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에 종사하다 보면 ‘내가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라는 말을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수가 어디서 누군가 약 20년 전에 해보고 안 된다는 게 이미 알려져 있는 이야기로 판명된다든지, 아니면 현존하는 기술로써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장벽이 있다든지 등등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것은 남 이야기만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이건 뭔가 되는 아이디어 같다’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깊게 뒤져보면 비슷한 결론이 난 경험도 많고. 실제로 몇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예기치 않은 문제점 때문에 중간에 그만둔 경우도 있고 등등.
어쨌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는 것(혹은 그렇다고 믿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남이 하라고 하는 것, 해야만 하는 것에만 매달려 사는 사람이 천지인 상황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은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발견, 즉 세상에 새로운 지식을 하나라도 더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Search, Search, Search
지구의 인구는 약 60억 명이며 여태까지 이 지구 상에 머물렀다가 이승을 하직한 사람의 숫자는 그것보다 몇 배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즉 지구에 사람은 많으며, 그들 모두는 쉴 새 없이 생각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생각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는 이야기이다.
즉,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검색해라. 그것도 여러 번, 집요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국문으로 검색할 생각은 당연히 하지 말자. 세상의 지식의 거의 대부분은 한글로 되어 있지 않다.
전문적인 아이디어라면 단순한 구글 검색보다는 특허 검색, 문헌 검색이 필요하다.
문헌 검색에서 치트키가 있다면 원하는 검색어를 가지고 나온 논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가장 권위 있는 리뷰 논문을 훑는 것이다. 과연 여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암시해 주는 연구결과가 있는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대개 당신보다 해당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존재하며, 이런 사람들은 이미 옛날에 당신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능한 모든 문헌을 찾아보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의 경험이 바로 리뷰 논문이다. 잘 이용하자.
물론 이러한 공개된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되지 않았다고 그 아이디어가 지금 지구 상에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의 입증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찾아라. 검색어 한두 개 검색해서 안 나온다고 “오옷, 이것은 새로운 아이디어 앗싸!” 하지 마라. 이거 찾으면 님 상금 백만 불 해서 일주일 동안 불 켜고 찾아서 안 나올 정도는 되어야 이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인정해 줄 수 있는 거다.
2. There are good reasons why we don’t have flying car yet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은 결과 내가 현재 가진 아이디어가 지구 상 누구도 아직 현실화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앗싸. 존나좋군?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나는 ‘지구 상 누구도 아직 현실화하지 못한’ 이라고 했지 ‘생각해보지 못한’이라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즉 지구 상 누군가는 님과 같은 생각을 해서 이미 시도까지 해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디어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면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1) 그 아이디어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ㅋ
결국 하다 보니 빛의 속도를 돌파하여 정보를 교환한다든지와 같은 물리·화학적 원리에 위배된다든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실현 가능성 없는 아이디어로 판명되는 경우일 것이다. 잘못된 가정으로 인해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아이디어였을 경우. 물론 이렇게 판명되더라도 슬퍼 마라. 세상의 누구도 완벽하지는 않으니까. 이러면서 배우는 거다.
(2) 가능성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장벽이 있는 경우
사실 세상의 많은 ‘아이디어’가 이렇게 묻혀지는 경우가 많다. 학술적인 논문으로 나오는 상당수의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가령 현존 컴퓨터 관련 알고리즘 연구의 상당수는 이미 60~70년대에 이론적 배경이 확립된 것들이 많은데, 이러한 것들이 그 당시에 실용화되지 않았던 데에는 기술적인 장벽이 있었다. 예컨대 컴퓨테이셔널 파워가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의 수십, 수백 배가 필요하다든지, 아니면 특정한 특성을 가지는 재료가 당시의 기술로는 확보될 수 없다든지 등등.
PCR의 기본 개념은 이미 1960년대에 Arthur Konberg가 DNA Polymerase를 연구할 때 나왔는데, 그 당시에는 이것이 실용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열에 안정한 DNA Polymerase가 없었기에 매 싸이클마다 DNA Polymerase를 넣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즉 현실적으로 PCR Cycle이 가능하게 된 것은 열에 안정한 Thermus aquaticus 유래의 DNA Polymerase가 발견된 이후였다는 것.
사실 일차적인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Novelty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대개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아이디어를 실행시키기 어려운 암초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이러한 technical difficulty를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사실상 이것이 ‘진정한’ 아이디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단계까지 도달하지 않은 것은 아예 아이디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다. 그건 그냥 뜬구름 잡는 이야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들고 아이디어라고 우기는 것을 자주 하다 보면 막상 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도 이것 역시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매도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전에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부수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제는 될 수도 있는 것’이 된 아이디어는 분명히 존재한다. 오히려 이런 것을 잘 찾아보는 것이 진정한 ‘될성부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여하튼 포인트는 항상 구체적일 것.
3. Try. but wisely
즉, (1) 세상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해봤을 것이고, (2) 아마 기술적인 장벽에 부딛혀서 구현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 이런 것 때문에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당신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러나 일단 시도를 하되, 이전에 시도한 사람들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그들이 해결책을 찾으려다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때에 비해서 지금 뭔가 달라진 점이 있는가? 당신이 그들에 비해서 무엇이 다른가? ‘아마 쟤가 하면 안 됐지만, 내가 하면 다를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명백한 남의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처음 시도부터 주의하자.
- 안 되면 다른 것을 해라.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해병대나 하는 거고, 안 되고,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모른다면, 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그 이유를 못 찾겠거든 하지 마라. 대신 딴 거 해라. 즉 최초의 아이디어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 그리고 안되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찾아봐라.
4. It is always better to run as a front runner
그나마 생각한 아이디어가 남들이 안 생각한 아이디어가 될 확률이 높아지려면 일단은 자신이 하는 일반적인 것들의 수준이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있으면 된다. 참 쉽죠? 즉 해당 분야의 선두그룹에 있다면,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하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은 거다.
물론 하루아침에 선두그룹에 낄 수는 없는 일.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선두그룹의 일원 시다바리으로 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5. Multi core CPU is better than single core
CPU 이야기가 아니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줄 ‘누군가’ 가 필요하다. 즉 혼자서 생각하는 것보다 둘, 셋이서 생각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 때로는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의 결점을 지적해 줄 수 있고, 남이 처음 생각한 crude 한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는 동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싱글 코어보다 듀얼 코어가 좋고, 듀얼 코어가 쿼드 코어보다 좋다고 반드시 클러스터가 좋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의 ‘CPU’는 제각각 스펙(?)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즉 물리적인 코어 수가 높다고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듯이 가끔 스펙(?) 떨어지거나 연산력이 떨어지는 CPU가 같이 ‘계산과정’에 동참한다면 병목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적어도 ‘유사한’ 스펙의 ‘CPU’를 가진 사람들과 머리를 맞댈 수 있도록 노력할 것. 클럭 속도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왜 유사한 사람이죠? 나보다 스펙 좋은 사람이면 더 좋잖아.”라고 물으실지도 모르는 당신. “Bottleneck이니 좀 빠져주세요. ㅋ”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을 거 아뇨.)
즉 지적으로 유사한 클럭 속도를 가지는 사람들과 ‘클러스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 내가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나도 그 정도 수준의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인 ‘Give and Take’가 일어나지 않는 파트너십은 결국은 오래가지 못한다. 뭐 아님 돈을 대든지. ㅋ
6. 닥치고 생각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따위 글 읽을 시간이 있다면 당장 로그아웃하고 생각하자. 세상을 바꿀…까지는 집어치우고 당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가 뭔가 없을지. 자기 앞날도 못 바꾸는데 세상을 바꾸느니 하는 허세는 자제염. 일단 자기 앞가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