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돈으로 제일 유명한 달러를 알파벳으로 쓰면 dollar. 어디서도 s는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복수로는 dollars입니다.) 그런데 이 돈을 나타내는 기호는 $입니다. 한국 돈 원(won)을 ₩, 유럽에서 쓰는 유로(euro)를 €, 일본 엔(yen)을 ¥으로 쓰는 것하고는 확실히 다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606년에 희곡 ‘맥베스‘를 썼습니다. 이 연극에서 로스(Rosse) 역할을 맡은 배우는 1막 2장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연기해야 합니다.
That now, Sweno, the Norways’ king, craves composition: Nor would we deign him burial of his men. Till he disbursed at Saint Colme’s inch. Ten thousand dollars to our general use.
전쟁 배상금으로 1만 달러를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1606년에는 아직 ‘신대륙’에 영국 식민지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던 시점입니다. 그런데도 ‘달러’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요?
사실 ‘달러’라는 화폐 단위는 16세기 유럽인들에게 낯선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부터 돈(동전)은 금(金) 또는 은(銀)이 기준. 당연히 금과 은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부(富)도 갈렸습니다. 당시에는 현재 독일 작센 주(州)와 오스트리아 티롤 주, 그리고 보헤미아 지방에서 은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현재 보헤미아 지방에 있는 야히모프(Jáchymov)에 있는 계곡에서 은광(銀鑛)을 발견해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슐리크 백작이 은화이 찍어내게 됐습니다. 이 지역은 독일어로 요하임스탈(Joachimsthal)이라고 불렸는데요, 요하임은 성모 마리아 아버지 이름이고 탈(tal 또는 thal)은 ‘계곡’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요하임스탈은 ‘성(聖)요하임의 계곡’이라는 뜻이었죠. 여기서 나온 은화를 사람들은 ‘요하임스탈러’ 혹은 ‘탈러’라고 불렀습니다. (접미사 -er을 붙이는 건 현대 영어에서도 낯설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 유럽 제어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금과 은이 무게가 똑같을 때 서로 값어치가 다른 게 당연한 일. 금으로 동전을 만들면 보통 3.75g(요즘 이야기하는 금 ‘1돈’)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예전에는 미국 지폐 달러에도 이 돈을 은행으로 가져가면 금하고 바꿔준다는 문구가 써 있었습니다.) 탈러는 이보다 8배 무거운 30g 기준이었습니다. 이 돈은 나중에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는데 은 함량이 높고 표준 생산이 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나라별로 소리가 조금씩 달라지다가 영국에 가서는 ‘달러’가 된 겁니다.
그런데 당시에 전 세계에서 은을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이었습니다. 남미 식민지에서 은이 쏟아져 들어왔던 거죠. 은이 얼마나 많았던지 “스페인에서는 은 빼고는 모든 게 비싸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스페인 화계 단위는 레알(real)이었는데, 이 나라는 1497년 8레알에 해당하는 은화를 만들면서 ‘페소 데 오초(peso de ocho)‘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ocho는 스페인어로 8.) 이때까지만 페소(peso)는 무게 단위였습니다. 8레알 만큼 무게를 달아 은화를 만들었던 거죠.
스페인은 당시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이 돈을 찍어 ‘멕시코 페소’ 또는 (위에서 서술한 데 영향을 받아) ‘스패니쉬 달러‘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중국 청나라에서도 여기에 기준을 맞춰 동전을 만들어 1원(圓)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게 지금 중국 위안(元), 일본 엔(円), 한국 원의 뿌리가 됐습니다. 모두 동전 모양이 둥근데 뿌리를 두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도미니카공화국 멕시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 쿠바 필리핀 등에서 자기 나라 돈을 페소라고 부르는 것하고 동아시아 3개국에서 자기 돈을 비슷하게 부르는 건 뿌리가 같은 겁니다. 더 나아가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화폐 단위가 ‘리알’인 것 역시 사촌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홍콩에서 쓰고 있는 달러는 사촌은 못 되어도 8촌 정도라고는 할 수 있겠죠. (이 글은 음력 섣달 그뭄에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페소를 쓰는 나라에서도 화폐 단위를 나타내는 기호로 $를 쓴다는 겁니다. (아르헨티나에 출장 갔을 때 이 단위 때문에 달러로만 확전했던 저는 결국 사기를 당했습니다.) 그만큼 스페인 식민지에서 이런 표기가 널리 쓰였다는 방증이죠. 사실 태평양 건너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멕시코 달러’를 화폐 주조 기준으로 삼았으니 놀랄 일도 아닙니다.
당연히 남미 대륙 위에 있던 미국에서도 이 돈이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다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치르고 나서 1857년 화폐 주조법(coinage act)를 만들면서 외국 동전을 쓰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달러라는 표현은 그대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빼도 박도 못하게 미국 돈은 ‘달러’가 된 겁니다.
그래도 여전히 왜 달러를 $로 표시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가장 유력한 설은 ‘페소 데 오초’에 등장하는 8에 수직으로 선을 그어 달러 표시를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말고도 페소를 뜻하는 P와 복수(複數)를 뜻하는 s를 겹쳐 쓰다 보니 이런 모양새가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든 1770년대 문서에서 이미 $표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게 적잖은 시간 동안 이어져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 ¥ 같은 기호가 오히려 ‘짝퉁’인 셈입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 한가지. 영국 돈 파운드(pound)는 £로 씁니다. 이번에도 p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는 힌트는 ‘무게’ 때문입니다. 샤를마뉴 대제 통치 시대이던 7세기 영국에서는 은 1파운드(453.6g)에 해당하는 리브르(livre)라고 불렀습니다. 이 때문에 파운드에도 ‘L’을 쓰게 된 겁니다. 터키나 옛날 이탈리아 쓰던 ‘리라’ 역시 뿌리가 같습니다.
잘난 척 조금 더: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신 분이라면 금본위제, 은본위제 같은 표현을 들어보셨을 터. 이는 지폐를 은행에 가져가면 실제로 그 무게만큼 금 또는 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1953~1961년 재임) 때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이때는 35달러를 가져가면 은행에서 금 1온스(28.3g)하고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램을 g로 쓰는 것처럼 온스는 oz라고 씁니다. ‘오즈의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라는 소설 제목은 여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원문 : Kini’n Cre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