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잠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이 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것 중 하나다. 이 지구상의 환경과 사람에 따라, 사는 방법과 생활하는 스타일은 1만 명이 있으면 1만 명이 모두 달라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도 때가 되면 잠잘 곳을 찾아 이동하고 일정한 수면을 취한다.
수면은 육체적으로 기능을 회복하고 재충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뿐 아니라 불쾌하고 불안한 감정이 꿈이나 무의식의 작용을 통해 정화되어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적절한 수면의 양, 충분히 깊은 수면의 질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도울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1. 당신은 아침형 인간입니까
“당신은 아침형 인간입니까” 하고 대놓고 물어보는 텔레비전 코너, 신문기사 등을 많이 듣고 보았을 것이다. 이 아침형 인간 열풍은 (씁쓸하게도) 일본에서 불어왔다. 2003년 사이쇼 히로시라는 일본의 한 의학연구소장이 쓴 동명의 책이 그 시작이다. 그는 ‘아침형 인간’이 되면 인생을 두 배로 활기차게, 효율적으로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저자가 텔레비전 쇼에 출연하면서 일본 내에 아침형 인간 열풍이 불었다. 강연회, 세미나에 아침형 인간이 되자고 새벽 독서회 및 학원 강의가 연달아 열렸다. 급기야 출근 시간을 2-3시간이나 당기는 회사가 즐비했다. 다음 해인 2004년부터는 이와 비슷한 현상이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우리나라에 넘어와서 사회 곳곳을 한바탕 누비고 갔다.
실은 이 ‘아침형 인간’에 관한 연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76년 혼과 오츠버그의 연구가 그 시초이다. 이들은 수면의 유형과 일상 업무 패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기상 시간이 빠르고 아침에 일의 효율이 높은 사람을 아침형 인간, 취침시간이 늦고 저녁에 일의 효율이 높은 이들을 저녁형 인간이라고 명명했다.
이후 이와 같은 류의 연구들이 계속 진행되어 최근에는 아침형, 저녁형 인간의 유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개인별 수면-각성 주기이고 이 변수는 대부분 불변이라고 밝혀지기도 했다. 모두가 아침형 인간을 지향하기보다는 수면의 질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이 가장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대에 생활의 중심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중이다.
2. ‘아침형 인간이어야’ 하는가
많은 연구자는 아침형 – 저녁형의 구분을 성격적 특징과 연관 지으려고 시도했다. 어떤 연구의 결과들은 아침형 인간이 언행에 있어 순응적이며 사회규범과 규칙을 지켜가면서 일을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묘사한다. 말하자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회사에 꼬박꼬박 출근하고 맡은 일을 지정된 자리에서 꼭 해내는 현대 직장인에게 딱 알맞은 유형이 아닐까 한다.
반면 저녁형 인간은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순응성이나 규범을 따르려는 성향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창조적이며 경험적 요소보다는 정보의 종합분석을 통해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즉 이런 유형은 오늘날 벤처 IT나 스타트업의 신사업 관련 계통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오전에 일을 집중하는 사람과 밤에 늦게 자고 저녁에 일이 잘되는 사람은 왜 그렇게 유형이 나뉘는 것일까.
주앙 프란시스코의 연구(2007)에 의하면 아침형 – 저녁형 인간의 차이는 ‘한 개인이 주변 환경을 인지하는 방식과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에 맞는 행동방식을 선택하고 조정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가가 아침형 혹은 저녁형 인간인 이유는 삶을 영위하는 자신의 사회적 조건과 환경을 판단하고 거기에 적합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에 기반 두고 일반적인 직장에 다니는 현대인에게는 아침형 패턴이 적합하며, 그렇게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성립했다.
왜? 주앙 프란시스코의 연구결과만 놓고 보자면 아침형 – 저녁형은 개인의 판단과 선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속한 사회와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아침형 인간인 것을 알고, 자신에게 아침형 인간으로 변모하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3. 저녁형 인간은 안 되는가
다양성이 존중되고 창의력과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는 요즘, ‘아침형 인간이 되자’고 부르짖는 열풍은 조금 잠잠해진 듯하다. 여기에는 우선 개인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과 개성을 중시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도 한몫한 듯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한강을 조깅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샤워를 한 후 모닝커피 한 잔’과 같은 광고 속의 한 장면이 아침형 인간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이미지였다고 한다면, 요즘은 ‘새벽 늦게 일을 마치고 들어와 LP판을 틀어놓고 짙은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읽던 소설을 펴드는’ 저녁형 인간의 매력도 어필한다.
많은 사람이 말은 못 해도 ‘꼭 아침형 인간이 사회생활에 적합한가’에 조금씩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라르센의 연구(1985)는 아침형 타입이 사회생활을 하기에 무난한 성격이기는 하지만 사교성의 측면에서는 소극적이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모험심이나 위기에 처했을 때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능력도 다소 떨어진다고 했다.
마르코 파브리의 연구(2007)에는 저녁형 인간이 통상 아침형 인간보다 우뇌를 많이 사용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아침형 인간은 좌뇌, 저녁형 인간은 우뇌, 이런 결론이다. 그러면서 우뇌를 많이 사용하는 저녁형 인간은 직관적 판단과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결론지었다.
‘어느 쪽 뇌를 더 많이 써서 특정한 어떤 능력이 차별적으로 우수한 사람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사실 ‘그래서 그게 뭐?(so what?)’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오른손잡이는 오픈팔 힘이 더 세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일상을 살거나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종류의 발견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반복되는 ‘day by day’ 업무를 지겨워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원인이 알고 보니 ‘그는 우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런 발견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침형 인간 – 저녁형 인간, 우뇌 사용 – 좌뇌 사용의 찬란하고 복잡한 연구결과에서 우리가 이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이다.
앞에서 살핀 주앙 프란시스코 등의 연구에서는 아침형 – 저녁형의 경계가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했었다. 마르코 파브리의 연구결과는 그와 상반되는 것이다. 아침형, 저녁형 인간이 어느 쪽 뇌를 많이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는 개인의 사회적 선택보다는 타고난 유전적 성향이 변인이라는 말이 된다.
4.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좋은 잠을 자는 것
이제 전문가들은 ‘아침형 – 저녁형 인간을 연구하고 발표하는 목적은 어느 한쪽이 낫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나로서는 강조한다기보다는 새로운 발견에 맞추어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아침형, 저녁형 인간의 연구결과는 개인의 행동 양상 및 생활습관, 수면의 양태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로부터 수면의 유형과 인간의 활동 혹은 행태가 일정하게 관련성이 있다는 추론을 제시한다.
실은 여기에 대해서도 나는 당연한 것을 복잡하게 연구해서 당연한 결과들을 말하는 소위 ‘과학’의 진지한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을 받지만, 어쨌든 아침형이냐 저녁형이냐의 택일이 아니라 ‘잠을 충분히 잘 잤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발견에 방점이 찍힌 것이 고무적이다.
최근 자기 계발이나 행복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수면과 관련해서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아침형 인간인가 저녁형 인간인가를 판단한 후에 자신에게 맞는 평균 수면시간과 수면의 최적조건을 찾아서 좋은 수면의 질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본인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오전에 일을 잘하건, 오후에 일을 잘하고 저녁에 늦게 잠들건 일을 잘하는 그 시간대에 최대한의 업무효율을 낼 수 있도록 수면의 질 쪽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이제 아침형 인간이야말로 현대의 조직 생활이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라던 그 많은 ‘소문’은 수정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아침형 인간’의 신화.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유행이었던 것이 아닐까? 그 신화에 모두 홀려 달콤한 아침잠을 포기하고 학원 새벽반으로, 조찬회로, 새벽 기도회로 줄줄이 전진해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저녁형 인간들에게 이제 다시 ‘원대 복귀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도 될 듯하다.
원문: 오피스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