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님의 전공은 무엇인가?
이것저것 오지랖 넓게 아는 척’만’ 하는 관계로 가끔 ‘님은 진짜 전공이 뭔가염?’ 하고 물어보시는 사람들이 좀 있다. 그럴때마다 “분자생물학인데염” 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좀 갸웃하면서 (‘훗 요즘 분자생물학 안 하는 생물학자가 어디 있냐’ 정도의 표정을 지으면서) 음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시는데요? 하고 다시 묻는다.
그러면 “제 주 관심사는 actin filament(액틴 필라멘트 : 세포질에 분포하는 세포골격 잔섬유 가운데 크기가 가장 작은 섬유)가 어떻게 필요할 때 만들어지고 없어지느냐이며, 이를 위해서 구조생물학적인 방법 및 세포 생물학적인 방법을 써서 일을 함.”이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 그렇다면 “분자생물학 하신다면서요?” 라고 되물어 보는 경우가 있다.
듣보잡 과학자인 본 블로그 주인이 뭘 하느냐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고(…) 여기서 하고 싶은 요점이란, 흔히들 생각하는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이라는 것의 이미지가 조금은 요상하게 왜곡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즉 나는 스스로 ‘분자생물학자’라고 생각하는 주로 구조생물학적 방법론을 쓰는 사람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구조생물학’을 하는 사람과 ‘분자생물학’은 별개이며, 분자생물학은 주로 DNA, RNA 등을 가지고 찝적거리는 사람으로 국한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과연 타당한가?
분자생물학의 태동
흔히들 요즘 들어 ‘분자생물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분자유전학’(Molecular Genetics) 아니면 ‘분자 세포생물학’(Molecular Cell Biology)이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것이 합당한 학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구조생물학’(Structural Biology)이 분자생물학이라고 말한다면 좀 너님 이상한 사람 아뇨? 하시는 분들도 가끔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현대의 분자생물학의 원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분자생물학의 원류를 따져본다면, 1940년 이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물리학의 전성시대” 가 끝나가는 시점에 “아인슈타인횽, 하이젠베르그횽 등등이 다 뽕빨을 낸 이 바닥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치킨집? ㅠㅠ” 를 고민하기 시작한 몇몇의 삐딱한 물리학 출신자가 그 중심이라고 해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많은 ‘문외한’ 들을 생물학 연구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 둘 있었으니…
막스 델뷰릭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쓸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넘의 고양이덕후로 알려진 에르빈 슈뢰딩거와 분자생물학이 무슨 관계가 있다구? 큰 관계가 있다. 에르윈 슈뢰딩거는 1943년 더블린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일종의 특강을 했었는데, 그 내용이 나중에 “What is Life?”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다. 어차피 그 당시 생물과 유전현상에 대한 물리 화학적인 근원에 대해서는 그 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슈뢰딩거가 어차피 생물학자도 아니니(…) 그냥 날 잡고 상상의 나래를 피셨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는 너무 길고 “이제 물리학에서 할 거는 다 한 것 같지?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생물학의 유전적 원리라든가 발생 등은 현재까지 밝혀진 물리학의 원리로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애. 아인슈타인횽, 하이젠베르크횽등이 넘 설쳐서 기죽어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물리학도 여러분은 걍 생물을 좀 파보도록 해. 혹시 누가 알아? 생물에서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물리학 원리가 발견될지..아님 말구.”라는 취지의 그런 썰이었다.
그래서 많은 물리학자 출신의 과학자들이 이 썰에 낚여서(꼭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생물학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 어디 채집하고, 해부나 하고, 기껏해야 초파리 유전학 정도의 기초가 태동하고 있던 시점에서 생물학을 잘 모르는 무지렁이들은 무엇을 해야 했을까? 이러한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 가장 간단한 생명체라고 생각되는 것을 가지고 뒤벼보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저 위에 있던 막스 델뷰릭 횽이었다. 이 횽은 원래 엑스선을 가지고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줄 수 있다던데… 그래서 내가 가진 엑스선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서 유전학 연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1930년대 말에 미쿡에 가서 당시 초파리 유전학의 메카였던 칼텍에서 초파리 유전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넘 복잡해서 멘붕 -.-;; 대신 그 옆의 실험실에서 하고 있던 ‘세균의 바이러스’인 박테리오 파지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막스 델뷰릭 횽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을 파지 그룹(American Phage Group)이라고 불렀다. 막스 델뷰릭과 같이 연구를 했던 살바도르 루리아(Salvador Luria)라는 사람의 밑에 15살에 대학에 들어간 꼬꼬마 대학원생이 한 명 있었는데, 이 친구의 이름은 제임스 듀이 왓슨(James Dewey Watso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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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엑스선을 이용하여 생물의 구성요소인 단백질이라든지, DNA, 혹은 바이러스와 같은 것들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X선 결정학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로렌스 브랙(Lawrence Bragg) 밑으로 모여들었는데, 거기에는 막스 퍼루츠(Max perutz), 존 켄드류(John Kendrew)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막스 퍼루츠 밑에는 2차대전 때 병특(?)을 하던 전직 물리학과 출신의 늙은 대학원생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프랜시스 H 크릭(Francis H Crick)이었다. 여튼 이런 사람들을 대충 “영국 구조학파” 정도로 불렀다.
결국 현대 분자생물학의 근간을 이룬 DNA 이중나선이라는 것은, 미국의 파지 그룹과 영국의 구조학파 간의 만남이므로, 단백질 구조 규명은 분자생물학의 근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Laboratory of Molecular Biology(LMB)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영국에서 설립된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초대 소장은 막스 퍼루츠, 바로 현대 구조생물학의 아버지 격인 사람이다. 이 사람이 원장 자리를 물려준 사람은 바로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 크릭과 함께 유전암호가 3염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박테리오파아지 유전학으로 규명하기도 했지만, 이 사람의 또 다른 업적이라면 예쁜꼬마선충(C.elegans)을 다세포생물 유전학의 모델로 도입한 데에도 있다. 또한 지금은 많이 그 위상이 떨어졌지만, 한때는 분자생물학의 대표저널이었던 Journal of Molecular Biology의 초대 편집장은 다름아닌 존 켄드류. 역시 막스 퍼루츠와 함께 X선 결정학으로 단백질 구조를 최초로 규명한 사람이다.
즉, ‘구조생물학이 무슨 분자생물학이냐?’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구조생물학은 엄연한 분자생물학의 본류다.’라고 답해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분자생물학의 근본적인 정의를 생명현상을 분자 수준에서의 이해라고 내려보면, 가장 직접적인 생체고분자의 성질을 분자 수준에서 논하는 구조생물학이 분자생물학이 아니면 무엇이 분자생물학이란 말일까?
그런데 왜 ‘분자유전학’이 ‘분자생물학’의 전부처럼 알려졌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DNA 혹은 RNA를 가지고 노는 분자유전학이 마치 분자생물학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왕년에 파지 그룹의 제일 쫄따구였다가 DNA이중나선 덕으로 스웨덴에 갔다 오신 짐모씨의 역할이 크다.
그는 영국에서 돌아와 20대에 H모 대의 생물학과의 교수로 임용된 이후, 미쿡 전역과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광역 어그로를 끌기 시작하였다.
흠, 발생학이라든지 그런 거? 아직 분자 수준에서 연구 못하잖아. 그런 거 하자 마셈.
물론 종래의 생물학을 하던 많은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나, 어그로 끌기로 충분히 명성을 쌓아올렸고, 나름 그 일대에서 미쿡 파지 그룹에서 유래된 분자생물학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소위 센트럴 도그마, 즉 DNA->RNA->단백질로 유전정보가 전달되며, DNA의 유전암호는 대개 유니버셜한 3개의 코돈으로 단백질과 연관된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분자생물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또 닭집이냐 ㅠ.ㅠ
이때 방향을 전환한 것이 왓슨 휘하에서 양성된 몇몇의 과학자들(David Baltimore 라든가)이었다. 이들은 그들이 연구하던 파아지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바이러스로 연구를 확장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서 “암은 대개 다 바이러스 때문이다”와 같은 썰을 풀어나갔다. 그러던 중 1970년대 초 닉슨 행정부가 들어서고, 아폴로 개발의 그늘에서 벗어나 여기에 비견되는 자신만의 ‘업적’사대강을 쌓으려고 골몰하다가 튀어나오는 게 “암과의 전쟁”(War on Cancer). 암과 쪼끔이라도 관련되는 연구를 한다고 한다면 다 돈 퍼줘! 당연히 동물바이러스를 가지고 ‘암은 다 바이러스 때문인 거임’ 과 같은 썰을 풀던 초창기 분자유전학자들은 거의 잭팟이 터진 셈이다.
여기에 그 당시까지 소위 덕후일부 학자들에게서만 시행되던 분자생물학 연구가 1970년대 중반 재조합 DNA 기술의 개발에 따라서 급속도로 일반화되었으며, 그동안 박테리오 파지 같은 덕후스러운 모델 생물에 대해서 연구되던 분자생물학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을법한 진핵생물, 혹은 동물세포배양 등과 같은 것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는 지금과 같이 ‘분자생물학=분자유전학 or 분자세포생물학’과 같은 인식으로 귀착된다.
이제는 ‘분자생물학’의 반쪽을 찾을 때
사실, 한때 분자생물학 창립의 반쪽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구조생물학이 분자생물학의 주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것에는 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라면 구조생물학의 주 연구 테크닉인 X선 결정학의 진입 장벽이 높았다는 것도 그 이유랄까. (수학, 컴퓨터, 그리고 그넘의 결정이 만들어져야 뭘 해먹지 -.-;;;) 그래서 구조생물학을 하는 사람들은 다른 ‘분자생물학’(이라고 불리는 분자유전학 또는 분자세포생물학)을 하는 사람과 비교적 고립되어 일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이 사실.
물론 왕년에 구조생물학의 진입 장벽을 높게 했던 여러 가지 요인들은, 현재 많이 해소되었다. 즉 왕년엔 몇천만 원 짜리 실리콘 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을 사야만 단백질 구조 좀 다룬다고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중의 제일 싸구려 PC에서도 구조를 푸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구조를 푸는 것이 아닌 단순히 단백질 구조를 들여다보는 데는 그리 높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개의 ‘분자생물학자’들에게는 구조생물학은 어려운 존재이며, 단백질 구조는 ‘그저 예쁜 그림’ 일 뿐이다. 그리고 대개의 유전자들은 일차원적인 서열에 불과하고.
그래서 이 글에서 주장하는 것은 바로 제목과 같다.
나의 (앞으로의) 분자생물학은 그러지 않아!
현대의 (분자)생물학자로서 알아야 할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신이 직접 구조를 규명하는 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분자 수준에서 유전자를 가지고 깨작거리는 일을 한다면, 당연히 당신의 완소 단백질(혹은 RNA)의 구조를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한다. 구조적인 개념이 부재한다면 결국 세포생물학, 나아가서는 유전학적인 연구를 할 때도 알게 모르게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가령, 특정한 유전자의 기능을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Deletion Mutant를 만든다고 하자. 이때 “예측되는” 혹은 “이미 규명된”구조에 기반하여 뮤턴트를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가령 단백질 중간의 도메인 가운데를 싹둑 잘라둔다든지, 심지어는 알파 헬릭스 혹은 베타 쉬트와 같은 2차 구조가 존재하는 위치를 무시한다든지…
또 다른 예라면 요즘 차세대 시퀀싱(NGS)이 보편화되면서 수많은 변이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만, 과연 이러한 변이가 단백질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를 해석한다든지 말이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나의 분자생물학은 그러지 않아!”이나, 앞으로 “당신의 분자생물학도 그렇지 않을걸?”이라는 말을 덧붙여두고 싶다. 즉, 분자생물학자라는 것을 주장하려면 분자생물학의 ‘반쪽’ 인 구조생물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결론 되겠슴다. 결국 지가 하는 거 PR 다 그런 거죠 이 바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