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교통의 발전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사람과 물류가 아주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일이지만, 이런 세상에서는 전염병이 급속히 번지기 쉽습니다.
현대 사회는 매우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 대부분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각 지역과 국가는 하루에도 엄청난 왕래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대적인 질병 예방 (백신은 물론 의료 시스템 전체) 및 방역 수단이 없다면 현대 사회는 전염병으로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서양 중세말에 발생한 흑사병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서유럽 인구의 1/4 – 1/3이 사라졌는데, 이는 서양 중세말에 교통과 상업이 발전하면서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먼 지역까지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서양 중세말 이외에도 전염병이 창궐해서 인구의 상당수가 사라졌다는 기록은 역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도시와 교통의 발전으로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인간이 살지 않는 지역이 없어지면서 각지에 고립되어 있던 바이러스나 전염성 질환이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는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습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초기 확산 방지에 실패하므로써 전 세계적인 질환이 된 케이스입니다. 다만 전파 경로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이를 차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고 아직 완치 방법은 없지만 바이러스 증식을 막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에볼라의 경우에는 일단 확산 방지에 반 정도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자연 숙주라고 생각되는 박쥐를 박멸할 순 없기 때문에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에볼라를 차단하기 어렵겠지만, 선진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로의 전파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비교적 가까운 인접국인 나이지리아로의 전파도 차단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메르스(MERS)의 경우에는 평소에 선진국 수준의 방역 체계를 갖췄다고 자부했던 우리 나라의 시스템에 이전에 알지 못했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메르스 자체 만큼이나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메르스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은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 감염으로 발생한 급성 호흡기 질환을 이야기 합니다. 최초 보고는 2012년에 있었는데, 그 시점부터 최근까지 메르스는 주로 중동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012년 4월부터 2015년 사이 발생한 1154 건의 메르스 가운데 97.2% 가 아라비아 반도 중심의 중동 지역이었고,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 기간 중 사우디에서는 총 1002명의 환자가 발생해 434명이 사망했습니다.
메르스나 사스는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에 속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르스의 경우에는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MERS-CoV)이나 EMC/2012 (HCoV-EMC/2012)라고 명명되었는데, 베타코로나바이러스 속(genus Betacoronavirus)에 속하는 positive-sense, single-stranded RNA 바이러스입니다.
베타코로나 바이러스속에는 A lineage, B lineage, C lineage 가 있는데 사스를 일으키는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B 에속하고 메르스는 C 에 속합니다. 메르스는 C lineage 최초로 인간에서 감염을 일으킨 사례인데, 아마도 이것이 이 바이러스가 인체에 감염되는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아주 위험도가 높은 이유일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 생물은 숙주가 죽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가능하면 숙주가 건강하고 오래살아야 기생하는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도 오래 잘 살겠죠. 따라서 인간에게 건너온지 오래되는 코로나 바이러스과 친척들은 사실 얌전합니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감기(common cold)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주요 목표는 조류 및 포유류의 상기도 세포입니다. 여기서 발열과 기침을 유발해 다른 숙주를 다시 감염시키는 것이 주된 생존 전략입니다. 물론 기침 같은 호흡기 증상은 비말 등을 통해서 다른 숙주에 감염시키기 위한 것이며 발열은 인간 같은 숙주의 면역 반응 때문에 생깁니다. 이점은 메르스나 사스나 동일하죠. 문제는 메르스나 사스에 속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 건너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새로 들어온 바이러스는 인간과 바이러스 모두 적응을 잘 못합니다. 인체는 면역이 없어서 쉽게 증식을 허용하고 바이러스는 어디까지 안전한지 모르기 때문에 거침없이 증식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체에 오래 전 들어온 친척들과는 달리 이들은 매우 위험한 바이러스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성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숙주를 금방 죽게 만드는 바이러스보다는 오래 살려서 널리 전파시키는 바이러스가 더 생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따라서 그보다는 신종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쪽이 당장에 급한 일이 됩니다.
물론 백신과 치료제 개발 역시 바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신종 바이러스 질환은 초기에 확산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마도 이번 사태에서 정부가 신뢰를 상실한 이유는 여기에 실패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
한국에서의 메르스 감염은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을 받게 만드는 게 사실입니다. 일단 기존에 알려졌던 것에 비해서 첫 번째 환자의 감염력이 매우 강력합니다. 이점은 아래 표를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메르스의 진원지인 사우디 이외에 다른 국가들도 환자의 유입을 100% 차단할 순 없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너무 밀접하게 붙어 있기 때문에 왕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각국 보건당국은 메르스 환자 유입에 대비해 메뉴얼을 만들고 철저한 방역을 시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도 2 명의 메르스 환자가 입국했지만, 초기 방역에 성공해서 2차, 3차 감염자는 없었습니다. 미국 뿐 아니라 아프리카, 유럽 등 다른 국가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는 계속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패턴이 깨지는 것이 이번 사태입니다.
왜 이렇게 한국에서 많은 환자가 생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의 보고로는 아직 국내에서 보고된 바이러스에서 특별한 변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바이러스 RNA에 대한 분석은 물론 매우 자세한 역학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발 방지는 물론 앞으로 정확한 대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과정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보고된지 3년 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이정도면 안전하겠지… ‘ 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모자란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보건 당국이 과거 연구에 기반한 매뉴얼에 짐착하기 보다는 더 철저한 대응을 했어야만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라도 확산 방지 및 감염자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좀 과다하다 싶을 정도라도 확산 방지를 위해서 엄격한 격리를 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결론
이 문제는 누군가 몇명 책임지고 끝내는 문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보통 이런 문제는 바이러스가 정말 유별난 변종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데 사실 완벽한 대응 매뉴얼이라는 것은 이런 돌발 상황까지 가정하고 만들여져야 하죠) 뭔가 시스템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이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와 비슷한 사태가 발생할 때 똑같은 상황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격리와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분명하게 규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라면 해외 기관 및 연구자들과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뭐가 문제였는지 알아야 미래를 위한 정확한 대비가 가능해집니다.
물론 이상한 괴담따위는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의료 전문가라고 해도 모든 것을 다 알지는 않습니다. 이번 사태는 전문가라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예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광우병 사태에서 보듯이 한국인의 괴담 사랑(?)은 유별난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 진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번에도 다를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없어보입니다.
다만 괴담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 정부와 보건 당국, 그리고 의료 전문가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물론 일단 지금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고 시간이 걸려도 정확한 원인을 분석해야 할 것 입니다. 그것이 다시 신뢰를 회복하는 첫 걸음입니다.
메르스 문제가 더 확산되지 않고 조기에 수습될 수 있기를, 그리고 메르스 환자들이 완쾌될 수 있도록 기원하겠습니다. 물론 환자를 치료하고 격리하는 의료진들 모두 조심하시고 철저한 감염예방을 통해 감염 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원문 : 고든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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