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창의성의 즐거움』을 참조한 글입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복합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반대되는 특성들을 함께 지닌다. 흰빛이 스펙트럼의 모든 빛깔을 포함하고 있듯 그들의 내면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특성이 함께 결합되어 있다. 우리가 보통 좋다, 나쁘다고 가르는 모든 잠재적 성향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복합적 인격이란 중립이나 평균을 의미하지 않는다. 양극 사이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 위치하는 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극단적으로 움직이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분명 양극을 달리면서 아무 갈등도 느끼지 않고 똑같은 강도로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다.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10가지 양면성으로 설명해보자.
1. 대단한 활력을 갖고 있으면서 또한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그들은 활기차고 의욕적인 분위기로 오랜 시간을 몰두하면서 일한다. 이는 유전적으로 유리한 신체 조건을 타고났음을 뜻하지만 때론 어린 시절 끔찍한 질병을 극복한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힘은 유전적인 혜택보다는 몰두하는 정신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언제나 힘이 솟는 초인은 아니다. 달력이나 시계나 외부적인 시간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힘을 조절한다. 그래서 필요할 때 힘을 하나로 집중하고 다시 충전한다. 그들은 게으름이나 명상 뒤에 찾아오는 활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2. 명석하면서 한편으론 천진난만하다
1921년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루이스 터만의 정신 능력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IQ가 높은 이들이 성공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어느 선부터는 현실적인 성공과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후기 연구에서는 그 커트라인을 120 정도로 제시한다. 120 이하의 IQ로는 창의적 작업을 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120 이상이면 IQ가 높은 만큼 더 창의적인 건 아니라는 말이다. IQ가 높은 사람은 기존의 규칙을 배우고 따라 하는 것이 너무 쉽기에 기존 지식에 대해 질문하고 의심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동기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괴테가 “순진함이 천재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는 20세기에 창의적 업적을 남긴 천재들에 관한 연구에서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오히려 심오한 통찰력을 함께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3. 책임감과 무책임이 혼합된 모순적 성향을 갖고 있다
“나는 항상 이것저것 건드려보면서 과학에서 재미를 느끼죠. 진짜 장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의 가벼운 기분을 갖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통일장 이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만든 물리학자 존 휠러의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장난기는 그와 반대되는 끈질김, 인내, 집착하는 성향이 없다면 멀리 가지 못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완성시키고 장애물들을 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물리학자 한스 베테는 물리학 문제를 해결하는 요인을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머리고, 두 번째는 분명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을 수 있는 문제에 매달려서 기꺼이 오랜 시간을 생각하면서 보내는 능력입니다.”
4. 상상과 현실 사이를 오간다
상상과 현실 모두 과거와의 접촉을 잃지 않고 현재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은 한때 “예술과 과학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가장 위대한 형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술과 과학의 공통점은 우리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 도피는 비현실적인 동화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낯설게 보이지만 조만간 진실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은행가들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그들이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사고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존 리드 같은 금융계 지도자는 “현실이란 상대적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므로 미래를 창의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5. 외향적이면서 동시에 내향적이다
그들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실험실에서 연구하기 위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젊은 인재들을 관찰한 결과 청소년기에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하면 능력 또한 개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독을 참을 수 있는 아이들만이 어떤 영역의 상징을 터득할 기회를 얻는다.
음악 연주나 수학 공부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고독을 요구한다. 그러나 창의적인 인물들은 또한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서로 교환하고 다른 작품과 생각을 이해해야 한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사무실 문을 가리키면서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과학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업입니다. 이 문을 열어놓는 것과 닫아놓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죠. 나는 과학 실험을 할 때 문을 열어놓습니다.”
과학뿐 아니라 가장 개인적인 영역으로 알려진 예술에서조차 사회성은 필요하다. 혼자 틀어박혀서 아무에게도 작품을 보여주지 않을 수는 없다. 일단 보여주기 시작하면 완전한 연락망을 가져야 한다.
6. 매우 겸손하면서 동시에 자존심이 강하다
거만하리라 기대했던 유명인이 뜻밖에 소심하고 수줍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뉴턴의 말대로 자신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자신의 업적에 어느 정도 행운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보통 미래의 계획과 현재 직면한 도전에 너무 집중하기에 과거의 업적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캐나다의 예술가인 마이클 스노우는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수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혼란감과 불안감 덕분이라고 말한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아무리 겸손하다고 해도 자신이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발명할 때 필요한 것을 나는 ‘존재증명’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뜻하는 말입니다.”
- 제이콥 라비노(발명가)
7. 전형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 있다
젊은이들에게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 테스트하면 창의적이고 재능 있는 소녀들은 다른 소녀들보다 지배적이고 강인하며, 창의적인 소년들은 다른 소년들보다 감성적이고 덜 공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심리학적으로 양성적인 사람은 현실에 두 배로 반응하면서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경험하고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8. 개혁적인 동시에 보수적이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문화 영역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한 영역의 규칙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며, 따라서 어느 정도 전통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전통에 따르기만 하면 해당 영역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즉 어떤 학문에 관한 과거의 평가에 끊임없이 도전하지 않으면 진보적이고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다.
9. 자기 일에 매우 열정적인 동시에 객관적이다
애착과 초연함 사이의 갈등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그들의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열이 없다면 힘든 작업을 하면서 금방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나 객관적이 되지 못한다면 그릇된 길로 빠지거나 사실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 따라서 창조 과정은 음양의 조화라고 일컫는 이런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
10. 즐거움뿐 아니라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발명가들은 쉽게 고민합니다. 모든 것이 그들을 괴롭히거든요.”
- 제이콥 라비노(발명가)
대부분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보다 모욕감과 불안감을 쉽게 느낀다. 선구적인 분야에 홀로 서 있는 자 또한 불안하고 상처받기 쉽다. 유명세에는 가끔 비판과 심술궂은 공격이 따라온다.
예술가가 몇 년을 투자해서 만든 조각품이나 과학자가 몇 년을 걸려 수립한 이론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여러 이유로 성공하지 못할 때 경험하는 상실감과 공허감일 것이다. 특히 창의성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럽다.
모든 창의적인 사람들의 가장 일반적이고도 중요한 성향은 창조과정 자체를 즐기는 능력이다. 그런 성향이 없다면 시인들은 이상을 포기하고 상업적인 시를 쓸 것이며, 경제학 교수들은 대학 대신 은행에서 일할 것이며, 물리학자들은 기초학문을 하는 대신 기업에 입사할 것이다.
“추구할 만한 아이디어를 만나면 순간적인 평온함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또 그런 아이디어로 최선을 다했을 때나 완성했을 때도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루 정도 흐뭇한 기분이 들겠죠. 이제 다시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면서 밤에 포도주 한 잔을 기울입니다. 그
러고 나면 다시 시작됩니다. 글이 써지기를 바라죠. 때로는 그런 공백기가 하룻밤이 아니라 몇 주, 몇 달, 몇 년 동안 지속됩니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삶은 점점 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워집니다. ‘고통스럽다’는 표현은 너무 약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가의 정체성이 위태로워집니다. 작가라는 사람이 글을 쓰지 못한다면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죠.”
- 마크 스트랜드(시인)
원문: 유창의 무비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