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경우 과학적인 발견이 언론에서 보도되는 시점은 해당 연구가 논문으로 나와 공개된 직후가 되겠다. 물론 극히 예외적으로 중대한 발표인 경우(이런 경우라든지, 이런 거는 말고)는 논문 발표 전에 언론에 공개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그야말로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고, 결국은 논문 형태로 공개된 결과가 보도되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현대의 학술논문은 어떤 형식으로도 동료리뷰(Peer Review)를 거친 것들, 즉 해당 연구의 의의나 엄밀성을 판단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인 유사분야 연구자, 그러니까 같은 장르를 파는 덕후들의 매서운 까임을 당하고, 여기에서 버텨낸 것들이라면 어느 정도 ‘팩트 검증’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으므로, 통상적으로 논문이 출판된 이후에야만 보도 가치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위협하고 있는 일부 불순한 무리들이 복붙녀라든지 있어서 문제지만, 뭐 지금은 그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고…
원논문 링크가 제공되는 미국의 과학 보도
그렇다면 과학 연구에 관련된 보도의 일차 소스는 연구 논문이므로 제일 중요한 것은 논문 원문 링크를 기사와 함께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학술논문은 온라인에서 접속할 수 있고, 최소한 논문의 초록 정도는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논문에 대한 내용을 보도한다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고, 해당 분야에 대해서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독자라면 당연히 원논문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원문에 대한 링크를 제공해야지?
가령 미쿡의 N모 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그래서 두세 번째 문단을 보면
‘Study’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면
N모 잡지에 실린 원논문으로 바로 이동한다. 그래서 나비 덕후 혹은 유전학 덕후라면 좀 더 논문을 들이벼 파면서 기사에서 뭔 뻘소리를 썼는가 검증이 가능하다. 깔끔하죠?
원논문 링크까진 안 바라니 찾아볼 수나 있게 영문 표기라도
그런데 국내 신문에 실린 어떤 기사를 보자. 특별히 기사를 고른 것도 아니고 아무 기사나 집히는 데로 찍은 거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무슨 대학 무슨 교수, 무슨 대학 무슨 교수 이름은 줄줄 나오는데, 결국 연구가 발표된 것은 어디냐. 링크 따위는 없고 이게 다다.
국제학술지 ‘임상연구저널’이 뭐냐. ㅡ.ㅡ 국제학술지라면 아무래도 영어 이름이 있을 텐데, 영어 이름은 안 나와있다. 당연히 링크 따위는 없고.
그나마 이 기사를 읽는 사람이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JCI)라는 저널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JCI라는 저널을 잘 모르는 사람은 “‘임상연구저널’이 어디 한두 개냐!” 하고 멘붕하고 있었을걸? 그래서 구글 검색.
홈페이지로 고고.
그런데 해당 논문은 어떻게 찾아야 하나? 논문이 해당 저널에 한두 개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해당 연구를 주도한 사람이 이 씨이기 때문에 Lee를 검색해 보았다.
610개… 근데 2014년에 나온 것이겠지? 그래서 여기를 클릭해 보았다.
음 그래도 바로 안 나와! 그래서 한줄 한줄 찾고 있었다. 온라인판 7월 18일 자라는데, 7월 18일 자 없어! 결국 찾다 보니 이것인 것 같았다.
물론 자가포식(Autophagy), 당뇨(diabetes)가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찾았겠지만, 아마도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의 논문이라면 이런 식으로 찾아가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원논문을 찾는데 이런 시간을 들여야 하나? N모 타임스처럼 기사에 링크 하나 걸어주면 쉬운데. 링크를 걸면 쉽지만 거의 대부분의 한국 과학기사에 원논문의 링크를 걸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은 아마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 대개의 과학기사는 (국내 과학기사의 경우) 논문이 나왔는지의 여부는 상관없이 제공된 보도자료를 복붙하는 것만으로 ‘쓰여’ 진다. 제공된 보도자료를 그냥 복붙하니까 해당 논문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도 못하고 당연히 링크를 걸 능력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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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과학기사의 경우에는 그냥 해외 언론에 보도되면 소위 ‘우라까이’를 해서 쓰여진다. 당연히 1차 소스를 가지고 읽고 쓰는 게 아니니까 링크 따위는 못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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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자신들이 원문의 링크를 가봐야 검은 것은 글자, 하얀 것은 스크린인 것밖에 모르므로, 링크를 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러니 독자 너놈들이야 어쩌겠어… 그런데 미안하다. 독자 중에서는 나 같은 넘들도 있단다.
원래 논문의 링크를 하나 걸 수 있는 능력이나 성의도 없다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당연히 전혀 이해를 못할 수밖에 없고, 결국 보도 내용은 ‘보도자료를 써주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여기에 그럴싸한 저널의 이름이 들어가면 ‘내용은 몰라도 뭔가 있겠거니’ 하게 포장돼서 선전된다. 그런 행태의 가장 극단적인 예가 얼마 전에 영화로 만들어졌지?
아무튼 이 문제로 좀 더 나가면 말이 길어지므로 몇 마디만 하겠다.
- 모든 논문출판을 근거로 하는 과학연구 보도는 해당 연구논문의 출처를 하이퍼링크로 달아라.
- 그게 싫으면 정확한 서지 번호 및 출판저널의 영문명을 명기해라.
- 그것도 싫으면 하다못해 논문 제목을 영문으로라도 명기해라. 구글 검색이라도 하게.
- 할 능력이 없으면 적어도 그런 거 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고용해라. 요즘 노는 과학자 많다.
- 다 싫으면 그냥 과학기사 내지 마라. 어차피 과학기사 잘 안 읽잖아. 그 지면에 ‘충격!’ 시리즈 넣어봐라.
지구정복 후에 쓴맛을 보기 싫으면 순순히 따르는 게 좋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