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 가득 금발 미녀의 얼굴이 등장한다. 한 남자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렇게 말한다. “이 여자의 머리를 부셔서 갈아버리고 싶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첫 장면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남자는 이토록 아름다운 부인의 머릿결을 붙잡고 그런 끔찍한 생각을 했을까?
2시간 30분 동안 롤러코스터처럼 진행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의문이 풀린다. 캐릭터를 집요하게 파헤치는데 일가견이 있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금발 미녀 에이미를 세상에서 가장 끔직한 여자로 만들어버린다. 그녀는 남편에게 배신당해 동정심을 유발하면서도 비상한 머리로 모든 상황을 역이용해 자신이 주도권을 쥘 계획을 짠다.
에이미 역할을 맡을 후보로 나탈리 포트만, 샤를리즈 테론, 리즈 위더스푼, 에밀리 블런트, 루니 마라, 애비 코니쉬, 제시카 차스테인 등 쟁쟁한 여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에이미는 영화 초반 베일에 가려져 있는 만큼 감독은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하기 원했다. 결국 감독이 선택한 여배우는 <잭 리처>에서 톰 크루즈의 상대역 변호사를 연기했던 로자먼드 파이크였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그녀의 ‘온실 속 화초’ 같은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신데렐라 로자먼드 파이크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포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수재인 파이크는 2002년 로 데뷔했다. 그녀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오만과 편견> <언 에듀케이션> <타이탄의 분노> 등의 작품에서 종종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해왔지만 그동안 기억에 남는 주연을 맡은 적은 없었다. 본드걸 출신 미녀임에도 외모를 뜯어보면 다소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단점은 <나를 찾아줘>에선 장점으로 바뀐다. 그녀는 과격하면서도 부드러운 이중적 면모를 지닌 에이미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그녀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도 관객에게 끊임없이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특색없어 보였던 얼굴은 오히려 관객에게 다음 장면을 전혀 예상할 수 없게 하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과거 영화 속 ‘팜므 파탈’이 대개 억울한 일을 당한 뒤 복수하기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악녀였다면 에이미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자신이 만들어갈 삶을 위해 남자를 도구로 이용한다. <이중배상>의 바바라 스탠윅으로부터 이어지는 ‘팜므 파탈’의 계보를 이을 신개념 팜므 파탈의 탄생이다.
파이크는 이 영화로 단숨에 할리우드 주연급 여배우로 떠올랐다. 감독의 유명세와 영화의 만듦새 덕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연기력이 영화를 이끌고 간 힘이라는 평이 많다. [베니티 페어]의 리차드 로슨은 “매혹적인 연기로 스타탄생”이라고 적었고, [할리우드 리포터]의 토드 맥카시는 파이크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렬하게 극을 이끌고 있다”고 평했다.
뒤늦게 스타가 된 배우들
파이크의 나이는 올해 35세. 스크린에 데뷔한 지 12년 만에 꽃을 피운 셈이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대기만성형으로 뒤늦게 스타가 된 배우들이 떠오른다.
우선, 15년간 무명생활을 해온 나오미 왓츠가 있다. 그녀는 2001년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니콜 키드먼의 친구로만 알려져 있었다. 데이비드 린치가 그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레즈비언 역할로 캐스팅했고 비로소 나오미 왓츠는 33세에 할리우드 스타로 올라설 수 있었다. 물론 파이크처럼 준비된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국 여왕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로 꼽히는 헬렌 미렌 역시 뜨기 위해 몸부림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데뷔 때부터 <에이지 오브 컨센트> <칼리귤라>에서 노출 연기를 불사해 ‘섹스 심볼’로 이미지가 각인됐는데 이를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에 도전했다. 그녀의 커리어가 반전하게 된 계기는 1984년작 <칼의 고백>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이후 영화와 TV드라마를 번갈아가며 작업해오던 그녀는 1991년 수사관 역할을 맡은 드라마 [프라임 서스펙트]가 미국서 대히트하면서 대중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때 그녀의 나이 46세였다. 그 여세를 몰아 그녀는 1994년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의 <조지왕의 광기>로 다시 한 번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두 번 수상한 배우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이자벨 위페르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콧수염으로 유명한 추억의 배우 찰스 브론슨 역시 무명 시절이 길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년 조연만 하던 그는 당시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마카로니 웨스턴’에 출연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는 1968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 하모니카맨으로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서 곧바로 주연급 배우로 올라섰다. 같은 해 유럽 최고의 미남 스타 알랭 들롱과 함께 <아듀 라미>에서 공동주연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스타가 됐다. 이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한동안 콧수염에 집착하다가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콧수염을 밀어버렸다.
대기만성형 배우는 한국에도 꽤 있다. 최근엔 류승룡과 김성령이 눈에 띈다. 연극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장진 감독을 따라 <아는 여자>로 영화에 입문한 류승룡은 조연으로 입지를 다지다가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일약 충무로가 사랑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나이 만 42세때였다. 미스코리아 출신 김성령은 19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영화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사실 작품보다는 결혼, 이혼, 재혼 등 사생활로 더 주목받아왔다. 그러던 그녀는 [추적자] [야왕] [상속자들] 등 TV드라마들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미시스타로 발돋움했다.
요즘은 SNS의 발달로 10대 때부터 끼를 발휘해 스타가 되는 시대다. 이런 와중에 뒤늦게 빛을 본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실력을 키워왔다는 증거다.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로자먼드 파이크의 무시무시한 눈빛이 그 단적인 예다. 늦게 핀 꽃인만큼 차기작에서도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해주길 기대해본다.
원문: 인생은 원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