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과학이니 자연이니 하는 잡지들의 2012년의 뉴스는 대개 ‘힉스입자 (거의) 발견’ 으로 도배되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을 들을때마다 현실감각이 투철하신 일반적인 한국의 시민으로써는 이런 생각이 드는 분이 많을 것이다.
음 이거 하면 돈 나옴? 어차피 돈 나올 거리도 아니고 국가경제에 별 기여도 안할 것 같은데 웬 호들갑?
만고에 돈 한푼 안나오는 요걸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든 비용은 약 90억 유로. (대충 퉁쳐서 10조) 돈 잘 번다고 호들갑하는 삼슝전자가 TV팔고세탁기팔고램팔고모니터팔고전화팔고 등등 해서 한 분기에 얻는 이익을 모두 저기에 쏟아부으면 힉스 보손인지 하는 입자가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알 ‘수도’ 있다(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에 투자한 셈. 여기서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런 돈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긴 한 건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대개의 자연과학, 기초과학에서 수행되는 연구는 현실적으로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되는 연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더더욱 묘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당장의 국가적 경제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그런 과학 연구에 막대한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이러한 딜레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다른 예를 들 필요가 있다.
이런 것은 왜 사는가? 요즘 셀폰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 없고 시계가 없는 세상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은 비싼 돈을 들여서 명품 시계를 구입한다.
이런 것은? 이런 거 들고 다닌다고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그래도 이런 거 여유가 되면 못 사서 안달이다.
대한민국에서 중고생의 교복이 되버린 이 브랜드. 한국 중고생은 히말랴야 등반이라도 수행평가에 들어가 있나? 이거 안 입어도 된다. 그렇지만 남들이 다 입으니까 사야 한다. 등골브레이커가 요기잉네
아님 스마트폰 같은거 없어도 인터넷 하고 전화하는데는 문제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거 안 쓰면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보인다.
어쨌든 여러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한국사람들이 소비를 하는 데 있어서 항상 ‘여기에 돈을 쓰면 일년 후에 두배의 돈이 나온다’ 라는 식으로 경제적 산출가치만을 따져서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나의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데 이정도의 투자는 해야 남들이 우습게 보지 않는다’ 라는 이유로 소비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특히 남들의 시선에 민감한 한국에서는 말이다.
LHC 이야기하다가 왜 뜬금없는 명품 드립이냐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이 특별히 경제적인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대과학 프로젝트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면 이러한 거대과학 프로젝트가 일종의 국가 수준에서의 ‘위신’ 을 지켜주는 ‘명품’ 으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도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즉, 선진국들이 문명사회에서 문명을 이끌고, 앞으로 미래를 열어갈 지식을 개발하는데 투자하는 것은 마치 중고생 사이에서 노스페이스를 안 입으면 동료로 안 끼워주는 것과 비슷한 맥락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 나라한테 직접적인 이익을 주지는 않지만 인류 공통적인 지식의 창조에 투자를 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 이고 ‘허세’ 일지도 모르지만 국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해 주어야 하는 것이고, 특히 경제력이 순위권에 들어가는 나라라면 여기에 쓰는 ‘인류에 대한 세금’ 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이러한 것은 ‘허세’ 이긴 하지만 국가의 위신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치루어야 하는 ‘품위유지비’ 라고나 할까.
반면 국내에서 아직도 과학 발전의 목표가 ‘경제발전’ 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말하면 ‘가난뱅이 근성’ 에서 탈피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 문명을 이끌어 나가는 문화국가, 선진국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경제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석유 팔아 돈 많이 번 사우디 아라비아, 두바이를 선진국이라고 하는 사람 있나?
경제규모가 이미 어느정도 되는데도 국가의 정책 규모가 어떻게 해서든 ‘경제발전’ 에만 집착되어 있다는 것은 자칫하면 국가의 이미지를 ‘경제동물’ 화 하는 악영향이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손해를 본 나라라면 바로 일본이 될 것이고, 일본이 경제적으로 주춤한 요즘에 있어서 국가 이미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한국이 과거 일본이 가지고 있었던 ‘돈만 아는 경제동물’ ‘수전노’ 의 이미지를 고대로 물려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가 계속된다는 것은 어쩌면 결국 국가의 GDP는 증대하는데 국민들의 삶의 질은 점점 안좋아지고, 소득격차는 커지는 막장국가로의 지름길이라라고 할수도 있겠지.
자국의 경제동물 이미지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일본넘들의 국가 정책 자체는 이미 ‘품위있는 나라의 건설‘ 으로 바뀐 지 오래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의 목표 역시 단순한 경제발전의 도구가 아닌 인구증가, 환경오염 등과 같은 인류 공통문제 해결에 대한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야 내가 알바 아니지만 ㅋ 여러가지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우리는 일본이 이미 폐기한 ‘경제 지상주의’ 를 위한 도구로써의 과학기술 정책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인가? 일본은 자기 나름대로 ‘품위있는 나라’ 로 간다고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포스트 일본’, ‘경제동물’ 로써의 이미지를 세계에 굳히려는 것인가? 돈만 많으면 되지 좋나좋군?
물론 한민족의 위대함 좋아하고 남에게 업신여기는 것은 죽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우리 한국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가끔 별로 실속없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한가지 예로는, 지나친 엘리트 스포츠와 국제대회에서의 집착, 스포츠 대회 유치에 아직도 목숨거는 모습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거 솔직히 촌스럽고, 아무리 해봐야 밖에서 안 알아준다.
1976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여자 피겨 스케이팅 우승자가 누군지 기억함? 물론 알리 없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혹은 1983년 럭키금성 축구단에서 활약한 태국계 축구영웅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대개는 기억 못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타국인에게 김연아나 박지성은 어차피 그 정도의 인지도라는 이야기이다. 스포츠에 아무리 관심 가져봐야 10년만 지나면 땡. 국위선양. 그건 솔까말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이런 별로 실속없는 ‘국가의 자부심’ 말고 과학 교과서에서 배우는 무언가에 한국인의 이름이 붙어있다면 어떨까?
독일인, 미국인, 영국인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는 과학 교과서에 이름 한 줄 올라간다면 그것은 최소 100년은 간다. 허세를 부리고 싶고, 자랑을 하고 싶다면 좀 더 오래 남고 기억되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즉 명품을 사서 자랑을 하고 싶다면 팬티끈이나 양말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에 투자하지 말고 오래 잘 보이고 남을 수 있는 것에 투자하라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여튼,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이러함.
- 돈이 안 나오는 과학에 투자하는 이유는 국가로써의 존엄과 뽀대를 위함이다.
허세라고 불러도 좋다. 그 정도 허세는 나라의 지존에 필요하다. -
국가의 경제적 발전에만 중점을 두고 과학정책을 운영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며, 국가의 이미지를 돈만 아는 경제동물화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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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리는 없다. 세계적으로 뽀대가 나는 국가가 되고 싶으면 짝퉁 말고 정품을 사라.
짝퉁의 예: 황ㅇ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