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매니아 님의 블로그와 npr news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된 이야기라는 것을 밝혀둔다. (Citation 하는 버릇은 중요하지요. ㅎㅎ)
2008년의 노벨 화학상은 이미 알다시피 해파리 유래의 형광단백질 GFP[1]를 최초로 발견했으며(Shimomura), 이 유전자를 최초로 예쁜 꼬마선충(C.elegans) 와 대장균(E.coli) 와 같은 다른 생물에 도입해 유전자 발현 및 단백질 위치의 마커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내고(Chalfie), GFP의 작용 메카니즘을 규명하고, 나아가서 다른 파장의 빛을 형광으로 내는 돌연변이 GFP를 만드는 등의 후속연구를 한(Tsien) 세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단백질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노벨상을 탔는데, 그렇다면 그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를 최초로 분리한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이야 많은 생물의 지놈 시퀀스가 결정되어 있어서, DNA 혹은 RNA 시료만 있으면 특정한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를 PCR을 통해 간단히 클로닝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하지만 지놈 시퀀싱 이전 시대에는 특정한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를 하나 찾아내고, 염기서열을 결정하고, 단백질을 발현해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만 몇 년 걸리던 시절도 있었다.
특히 그 단백질이 중요한 단백질일수록 특정한 유전자를 누가 먼저 클로닝해 확보하느냐가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이기도 했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해파리 형광 유전자를 다른 생물에 도입해 다른 용도로 이용한 것이 노벨상의 핵심 업적이므로, 유전자를 해파리에서 분리해 낸 업적은 당연히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물론 GFP 유전자를 최초로 클로닝하고 그 염기서열을 결정해 논문으로 발표한 사람은 있지만 이번에 노벨상 탄 3명은 아니다. 그 사람은 당시 우즈홀 해양연구소 (Woods Hall Oceanographic Institution) 에 근무하던 더글러스 프레셔 (D.C. Prasher) 라는 사람이다. Tsien과 Chalfie두 사람 모두 이 사람으로부터 클로닝된 GFP 유전자를 받아서 노벨상을 받게 된 후속 실험을 했으며, 이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고 생각되는 논문들에도 프레셔는 공동 저자로 올라와 있다.
비록 제일 저자나 책임저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프레셔가 GFP 유전자를 이들에게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들의 운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는 최대 3명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끗발이 밀린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GFP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임은 분명하다.
노벨상 수상자 Chalfie도 “그 사람의 연구는 우리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했다. 나 말고 프레셔와 다른 두 명한테 노벨상을 줬을 수도 있다” 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의 연구업적은 노벨상 수상자에 버금가는 것이라는 데는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후 무엇을 했냐면…
알라바마 헌츠빌의 자동차 판매 매장에서 셔틀버스 운전을 했다고 한다. 셔틀버스…?
화학자, 셔틀버스 운전사가 되다
이 사람은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1988년부터 GFP 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실제로 GFP 를 다른 단백질과 융합해 표지자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창한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NIH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수행해서 해파리에서 GFP 유전자를 클로닝하는데까지는 성공했다. 이 사람도 대장균에서 GFP 유전자를 넣어서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형광을 관찰할 수 있는지를 시도하긴 했지만 발현에 실패했다고 한다(여담이지만, 대장균에서라도 성공했다면 이 사람도 이번에 노벨상 수상자에 포함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람이 받은 연구비는 2년짜리였고 연구비는 더 이상 연장되지 않아서 후속 실험을 수행할 수 없었다. 당연히 실험실도 계속 유지할 수 없었고. 그리해 GFP 유전자를 클로닝해 염기서열을 결정한 논문을 낸 이후에 유전자를 Tsien과 Chalfie에게 주었고(논문 나오면 이름이나 같이 넣어줘 정도 부탁하고), 그다음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이 사람은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은 듯 하다.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나와서 그동안 하던 GFP 연구는 그만두고 미 농무성 연구소에서 나방 관련 연구, NASA관련 연구소에서 기타 연구를 수행하다가, 진행하던 연구 프로젝트가 정리되는 바람에 2년 전에 직장을 잃었다고. 그래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셔틀버스 운전을 시작.
아직도 기회가 있다면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태. 그렇지만 자신이 분리한 유전자를 분양해서 다른 사람이 노벨상을 타게 될 연구를 하게 된 것에 대해서 아쉽다거나 하지는 않다고.
정부 돈을 써서 연구했다면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구 성과물은(동료 연구자들과) 공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믿는다. 나는 그 연구를 하는데 나의 모든 것을 바쳤지만, 내가 그냥 다른 사람 안 주고 가지고 있어 봐야 아무것도 안 되었을 거다. 그 사람(노벨상 수상자)들이 우리 동네에 오면 꼭 밥 한 끼 사야 한다.
When you’re using public funds, I personally believe you have anobligation to share, I put my heart and soul into it, but if I kept that stuff, it wasn’t gonna go anyplace.
라는 프레셔 씨. 이후 그는 2010년 헌츠빌에서 작은 연구관련 회사에 취업 성공했으나 2011년 정리해고당한다… 참 징하게도 안풀리시네 이분 ㅠㅠ
다시 연구자의 삶으로 돌아간 더글라스 프레셔
그러나 N모상 수상자의 일원이자 프레셔로부터 GFP 클론을 처음 받은 사람중의 하나인 Roger Tsien이 자기랩에서 일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사실 그 이전에도 계속 제안을 했었는데 이 양반도 나름 존심이 있는 양반인지 (전직 PI부심? -.-) 계속 거절을 했었는데 영 상황이 안 좋아졌는지 결국 수락했다. 그래서 지금은 Tsien 랩의 스탭 사이언티스트로 일한다는 이야기.
뭐 나름 해피엔딩이라면 해피엔딩이랄까… 그런데 어째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는 과학단지 앞 치킨집 사장님이라든가 MEET/PEET 학원강사가 될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원문 : Media Lab
- Green Fluorescent Protein, 녹색 형광 단백질. 1962년 일본의 해양생물학자인 시모무라 오사무가 해파리의 형광 물질을 연구하는 도중 처음에 발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