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 뿌연 안개는 비단 씨엔블루라는 스타에게만 낀 것이 아니다. 온갖 소문이 퍼지며 진위에 대한 명확한 확인 없이 그들에 대한 칼이 되고 있는 지금에서라면, 얘기가 더욱 애매해진다. 소속사와 방송사의 유착에 대한 음모론, 남의 연주에 손만 움직인 음악인으로서의 양심, 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속성, 진정한 음악인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당위 등이 뒤섞여 그들을 찌르고 있다. 이 모든 책임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소위 ‘윗분들’에게 있는가, 혹 씨엔블루라는 음악인의 양심에 있는가. 모든 것이 뒤섞여버렸다. 모든 것이 안개처럼 애매하다.
여기에는 절취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