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DNA는 부모세대에서 물려받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DNA나 분열로 증식하는 박테리아의 DNA나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 HGT)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죠.
과학자들이 고구마에 숨은 의외의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의외가 아닌 그저 사실일 수도 있는데, 우리가 먹는 고구마에 다른 생명체에서 기원한 유전자가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를 미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한 헨트대학교(Ghent University) 연구팀에 의하면 이는 천연 GMO(Natural GMO) 작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몇 유전자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속에 담긴 플라스미드라 불리는 유전자 조각을 통해 다른 생명체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비중은 크지 않지만 일부 유전자가 이런 방식으로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물 진화에 여러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유전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여기저기 끼어 들어가서 무한 증식을 하는 셈이니 자신에게도 유리한 셈이죠.
연구팀이 고구마에서 발견한 외래 유전자는 근두암종균이라고 불리는 아그로박테리움(Agrobacterium)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균은 식물에 감염되어 근두암 같은 종양을 만드는데 역시 유전자의 일부를 식물 세포에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전달된 유전자가 생식 세포에 들어가면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자가 전달됩니다.
연구팀은 분석한 고구마 유전자의 기원을 확실히 검증하고 바이러스 감염 등에 의한 오류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291개의 샘플에서 검사를 진행했을 뿐 아니라 고구마의 근연종에서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고구마가 인간에 의해 작물화되기 전 이 유전자가 고구마에 유입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외래 유전자가 인간이 고구마를 작물화할 때 유리한 특성, 즉 쉽게 재배 가능하고 먹기 좋은 고구마가 생기는 형질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T-DNA라고 불리는 이식 DNA는 방향성 없이 무작위적으로 삽입 가능하지만 그중에서 후손을 많이 남기고 번성하는 것은 분명 생존에 유리한 어떤 특징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물화에 유리한 특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은 사실상 인간이 하는 유전자 조작 작물(GMO)과 거의 차이가 없는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아그로박테리움에 속하는 박테리아가 실제 유전자 삽입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죠. GMO 밀, 쌀, 목화 등 다양한 작물들에 유전자를 삽입할 때 이 박테리아가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천연 GMO들은 무작위로 유전자가 삽입된 후 자연 선택에 의해 살아남지만 인간은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유전자를 삽입한다는 점이죠.
과학자들은 유전자를 여기저기 옮기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이용해 여러 가지 유전자를 다른 생물체에 삽입하지만, 실상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유전자 전이가 과연 생물 진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제한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이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는 행동을 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에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하는 일은 그걸 인간 의도대로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DNA에도 다른 생물체에서 유래한 DNA들이 살죠.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