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이끌었다. 같은 날 개봉한 한국영화 <악의 연대기>는 초반에 1위를 달리다가 뒤처졌는데, 이로 인해 입소문이 영화 흥행에 중요한 변수임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매드맥스>는 개봉 전부터 시사회로 미리 영화를 본 평단과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 근래 보기 드문 웰메이드 아날로그 액션 영화라는 평가와 근육질 남성이 등장하는 여느 액션영화와 달리 강인한 여성이 실질적인 주인공이라는 점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영화를 만든 조지 밀러 감독은 과거 <매드맥스> 3부작으로 강인한 남성상을 제시한 이후 <로렌조 오일> <꼬마돼지 베이브 2> 등 여성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룬 섬세한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만든 <매드맥스>가 핵전쟁으로 멸망한 뒤 절망만 가득한 지구에 여성을 희망으로 제시한 것은 감독이 견지해온 두 세계관의 융합인 셈이다.
<매드맥스>의 탄생은 1979년 호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가 되기 위해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던 조지 밀러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단돈 21달러의 출연료를 받던 무명 배우 멜 깁슨과 의기투합한다. 그는 공익광고를 찍는다는 거짓말로 투자자를 모아 호주의 사막을 배경으로 초저예산 영화를 한 편 완성하는데 이렇게 탄생한 영화가 바로 <매드맥스>다.
<매드맥스>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적은 분량의 액션 장면이 아주 효율적으로 삽입된 영화지만 이제껏 본 적 없는 절망적인 디스토피아의 세계관과 원초적인 액션에 당시 사람들은 열광했다. 고작 65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전세계에서 무려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입을 거뒀으니 전무후무한 초대박이다. 2년 후 제작한 속편 역시 2백만 달러 제작비에 2,4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둬 10배가 넘는 장사를 했다. 단 두 편의 영화로 조지 밀러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한 호주 감독이 됐고, <매드맥스> 시리즈의 오토바이 액션과 핵전쟁 후 디스토피아라는 설정은 이후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영광이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조지 밀러 감독은 1985년 <매드맥스 3>를 만들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이 시리즈는 잊혀졌다가 2000년대 들어 할리우드의 리부트 붐에 편승해 시리즈 리부트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 새로운 <매드맥스>가 탄생했다면 지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워너 브라더스에서 애니메이션 <해피피트>를 만들며 절치부심하던 조지 밀러 감독은 무려 30년 만에 시리즈의 4번째 편을 내놓았고 70세의 나이에 마치 30대 감독이 찍은 것 같은 강렬한 액션영화로 <매드맥스>의 부활을 알렸다.
조지 밀러와 워너 브라더스 외에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흥행 성공을 반가워할 곳은 또 있다. 이 영화처럼 오래된 프랜차이즈를 부활시키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다. 아이디어가 고갈된 할리우드는 과거 흥행작들의 창고를 들락거리고 있는데 <매드맥스>는 그 신호탄이었다. 올해 할리우드 라인업을 살펴보면 유난히 고전 프랜차이즈의 부활이 눈에 띈다. 하나씩 살펴보자.
가장 먼저 찾아온 영화는 지난 6월 11일 개봉한 <쥬라기 월드>다. 1993년 개봉해 전 세계에 컴퓨터그래픽 혁명을 선포한 <쥬라기 공원>의 새 시리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앰블린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했고 <쥬라기 공원 3>로부터 14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주요 인물들 역시 전부 바뀌었다. 배경은 쥬라기 공원의 이슬라 소르나 섬이 폐쇄된 지 22년 후의 미래로, 상어를 공룡의 먹이로 주는 테마파크가 재개장하고 1편의 추억의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역시 다시 등장한다.
7월엔 <터미네이터>가 6년 만에 돌아왔다. 다섯 번째 시리즈인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터미네이터> 1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당시 사라 코너와 사랑에 빠졌던 카일 리스를 소환한다. 한 마디로 영화는 1984년 <터미네이터>의 시대로 돌아가는데, 추억의 터미네이터 T-800은 더 강력한 나노 터미네이터 T-3000에 맞서야 한다. 감독은 <토르: 다크월드>를 만든 앨런 테일러. T-800은 여전히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맡고, 사라 코너 역은 <왕좌의 게임>의 에밀리아 클라크, 카일 리스 역은 <다이버전트>, <언브로큰>의 제이 코트니가 맡았다.
7월 30일엔 <미션 임파서블>의 다섯 번째 미션이 찾아온다. 1960년대 인기를 끌던 TV 시리즈가 1996년 첫 영화로 만들어진 이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4~6년 주기로 비교적 꾸준하게 만들어져왔다. 톰 크루즈가 1편으로부터 20살을 더 먹었지만 여전히 건재한 이 시리즈의 제목은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 <어벤져스>의 ‘호크아이’ 제레미 레너와 <꾸뻬씨의 행복여행>의 사이먼 페그가 이번에도 IMF 팀원으로 합류한다. 원래 겨울 개봉 예정이던 것을 여름으로 앞당겼다.
11월엔 스파이 영화의 원조 007 시리즈를 맞이할 차례다. <007 스펙터>는 전편 <007 스카이폴> 이후 3년 만에 돌아오는 007의 24번째 시리즈다. 전편에 이어 샘 멘데즈가 감독하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 역할을 맡았다. 본드걸로는 모니카 벨루치와 레아 세이두가 합류했고, 크리스토프 왈츠와 랄프 파인즈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고전 프랜차이즈들은 올해 12월 18일 개봉할 이 영화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하다. 2005년 프리퀄 3부작이 종결된 이래 10년 만에 부활하는 이 스페이스 오페라는 영화 속 시간 순서로는 1983년에 종결된 초기 3부작의 마지막 편 <제다이의 귀환>에서 30년 뒤를 배경으로 한다. 바로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다.
<스타워즈>에 대한 전 세계 팬들의 기대감은 대단해서 영화의 개봉일이 2016년 1월로 밀린 이탈리아에선 5천 명이 넘는 팬들이 디즈니사에 청원을 넣어 결국 개봉일을 12월 16일로 앞당기게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어깨가 무거울 남자 J.J. 에이브럼스 감독은 월트 디즈니의 주요 주주가 된 조지 루카스와 함께 <스타워즈>의 후반 작업에 한창이다. 오스카 아이작, 돔놀 글리슨, 그웬돌린 크리스티 등 요즘 뜨는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됐고, 해리슨 포드, 마크 해밀, 캐리 피셔 등 왕년의 스타들도 출연한다.
조지 루카스는 마지막 3부작을 동시에 기획해 2년에 한 편씩 선보일 계획인데 2017년 개봉하는 8번째 시리즈의 감독은 <루퍼>의 리안 존슨이 맡았다.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이 만들어진 것이 1977년이고 시리즈 9편의 개봉이 2019년으로 예정돼 있으니 조지 루카스가 청년 시절 구상한 ‘스타워즈’의 세계는 무려 42년 동안 계속되는 셈이다.
이밖에 올해 2월 개봉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역시 할리우드 고전 프랜차이즈의 부활과 무관하지 않다. 이 영화를 연출한 매튜 본 감독은 007 시리즈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007 살인번호>(1962)의 테렌스 영 감독이 숀 코너리를 캐스팅하기 위해 그를 영국 신사로 훈육시킨 일화를 바탕으로 <킹스맨>의 스토리를 착안했다. 또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의 악역 죠스를 보고 인공다리녀 가젤 캐릭터를 구상했고, <007 문레이커>(1979)에선 악당 리치몬드 발렌타인 캐릭터를 가져왔다. 옛것을 취하되 이를 현대식으로 새롭게 비튼 <킹스맨>은 할리우드 고전 프랜차이즈를 새롭게 뿌리내리는 전략의 맛보기였던 셈이다.
원문: 인생은 원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