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있는 자원에 얽매이는 순간, 발전은 물 건너 간다
최근 가나(Ghana)에서 카카오 산업을 지원할 아이디어가 있냐는 질문을 받으니, 몇 년 전 생각이 난다. 가나 서쪽으로 인접한 ‘드록바’의 나라, 코트디부아르에 출장 갔을 때다. 외교부에서 젊은 친구를 만났는데, 아버지가 한국에서 주재한 인연으로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의 친구다. 이 친구가 묻기를 “60년대는 코트디부아르가 한국보다 더 잘 살았는데, 지금와서 왜 이렇게까지 차이가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한국처럼 잘 살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전형적인 질문. 꽤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받아봤다. 물론, 그 당시 우리나라가 진짜로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못 살았느냐 하는데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 초기 한국은 과연 매우 가난한 나라였나?) 하지만, 그래봐야 도긴개긴이었던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무슨 석학이라고 그런 걸 내게 묻는지… 아니, 석학이라고 해도 그런 심오한 문제에 대답이 나올까? 하지만,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게 하나는 있었다.
내가 잘 사는 방법까지는 모르겠고. 못 사는 이유는 아니까 그걸 고쳐라.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다.
뭔데?
일단 카카오 밭을 다 갈아 엎어.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해가지고는 잘 살기 글러먹었다는 건 입증이 된 거잖아.
엉?!…
그렇다. 코트디부아르나 그 옆 나라 가나는 1800년대말부터 카카오 농사를 짓기 시작해 그 역사가 이미 100년이 넘었다. 1960년, 1957년 각각 독립한 이후에도 주력 산업으로 삼아왔다. 그렇게 반세기 이상을 노력한 결과가 현재 보이는 그대로다. 카카오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이 두 나라에서 생산되지만, 그 이상 아무 의미도 없다.
왜 그런가?
첫째, 카카오는 커피와 같이 대단히 노동집약적 작물이다.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동 노동이 흔하다. 기계화를 이룰 수 없으니 재배 규모가 늘어봤자 한계효용은 체감(소비량 1 : 만족도 1의 비율에서, 소비량 100 : 만족도 80 으로 1단위의 만족도가 소비량 증가에 따라 점차 감소하는 것)한다. 한계효용이 체감하면 리카도의 비교우위를 누릴 자격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효용이 체증하는 제조업 국가와의 교역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러니 진입장벽도 거의 없다. 잠깐 가격이 좋았던 시절이 있으면, 그 몇 년 후에는 반드시 폭락을 경험한다. 가격이 좋았던 시절에 너도 나도 새롭게 재배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둘째, 단일작물 재배(Monoculture)의 단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한 가지 작물이라서 시장 변동성에 울고 웃는다. 주로 운다… 위기가 감지되어도 즉각적으로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셋째, 원자재 생산만 담당한다.
가치사슬 전체에서 대부분의 부가가치는 완제품인 초콜릿 생산-판매에서 나오는데, 한국인이 Made in Ghana가 아닌 롯데에서 만든 Made in Korea ‘가나 초콜릿’을 먹듯이, 세상 사람들은 가나, 코트디부아르에서 생산한 초콜릿을 먹지 않는다. 그럼 어디서 만든 것을 먹을까? 초콜릿 수출 세계 1위는 스위스와 벨기에가 경쟁한다. 거기서는 카카오가 한 톨도 생산되지 않는다. 거칠게 요약하면 재주는 가나, 코트디브아르가 부리고, 돈은 스위스, 벨기에가 번다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에서 출판되어 아프리카 비즈니스를 다룬 어떤 책에서 ‘커피는 아프리카의 희망’이라고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커피든 카카오든 이대로는 아프리카의 절망일 뿐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식민지배에서 생긴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에서 못 벗어나
서부 아프리카는 원래 카카오 원산지가 아니다. 현대의 중요한 상업작물 대부분이 그렇듯 카카오도 남미에서 왔다. 베네수엘라 부근이 원산지다. 1800년대 초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남미로 끌어다가 카카오 농사를 짓게 했는데, 남미 현지 정부의 자주성(그래봐야 남미에 사는 스페인 사람이 본국에 사는 스페인 사람으로부터 지킨 자주성이긴 하지만)이 높아지면서, 아예 아프리카로 생산거점을 옮긴다.
그 때 낙점받은 새로운 생산 거점이 지금의 코트디부아르와 가나 근방이었다. 대륙이동설에 따르면 남미 대륙의 튀어나온 부분과 아프리카 대륙의 움푹 들어간 부분(기니아만)이 붙어 있었다고 하니 지질이며 기후가 비슷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수탈이 시작되었다. 오죽하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당시 이름이 Ivory Coast와 Gold Coast였겠는가… (‘상아해안’이라는 뜻을 가진 Cote d’Ivoire를 그대로 국명으로 쓰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인고? 하면서도 식민지 아프리카 주민은 카카오를 키웠다. 2014년 YouTube에서 유명해진 아래 동영상을 보면, 평생 동안 카카오 농사를 짓던 농부에게 초콜릿을 먹어보라고 하자 맛이 무척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자기가 평생을 해온 일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니… 돈이니 산업이니 다 떠나서 지구에 같이 사는 이웃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고 땅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무슨 협상력이 있겠는가? 게다가 때는 야속하게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인 시절이었다. 식민지배자 유럽만을 위한 수탈 시스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식민지배 착취 구조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계속된 산업 운용
드디어 아프리카도 독립을 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사람도, 자원도 깡그리 탈취 당한 경제는 독립이 아니라 차라리 배신을 당했다고 표현해야 적절할 지경이었다. 만약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아무 말 없이 수원과 울산을 떠난다면? 아마도 그 백 배 이상의 충격을 아프리카 경제가 받았을 것이다. 정치적 독립이 주는 들뜬 분위기에 경제적 피폐는 한동안 가려져 있었다.
식민지배 시절에 수탈을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산업 시스템을, 독립 이후에도 계속 유지한다는 얘기는 경제적 독립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원해서 그러는지 아닌지는 다른 문제다.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를 없앴지만, 대지주가 가진 토지를 소작농에게 나눠 주는 토지개혁이 있기 전까지는 양반인 주인 마님과 평민인 소작농의 경제적 지배관계가 그대로 유지되었던 우리 근대사를 생각해 보시라.
이런 현실에 우리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가?
자기 브랜드에 대한 열망은 헛되다
간단해 보인다. Ghana가 카카오를 수출하지 말고, 초콜릿을 만들어서 수출하면 되지 않겠는가? 초콜릿 제조가 그렇게 어려운 건 결코 아니니까. 오리지날 브랜드를 붙여서 팔면 먹힐 것도 같은데…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다르다. 왜?
우리 경험을 살펴보자.
앞서도 등장한 ‘가나 초콜릿’ 제조사 롯데제과는 가나로 진출했는가? 아니다. 2008년 롯데는 영리하게도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 기업 ‘Guylian'(길리안)을 인수한다. 전세계 면세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조개 모양 초콜릿으로 유명한, 바로 그 길리안 말이다. 1,700억원을 들여 깔끔하게 주식 100%를 인수한다.
비슷한 시기 다른 한국 기업이 벨기에에 초콜릿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신규투자를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롯데가 훨씬 현명한 선택을 했다. 인수비용이 아까워 Lotte 브랜드로 Made in Belgium 초콜릿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면? 100년 후에도 Guylian을 따라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왜? 식품이니까. 그것도 대단히 까다로운 기호식품이니까.
기호식품은 전자, 기계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브랜드 세계다. 기술과 품질은 문제가 아니다. 마음이 문제다. 확인되지 않은 브랜드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Made in Korea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Made in Ghana, Made in Cote d’Ivoire? 곤란한 얘기다.
기호식품은 브랜드 마케팅에 있어 기적이라 불리우는 ‘삼성전자’ 사례와는 많이 다르다. 전자제품은 기술적으로 비교가 가능하다. 진짜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고 브랜드 마케팅 원칙을 잘 지킨다면 짧은 시간에도 강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삼성전자 사례는 ‘브랜드는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원칙의 예외로 마케팅 교과서에 실릴 정도다.
브랜드 마케팅 관점에서 개인적 견해로 볼 때, 단가 수백불 짜리 휴대전화를 파는 삼성전자보다는, 생명과 직결된 수만불 짜리 기계덩어리를 안전에 극도로 민감한 미국에 팔아낸 현대자동차가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대량 제조하는 일반 식품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계 최대 참치선단을 보유한, 그래서 당연히 강력한 원가경쟁력을 가진, 동원산업도 미국시장 진출에 애를 먹었다. Made in Korea 자동차를 타는 미국인도 같은 한국산이지만 참치캔에는 왠지 손이 가지 않으니까. 그래서 동원산업은 어떻게 했나? 롯데와 같은 시기, 같은 길을 택했다. 2008년에 세계 최대 참치캔 제조업체 ‘StarKist'(스타키스트)를 3,600억원에 인수했다.
기호식품보다 훨씬 까탈스러운 분야는 제약이다. 제약은 일반소비자가 직접 구매하지 않고 전문가인 의사가 판단을 대신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2003년 엘지생명과학은 ‘팩티브’라는 항생제 신약을 개발, 우리 기업으로는 최초로 미국 FDA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해외시장에 그 약을 판매했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아무리 FDA 인증을 받았다 한들, 미국 의사가 Made in Korea 약품을 처방할 것 같은가?
브랜드는 이토록 무섭다. 만만하지 않다.
공정무역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카카오나 커피 얘기만 나오면 자동으로 따라 등장하는 공정무역에 대해 생각해 보자.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아동 노동이나 노동환경 같은 문제를 제외하고 거래 요소만 가지고 요약하자면, 공정무역은 길다란 가치사슬에서 중간 유통단계를 줄여 생산자에게 보다 많은 이익을 돌려주자는 ‘운동’이다. 생산자-소비자 직거래를 통한 유통마진 축소로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지 못해 좀처럼 유통마진을 줄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최종 소비자 가격이 낮아지지 않아서 ‘착한 소비’에 기대고 만다. 즉, 조금 비싸더라도 생산자에게 이익이 되는 상품을 사 주어야 한다는, 소비자의 양심적 각성에 호소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비즈니스가 아니다. 그래서 난 ‘운동’이라 표현한다.
한국의 교역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대략 0.1% 수준이다. 공정무역의 99%를 차지한다는 커피 품목에서 가격을 기준으로 따진 것인데, 상업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공정무역에 대해서는 개발협력의 주요 이슈로 따로 다룰 예정이다.
손안에 든 것에 대한 집착이 발전을 막는다
우리는 은연 중에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하는 것’으로 (개발협력) 사업을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 산업정책도 그 궤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 클러스터를 지정한 결과는 기존에 자생적으로 밀집한 산업을 지원하는 수준이다.
그래도 한국의 산업 클러스터 지원은 자생적인 성공 유인과 일부 성공한 경험이 있는 것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반면에 수원국에서 식민지 시절에 생겨난 산업은 거의 예외없이 나쁜 경로를 형성해 왔다고 보면 된다. 그걸 보완해 보겠다는 노력은 까딱 잘못하면 나쁜 경로를 강화하는 결과가 된다. ‘反개발적’ 지원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자원과 아무 관련도 없는 산업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가? 한국의 경험은 그래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정유공장을 짓고, 철광석이 없는 나라에 제철소를 짓고, 브라운관 만들기도 허덕거리는 나라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서 성공한 것이 우리 경험이다. 이것이 전략적이라고 부를만한 투자다.
그러지 않았으면, 한국은 쌀농사와 명태잡이에 특화하고 흑단같이 고운 언니들 머리카락으로 가발 만들어 파는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독특한 경험을 그대로 이식해도 좋을까? 한국의 산업발전 초기 단계와 현재 개도국이 갖고 있는 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의견, 즉 언제가 되든 개도국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로만 빈곤을 탈출해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모든 산업에 적용 할 만큼 일반적인 해답이라고 한다면 이 정도뿐이다.
가치사슬에서 고리 하나를 더 넘겨주어야 한다
현대 산업의 가치사슬은 국경을 넘나든다. ‘글로벌 공급망’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부국과 빈국은 몇 개의 고리를 붙잡고 있는지, 또 돈 되는 고리를 붙잡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결국, 수원국을 돕는다는 건 돈 되는 고리 하나를 더 넘겨준다는 얘기로 귀결될 수 있다. 수원국은 돈 되는 고리 하나를 먼저 넘겨주는 국가(의 기업)에게 거래량을 몰아주는 경쟁 유도를 통해서라도 넘겨받으려 노력해야 한다.
1980년 ㈜대우가 ‘실수로’ 의류산업에서 고리 몇 개를 방글라데시에 넘겼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는 세계적인 의류 수출국가가 되었다. (어떻게 의류 산업이 방글라데시로 왔는가) 물론, 아직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정당하지 못한 임금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윌리엄 이스털리는 ㈜대우의 이런 기여를 두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가장 성공적으로 개발에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이 일을 교훈 삼아서인지 현재 우리 의류업계는 너무 정교하게 가치사슬을 쪼개서 잘 관리하고 있다. 제 2의 방글라데시가 언제 나올 수 있을지, 아니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산업에 따라 가치사슬은 다 다르게 생겼다. 돈이 되는 고리도 제각각이다. 국가마다 마주잡은 고리가 다 다르다. 어디서 어떤 고리를 얼마나 누구에게 넘겨야 할 지 결정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우리 개발협력계가 가치사슬 분석에 관심을 가지고 비즈니스 모델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유다.
원문 : 개발 마케팅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