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길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오래도록 즐기는 법
독립한 지 1년이 넘었다. 1인기업임을 내세우고 있는 나로서는 모든 일을 혼자 하는 데서 재미도 느끼지만, 때로 팍팍함도 절감한다.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은 정말 혼자서만 한다. 이렇게 블로그를 쓰는 일도 내게는 마케팅 활동이다. 마케팅 조직이 따로 없고 바쁘기도 하지만, 내 자신을 마케팅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에, 바빠도 내 컨텐츠는 아무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기에 혼자서 눈 비비며 올린다.
오늘 극적으로 마감한 종합소득세 신고도 마찬가지. 세무사에게 수수료 약간만 주면 알아서 다 해줄 터이지만,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남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직 혼자서 한다. 직장에서 배운 지식으로 독립하는 1인기업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적어도 3년은 혼자서 이것저것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기도 하다. 오늘도 한 챕터분 에피소드를 머리 속에 받아왔다. 하지만, 얼른 시간이 지나서 그냥 맡기고 싶은 일이다…
영업전략도 혼자서 짠다.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남 앞의 나는 참 시원하게 말도 잘 한다마는, 정작 내 일로는 고민이 첩첩산중이다… 연말에는 혼자서 영업전략 회의도 했다. 2014년을 반성하고 2015년 계획도 세우는 회의. 거울을 앞에 놓고 하면 혼자서도 회의 할 수 있다.
난생 처음으로 혼자서 세금계산서를 보내기도 하고 받아도 봤다. 쉽지 않다. 그러나 혼자라서 힘든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혼자 가는 이 길에서는 정서적 외로움보다 굶어 죽을까 즉, 일이 없을까 하는 걱정이 더욱 현실적이다. 목표한만큼 가지 못하고 중간에 힘이 빠져 낙오할까 하는 우려가 대부분이다. 어떻게 해야 완주할 수 있을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아프리카 속담이다. 아마 스와힐리 쓰는 동부 아프리카 쪽 같은데, 오리진이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의미에는 동의한다. 단, 혼자 가고 싶으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뚜벅뚜벅 가면 되겠지만, 함께 가려면 ‘누구’랑 가는 지가 매우 중요한 일 아닌가? 우리 아프리카 형님들이 이런 디테일을 빼놓았네 그랴…
그래, 나는 멀리 가야 한다.
남들보다 더 멀리 가야 한다. 욕심 때문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으니 멀리 가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멀리’가 아니라 ‘오래’ 가야 한다.
마흔이 되던 날, 결심했다. 독립한다. 그래서 팔십세 될 때까지 현역으로 일한다. 그때 만든 목표가 ‘現役八十”이다. 그럭저럭 여기까지는 잘 왔다. 팔십까지 현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내 경쟁력이다. 하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다.
글 쓰고 강의하는 일 외에는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협업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40대 중반인 나는 PM이나 어떤 부분의 책임자다. 몇 살까지 할 수 있을까? 아마 60이 되면 PM은 내려놔야 할 거다.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하나?…
나를 찾아주는 후배가 있어야 한다. 내가 60이 되었을 때, 지금 내 나이인 40대 중반인 후배 말이다. 지금 갓 서른이 되어 눈에서 불똥을 튀기며 뛰어 다니는 후배 말이다. 일단 능력이 있어야 하고, 나를 존중해 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후배가 어디 있나?
조직에 있을 때 후배를 키워라
조직에 속해 있을 때는 자연스레 후배를 인식하고 나름 ‘키우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과 후배가 오래도록 그 조직에 ‘같이’ 속해 있을 거라는 무언의 전제사항을 깔고 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조직에 있을 때 후배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명제를 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왜 후배를 잘 키워야 하는지 한번 냉철하게 따져 보자. 당신은 10년차 과장이다. 팀장은 20년차가 좀 넘은 부장이다. 물론, 팀에는 당신 아래로 대리와 사원들이 있다. 당신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여러 여건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니, 환경을 정리하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생계형’이다. 어떤 ‘빽’도 없다. 다행히 당신은 적당한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다. 자기 할 일만 하면 임원은 몰라도 부장까지는 별 문제없이 승진할 것이 확실하다.
그런 당신은 팀장이나 그 위의 임원보다는 후배에게 잘 해야 한다. 잘 생각해 보시라. 지금으로부터 15년 후쯤, 고참 부장까지 별탈 없이 승진한 당신은 임원 승진이라는 결정적 시점을 맞게 된다. 그 때, 지금 모시고 있는 당신의 팀장, 사업부장, 본부장은 어디에 있는가? 아마 대부분 ‘집’에 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당신 조직 내에 그 때까지 남아있을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
여러분이 데리고 있던 신입사원은 그 때쯤 과장이 된다. 실적을 만들어 내는 핵심세력으로 부상한다. 그들이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형님’을 이번에 임원 한번 만들어 보자고 진심으로 뛰지 않는 한, 당신은 비전이 없다. 그들이 당신 뒷담화에 열 올리고 다닌다면, 당신은 생각보다 일찍 집에 갈 것이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신입사원 얼굴을 한번 보라. 한심한가? 그래도 그들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당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이런 것도 모르냐고 타박하지 말라. 그 친구가 그걸 잘 알아야 당신이 성공한다. 그것도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그 친구가 잘 알아야 당신에게 비전이 생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신입사원이 당신을 인간적으로 따라야 한다. 사실 이게 훨씬 더 어려운 과제다. 야박하게 굴지 마라. 당신이 마지막 퇴근하는 날에 시원한 마음이 아니라 섭섭한 마음이 생겨야 한다. 팀장에게 소주 한잔을 따를 때, 신입사원에게는 꽃등심을 구워 줘라. 출장 다녀온 선물이랍시고 손도 안 가는 초콜릿 내밀지 말고, 별로 할 일 없어도 같이 출장 다녀라.
독립해서도 후배를 키워라
그럼 독립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더 넓게 보고, 좀 더 길게 보면 답이 나온다. 이제 조직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속한 많은 후배가 다 당신의 후배다. 그들이 당신의 말년을 지켜줄 것이다.
요새 강의를 나가면 대학 신입생까지 만나게 된다. 25세 차이가 난다. 내가 70세 되었을 때 PM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미래의 동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한다. 그들 가운데 분명 칠순의 내게 ‘이번 프로젝트 같이 한번 해보시죠’ 하면서 전화해 줄 친구가 있다.
도대체 얼마나 어린 후배들까지 보게 될까? 내 계획대로라면 지금 11살인 친구들이 80세에 투입될 내 인생 마지막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될 것이다. 바로 내 둘째 아들 친구들이다… 저렇게 어린 친구들과 내가 일을? 물론이다. 반드시 같이 하게 된다.
프로젝트 팀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발주처와 계약자 관계로 만나든, 경쟁사로 만나든, 세미나에서 만나든, 그 어디서 만나더라도 크게 보면 선후배가 된다. 좁게 보면 한없이 좁지만, 넓게 보려면 무한정 넓다.
그러니, 조직에 있을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아니 그 보다 저 절실한 마음으로 그들을 후배들을 대해야 한다. 조직에 있을 때는 설사 후배와 사이가 틀어져도 큰 문제가 없지만, 독립해 있으면 한 순간에 사단이 날 수 있다.
얼마 전, 업계에서 아는 분이 연락을 주셨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같이 해 보겠냐고. 다른 일로 바빴던 지라 나는 같이 하지 못하지만, 다른 후배들에게 알아봐 주겠노라고 하고 전화를 돌렸다. A라는 후배에게 그 분 이름을 대고 프로젝트 내용을 설명하려는데, 말을 자른다. “그 양반이라면 프로젝트 내용은 설명할 것 없어요…” 내가 모르는 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나 B라는 후배도 똑 같은 반응이다…
맨 처음 전화를 준 그 분? 지금 한국에 없다… 평판이 무섭다는 걸, 정말 무섭게 배웠다.
어디서 뭘 하든 후배를 키워라
오늘 풀어놓은 얘기를 다른 데서 하면, 사람이 참 이해타산적이구나… 하면서 혀를 차는 분들이 있다. 맞다. 난 원래 이해타산이 빠른 편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잘 가지 않는다. 회사에 다닐 때도 늘 윗사람보다는 후배들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솔직히 지금 내가 후배를 잘 키워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도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한 치라도 비전이 겹치면 소속에 관계없이 선후배다. 더 쉽게 말하면, 나를 선배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후배다. (이런 마음, 후배 여러분이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혼자 일하게 된 지금, 조직이라는 울타리가 없어도 불안하지 않다. 울타리가 없으니 더 많은 사람들, 특히 후배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들이야말로 나에겐 노후대책 보험이니까.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고, 흐르는 시간 속에선 젊음이 곧 권력이다. 정당한 권력에 순종하는 삶 사시길 권하는 바이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