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한 잭, 정작 마스터한 건 없네(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thing)’라는 말이 있다. 뭐 하나도 잘하지 못하면서 이것저것 관심만 많으면 너님 즐~ 이런 뜻으로 사용하는 말. 그러나 진짜로 그런가? 자기가 할 줄 아는 것만 알고 다른 것은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은 과연 어떤 한 가지에서 ‘마스터(master)’의 경지에 오를 수 있긴 할까?
물론 한 가지에 숙달되기까지는 다른 것에 관심 끊고 하나에 몰두하는 기간이 필요하겠지. 그러나 ‘숙련자(experienced)’와 ‘마스터’는 엄연히 다른 경지. 적어도 특정 한 분야에서 마스터, 구루(guru), 너님짱 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수많은 숙련자와 차별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해당 분야의 숙련자 99명이 ‘해봤는데 잘 안 된다능’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마스터이고, 그런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느 수준의 다재다능함(Jack of all trades)은 필요하다는 말씀. 즉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숙련자 경험의 한계를 넘어선 경험이 필요하고, 이런 경험은 때로는 해당 분야의 밖에서 얻을 수도 있다.
뭐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예를 들자. 어떤 사람이 해당 분야의 마스터다~ 라는 것에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스웨덴에서 전직 화약업자 눈먼 돈 좀 나눠 먹을 정도라면 누가 봐도 ‘해당 분야를 마스터한 사람이다’에 딴지를 걸지 못하겠지? 2013년 스웨덴에 갔다 오신 랜디 셰크먼(Randy Schekman)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사람이야 미쿡세포생물학회 회장까지 한 전형적인 세포생물학자지만 이 사람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친 행적을 생각해보라. 이 사람의 박사 고문(Ph.D Advisor)은? 다름 아닌 DNA 복제(DNA Replication)의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고 이 사람 밑에서 이런 논문 내서 학위를 딴 사람이다.
콘버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거의 생화학계의 척 노리스. 모든 생명현상을 정제된 단백질을 통해서 생체내에서 재현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믿는 사람이다. 즉 이 사람의 만트라는 “정화하고 재구성하라(purify and reconstitute).” “더러운 효소에 깨끗한 사고를 낭비하지 마라(Don’t waste clean thinking on dirty enzymes).”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이 왜 효모유전학을 하게 되었나? 뭐 대장균(E.coli) 배양해서 단백질 뽑다가 지쳤겠지 그리고 콘버그 아저씨 애들 갈구는 거 ㅎㄷㄷ 하잖아 이 사람은 박사과정 이후 막(membrane)에 관심을 두어서 포닥때 적혈구를 가지고 처음 엔도시토시스(endocytosis)를 연구하기 시작. 그래서 이런 논문을 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원래 교육받은 백그라운드가 생화학. 따라서 2년 포닥후에 UC 버클리에 자기 랩을 가지게 되면서 학위 시절에 DNA 복제하던 식으로 엔도시토시스 등의 막수송운반(membrane transport)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생화학적으로 연구해보자는 생각을 해봤음.
그런데 박테리아는 그런 게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안 될 거야…가 아니고, 대신 효모에서 해보자! 하며 일단 효모를 왕창 키운다. 해서 이콜라이하듯이 단백질을 정제해 체외(In vitro)에서 이를 재구성(reconsitution)… 그런데 펑셔널 에세이(functional assay)가 없잖아! 단백질을 정제 못 하잖아! 우리는 안 될 거야…가 아니고…
이러던 중 착안한 것은 ‘효모에서 수송(vesicle transport)에 관여하는 돌연변이를 만들어서 해당 유전자를 분리해보자’였음. 문제는 이 사람이 생화학자지 유전학자가 아니었다는 건데, 뭐 못 먹어도 그냥 고. 콜드 스프링 하버 실험실(Cold Spring Harbor Laboratory)에서 하는 2주짜리 효모유전학 속성 교육받고 효모돌연변이 찾으러 고고.
그런데 어떻게 수송에 결함이 있는 돌연변이를 찾지? 여기서 그가 원래 생화학자였다는 특성이 여실히 나타난다. 이 사람이 발견한 것은 ‘효모에서 수송 결함이 생기면 돌연변이체는 단백질 및 지방질(lipid) 생합성을 계속하지만 이를 세포막으로 나를 수가 없으므로 세포 크기가 작아지고 세포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중이 높은 세포를 분리할 것인가? 그 당시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에서 많이 사용하던 밀도기울기 원심분리(Density Gradient Centrifugation)를 써서 세포를 비중대로 분리해보겠다는, 어찌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즉 울트라센돌이를 열라 돌려서 생체구성물을 분획해내는 방법으로 당시의 생화학자 및 분자생물학자(당시 아직 아가로스 젤이 없었다)들의 완소 실험방법. 이것을 응용하여 효모 돌연변이를 선별해보자는 생각은 아마 랜디 아저씨가 생화학바닥에서 많이 굴러봤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총 23종류의 서로 다른 상보군(complementation group)을 지니는, 즉 같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뮤턴트를 선별하고 이들을 sec1, sec2, sec3… 등으로 명명했다. 결국 이 사람은 이렇게 만든 돌연변이주 효모를 가지고 그 특성을 연구하고, 이런 돌연변이가 어떤 유전자에 일어났는지 찾아서 유전자를 클로닝하고, 이 유전자로부터 단백질을 얻어서 결국 원래 계획대로 체외에서 수송을 정제된 단백질만으로 재구성. 콘버그 님이 Method를 좋아합니다
효모를 사용해서 유전자를 찾고
단백질의 특성을 생화학으로 규명하고
결국 이게 효모에서 인간까지 다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동시에 여러 가지를 다 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여러 방법론에 익숙해지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분야의 방법론을 또 다른 분야에 옮겨오는 게 가능하다는 것. 즉 이 사람은 다재다능한 잭이었기 때문에 마스터가 된 것이다. 과연 이런 연구가 서로 다른 방법론 하나에만 익숙한 해당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여럿 모여서 가능했을까?
분야에 따라서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서로 생각이 다른 여러 사람이 코워크하는 것보다는 여러 방법론에 익숙한 한 사람이 ‘셀프 코워크’하는 것이 때로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진정으로 혁신적인 연구, 혹은 너무 리스키한 연구를 할 때는 결국 셀프 코워크가 유일한 방법이 된다는 게 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