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부줏돈” 에 대한 이야기
한국사회에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지인의 경조사에 참석하는 일이고, 지인의 경조사에는 필연적으로 축의금 및 부의금을 내야 할 상황이 생긴다. 통칭 “부줏돈” 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표준어는 ‘부조’ 이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부줏돈” 이라고 쓰겠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경조사가 많이 일어나는 연령대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줏돈” 으로 나가는 비용도 적지 않게 느껴질수도 있다. 지인의 결혼식 혹은 장례식 등에서 “부줏돈” 을 봉투에 넣으면서 “음…근데 내가 이걸 과연 나중에 ‘회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안해보신 분은 그닥 많지 않으리라.
사실 단기적인 경제적인 이득만을 생각한다면 가급적 지인의 경조사 참석을 하지 않거나, “부줏돈” 으로 내는 금액을 최소화하는 것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주변의 어른들은 대개 “쯔쯔…그렇게 살지마라” 라고 혀를 찰 것이다. 왜? 우리가 지인의 결혼식에 가서 부줏돈을 내는 것만큼이나 피로연에서 잘 먹고 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참석한 결혼식이나 장례식의 당사자가 반드시 나의 경조사에 참석하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왜 우리는 부줏돈을 내는가?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남의 경조사에 인색하면 자신의 경조사에도 별로 들어오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의 경조사에 너그럽게 여기저기 쫓아다닌다고 해도 자신의 경조사에 그만큼 많이 회수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실 것이다. (사실 경조사의 금액은 경조사를 치르는 부모 혹은 자식의 직위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니까) 즉 우리가 지인의 경조사에 ‘부줏돈’ 을 내는 것에는 일단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부줏돈’ 을 내는 행위는 일종의 공동체에 내는 “세금”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즉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따진다기보다는 그저 앞으로 원만한 인간관계 – 사회생활을 위해 지인에게 표시하는 예의 정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여기서 이해관계를 따진다면 자기와 그닥 친분이 없는 직장 동료-상사-후배의 경조사라고 무시하고 부줏돈을 내지 않거나, 주변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금액을 지불하는 것을 반복하다보면 자신의 사회적 평판이 손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즉 부줏돈 좀 아낄려다가 “저 사람은 직장 직속부하의 결혼식에도 부줏돈도 안내는 인색한 사람” 내지는 “절친의 부모 상에도 참석하지 않는 자기밖에 모르는 넘”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박혀서 얻을 수 있는 손해보다는 부줏돈 좀 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낫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줏돈을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기초과학 연구의 투자와 효용
부줏돈 이야기는 이제 작작 하기로 하고..직업이 직업인지라 가끔 업계 바깥의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듣는 경우가 있다.
“님은 하는 일이 뭐임?”
“결국은 기초생명과학 연구인데…어쩌구 저쩌구…그래서 이게 조낸 중요한 일인데…블라블라”
“그래서, 그거 하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데? 이거 하면 돈 됨?”
“뭐 이것을 연구하다보면 결국은 이런 득이 있을수도 있는데 그건 먼 훗날의 일이고…뭐 일단은 학문의 발전과,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왜 그런지 궁금하니까 ㅋㅋ”
“그래서 님은 결국 님의 궁금증을 위해서 국민의 혈세를 쓰겠다는 거임?”
“바로 그거야! Exactly!”
물론 아는 사람과의 편한 자리에서는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정부 과제 제안서를 쓴다고 할때 이렇게 쓴다면 그닥 전략적으로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뭐 이것을 연구하다보면 결국은 이런 득이 있을수도 있는데 그건 먼 훗날의 일이고…” 를 강조할 수 밖에 없겠고, 사람에 따라서는 “이걸 하면 3백억조 국부창출은 일도 아니다!” 를 목놓아 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실 기초과학 연구라는 것이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은 참으로 애매한데, “영향을 안 미친다고 하기도 그렇지만 계량적으로 얼마정도의 투자효용을 가져온다” 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뉴턴이 확립한 고전물리학이 현대사회의 문명 발전에 가져온 영향은 자명하지만, 이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다는 것은 글쎄? 아니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은? 왓슨&크릭의 DNA 이중나선은?
그리고 ‘언젠가는 모르겠지만 사회적 경제적으로 이득을 가져올 것 같은 연구’ 를 선별적으로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것 역시 무리수인데, 그 당시에는 이것을 연구하는 것은 해당 분야의 진짜 덕후들이나 관심있을 듯한 초 마이너 레어한 연구토픽이 일, 이십년 이후에 수억, 수십억 달러의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산업이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것에만 투자를 하면 몇 년 후에는 ‘삼백억조’ 의 국부를 창출한다고 하던 연구가 수십년이 지나도 별 성과 없이 생돈만 쓰인 셈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고 외치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실 기초과학의 발전은 국가의 경제 발전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 가령 미쿡이 현대 자연과학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메카가 된 것은 2차대전 이후라고 봐야 하지만, 사실 미쿡은 훨씬 더 그 이전부터 경제력에서는 킹왕짱인 존재가 되었었거든,..그것은 영국, 독일 등등의 유럽국가도 마찬가지이고.
그래서 기초과학 투자는 경제 발전에 필요합니다~ 라는 이야기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정상적인 과학발전을 촉진하기 보다는 그닥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다 보면 경제 발전에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기초과학에 대해서는 투자가 전혀 안될 테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기초과학 투자는 경제 발전을 이룩하는데 그닥 필요가 없으니까 우리는 기초과학을 멀리하고 그냥 땅투기나 하는 것이 좋습니다’가 님의 결론인가? 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부줏돈’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이 때를 위해서였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와 ‘부줏돈’
기초과학이라는 것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반드시 경제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을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국민의 혈세를 들여서 기초과학을 어느정도는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부줏돈’ 과 성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줏돈’ 을 낼때 다음달에 우리 집 아들 결혼식이 있으니까 지금 좀 많이 부주를 하면 다음달에 회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적어도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과학 정책이 근본적으로 경제성장의 기반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다음에 있을 우리집 경조사에 들어오는 부줏돈을 좀 더 늘려보고자 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부주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랄까.
그럼에도 한국이 한국의 경제력에 걸맞는 수준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인의 경조사에 ‘부줏돈’ 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이다. 즉, 인류에 대한 상식과 예의의 차원이라고 하면 되려나..
현대문명이 결국 발전하게 된 것은 그동안 쌓아올린 기초과학의 기반하에 있으나, 기초과학의 성과를 결국 취하는 것은 그 근간이 되는 기초과학을 지원한 주체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여기에 투자를 했던 간에 상관없이 그 과실은 ‘인류’ 가 먹는 것은 매한가지다.
수 십년전 미국이나 독일 대학 과학자들이 그네나라 세금을 들여서 연구한 결과가 결국 현재에 와서 한국이나 일본, 혹은 중국의 기업이 번성하는 근원이 될 수도 있고,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세금으로 연구해서 출판된 결과가 수십년 후에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누군가의 득이 될수도 있다. 한마디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그동안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선대 과학자에 대한 ‘후불 사용료’ 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에이, 한국은 선진국도 아니니 무슨 기초과학, 기초과학은 그냥 천조국 님들이 하라고 하고, 우리는 그 성과만 이용해 먹으면 되는거야’ 라는 깜찍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 않은가? 솔까말 현재까지의 대부분의 과학자-정부당국자들의 수준이 이랬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는 몇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 요즘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이 칼로 무우자르듯 나뉘기 보다는 기초과학의 연구성과를 창조한 사람이 그것의 응용성이 발견되면 응용으로 바로 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이 해놓은 기초과학 성과에 슬쩍 밥숫가락만 올린다’ 라는 전략 자체는 현명하지 않음.
- 이러한 전략이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후진국때는 용납이 될 수도 있다. 마치 돈을 제대로 못버는 학생때 지인의 부조금을 챙기지 않아도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느정도 자기 밥벌이를 하게 된 상태에서도 지인의 경조사의 ‘부줏돈’ 을 학생시절처럼 슥 넘어가려고 한다면 당연히 저 친구개념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 한국의 경제규모는 어떤 기준을 따져도 세계 15위 내에 드는 국가이고, 더 이상 ‘한국은 선진국이 아니니 기초과학은 무리’ 라는 핑계로 넘어가기는 힘든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수준의 국가라면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기초과학에 투자할 의무가 있다. 만약 이 정도의 국가가 경제발전과 직접 관련이 있는 R&D에만 투자하려고 하고, ‘아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서…’ 같은 핑계로 국제공동의 노력에서 빠지려고 한다면, 결국은 개념없는 무임승차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제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투자를 가지고 경제효과를 따지는 것은 내가 오늘 낸 부줏돈이 과연 언제 회수될까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인식하고, 좀 작작하기 바란다. 우리가 오늘 남의 경조사에 낸 부줏돈은 우리의 사회속에서의 ‘얼굴’ 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투자하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의 후손에 대한 ‘예의’ 인 것이다.
원문: MadScien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