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논증의 기초로 여겨지는 삼단 논법은 두 개의 전제와 하나의 결론으로 이루어진다: “올림피아 경기의 승리자는 월계관을 받는다. 도리에우스는 올림피아 경기의 승리자이다. 따라서 도리에우스는 월계관을 받았다.” 이 세 문장은 삼단 논법의 대전제 – 소전제 – 결론의 고전적이고도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의 두 전제를 기반으로 해서 마지막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삼단 논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언어생활을 보면 저렇게 저렇게 정확한 말이나 문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논증이 근거와 결론이라는 두 개의 언어적 표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도리에우스는 올림피아 경기의 승리자이기 때문에 월계관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삼단논법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이들도 엄연히 삼단 논법에 들어간다. 다만 이들은 ‘실천적 삼단논법’ 혹은 ‘생략삼단논법’ 등으로 불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전제가 ‘확실한 사실’ ‘일반적 통념’ 등에 속할 경우 생략할 수 있[1]다. 이것은 두 가지 이점을 지니는데, 하나는 진부한 표현을 덜어냄으로써 표현을 매끄럽게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대전제를 생략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암시한다. 논변의 전개 과정에서 진짜 중요한 정보는 논변 그 자체보다 생략된 대전제에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매번 단어의 뜻을 시시콜콜 설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까닭에, 이 ‘생략된 대전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단어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어떠한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만큼 현실의 민낯을 볼 수 있는 것도 드물다.
2.
몇 달 전 글 두 편이 개발자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윗글들을 읽고 내게 의견을 물어 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두 글이 모두 옳은 내용이라고 본다. (가)는 “돈을 미끼 삼아 조인시킬 수 있는 개발자는 실력이 형편없는 개발자뿐이다.” 라는 내용이고 (나)는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스타트업 조인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가)에 대한 반박으로 받아들였고 실제로 (나)의 서두에도 그런 내용이 있지만, 나는 (나)를 쓰신 분이 (지극히 옳은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헛다리를 짚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스타트업’ 이라는 말은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로 혼용되고 있으며 (가)의 ‘스타트업’과 (나)의 ‘스타트업’은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스타트업’[2]이란 무엇인가? 이 업계의 대부 폴 그레이엄의 정의를 빌리자면, 스타트업이란 급속도로 성장하는 신생 소기업(A)을 가리킨다.[3]정도 차이는 있지만 보통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첨단 기술 스타트업’ 같은 말은 대체로 ‘역전 앞’ 같은 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4]막강한 자원을 보유한 대기업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소수 인원은 “올스타급 인재”들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그 자체로 “소수의 슈퍼스타급 인력이 시작한 기술 기반 기업”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에서는 약간 다르게 통용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따라 커왔기 때문에, 미국과는 달리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회사들은 별로 없다. 오히려 스타트업이라는 기업형태 자체가 IMF 이후 벤처열풍 때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웹서비스나 게임, 앱 등을 만드는 기업’이라는 의미(B)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이라는 기업 형태는 대항해시대 때부터 있었다” 같은 말[5]을 하면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반문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비록 동일한 기표를 공유하고 있지만, A와 B 사이에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의 거리만큼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Database학의 권위자가 창업한 Database System 기업은 스타트업인가?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A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이 일은 매우 훌륭할 뿐더러 모범적이기까지 한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다. Database System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은 사실상 없으므로 이 분야에 있어 효율적인 제품을 내놓는 기업은 급속한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B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이건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없다. 스타트업은 마땅히 웹서비스나 게임, 앱을 만들어야지 기업에 팔기 위한 제품을 만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을 막 졸업하거나 휴학한 젊은이들도 아닌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한다고 하니, 벤처기업으로서 투자를 못 받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6]
이제 아까의 글들로 돌아가 보자: (가)에서 ‘스타트업’의 의미는 A에 가깝다. “올스타급 인재들이 모여서 만든, 급속도의 성장이 예상되는 기업” 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능력 있는 개발자라면 최소한의 월급을 감수하고서라도 스톡옵션을 받아가며 조인하는 게 이익” 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서 사용중인 ‘스타트업’의 의미는 B다. “웹서비스나 게임을 만드는 평범한 신생 중소기업” 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스톡옵션을 받는 건 바보짓” 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이 두 글이 둘 다 맞다고 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두 글이 사용중인 ‘스타트업’ 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그러니 내용이 배치될 수도 없고, 자연히 둘 다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3.
이 글들이 화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사실을 암시한다: ‘스타트업’ 이라는 말은 원래 A를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B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에 반론을 주신 많은 분들이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스톡옵션을 받는 게 이익이라니, 말도 안 돼!” 라고 반응했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
이 말을 3단 논법 형태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스타트업이란 게임이나 웹서비스를 만드는 신생 중소기업으로, 급속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B)다. 급속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기업에서는 현금을 받는 게 이익이 된다. 따라서, 스톡옵션을 받는 건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B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이고 일반적인 통념이라, 전제를 생략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스타트업 직원의 근무 자세에 대한 논쟁 역시 이 논쟁의 변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사람은 밤잠 안 자고 회사일에 매진해야 하는가, 아니면 받은 돈 만큼만 일하면 되는가?” 앞서 인용한 폴 그레이엄이나 마리사 메이어[7]의 말을 들어 보면, 이건 볼 것도 없이 전자가 맞다. 하지만 실제 한국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개발자들한테 물어 보면, “내 개인 시간 반납해가며 일할 거면 차라리 돈 많이 주는 대기업을 가지.” 라는 반응이 나온다.
서로 180도 다른 반응이지만, 이 경우도 둘 중 어느 한쪽이 틀린 게 아니다. 폴 그레이엄이나 마리사 메이어가 전제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A다. 너무나도 확실한 사실이라 전제를 생략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개발자들이 경험하는 현실은 B다. 이 또한 너무나도 일반적인 통념이기 때문에 전제 같은 건 생략하고 저런 반응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다. 요컨대,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원인은 단 하나다: A를 가리키는 말이 B를 가리키는 말로 변질되어 통용되는 현실, 그리고 자기 유리할 때만 원래의 의미(A)를 슬그머니 꺼내드는 게 당연시되는 세태. 쉽게 말해서, 총체적 양두구육이다.
4.
사실, 이 케이스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 사실 ‘스타트업’ 보다 훨씬 더 많이 남용되는 단어가 있다: 인문학. 본래적인 의미로 인문학은 인간의 언어와 사고 체계를 연구하는 문학, 사학, 철학을 가리키는 말(A)이다. 하지만 중세의 대학 이래 이들은 일종의 기초 학문으로서 기능해 왔기 때문에, ‘기초교양'(liberal arts)’이라는 의미로 혼용되는 경우(B)가 많다.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여기서부터다.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뭔가 오래 되고 권위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풍기는 탓에 최근에는 인문학의 이름을 팔아먹으려는 장사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요새 서점에 나가 보면 엄밀한 논리적 체계를 갖춘 학문 체계와는 백만광년은 떨어져 있는 감성적인 에세이들이나 힐링류 서적, 자기계발서들까지도 인문학의 이름을 달고 나온다(C).
이런 류의 ‘인문학 약장수’들은 “범 삼성가 후계자들은 본질적인 학문을 공부해야 한다는 가르침 아래 사학과(A) 같은 곳에 진학한다” 같은 말을 그럴싸하게 지껄여대지만, 실상은 아무 근거도 없는 망상(C)에 인문학적 직관이니 창의성[8]이니 하는 근사한 포장지를 둘러서 팔아먹는다. 양두구육도 이만한 양두구육이 없지만, 이미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 C가 A를 압도하고 있는 탓에 사태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학문적 근거도 없이 감성적 헛소리만 늘어놓는 인문학(C) 반대한다” 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져 갈수록 희생자가 되는 건,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아가는 ‘진짜 인문학(A)자’ 들이다.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난장판은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를 둘러싼 개판과 서로 다른 사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동일한 현상이다: 총체적 양두구육이다, 이 말이다.
5.
이런 난장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소위 힙(hip)해 보이는 말9을 가능하면 적게 쓰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가장 힙해 보이는 인간형이 ‘인문학적 통찰력을 갖춘 스타트업 기업가(ex. 스티브 잡스)’ 라는 점에서 실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원문:gorekun.log
- 이 경우, 고대 그리스인에게 보편 타당한 사실인 “올림피아 경기의 승리자는 월계관을 받는다”가 생략됐다. ↩
- 혹은 ‘벤처 기업’ ↩
- “이것이 스타트업과 음식점/이발소의 차이점이다.” (원문: That’s the difference between a startup and a restaurant or a barber shop.) ↩
- “스타트업은 보통 기술에 연관되기 때문에, ‘첨단 기술 스타트업’ 같은 말은 의미 중복이다. 스타트업이란 어려운 기술적 문제에 도전하는 작은 회사를 가리킨다.” (원문: Startups usually involve technology, so much so that the phrase “high-tech startup” is almost redundant. A startup is a small company that takes on a hard technical problem.) ↩
- “스타트업이라는 말은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지만, 비슷한 기업 형태는 대항해시대의 모험 항해자 시절부터 있었다.” (원문: “The word “startup” dates from the 1960s, but what happens in one is very similar to the venture-backed trading voyages of the Middle Ages.”) ↩
- 이쯤이면 눈치챈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건 In-memory Database System의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차상균 교수님 얘기다. 차 교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창업한 회사는 ‘벤처가 아닌 탓에’ 한국에서 외면을 받다 2005년 독일계 대기업인 SAP에 팔려서 지금은 SAP Lab Korea라는 사명을 달고 있다. 이쯤 되면 “페이스북은 들어봤는데 SAP는 또 뭐하는 듣보잡이에요?” 라고 반문하는 맹구같은 인간이 있을 텐데, 1972년 설립된 SAP는 MS, IBM, Oracle과 함께 소프트웨어계 4대 천왕이다 – 전세계 전자거래의 72%가 SAP의 솔루션을 거친다. 사실 이들은 모두 기업 대상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MS를 빼면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
- google의 초기 직원이었으며 현재는 Yahoo의 CEO. ↩
- 이런 말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직관으로 이루어진 학문 체계는 없다. 다만 엄밀한 논증이 있을 뿐. ↩
- ‘빅데이터’ 라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