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라는 게 좀 묘해요. 야구하고는 또 달라. 공 하나 골대 두 개만 있으면 가능한 원시적(?) 경기이면서 직접 몸과 몸이 부딪치며 하는 경기고 국가대표팀은 곧잘 그 나라의 군대나 그 나라자체와 동일시돼.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슬로건은 그를 잘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한 축구팀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그 자체다” ‘태극전사’를 부르짖는 우리나 ‘전차군단’의 독일이나 ‘무적함대’ 스페인이나 ‘로마군단’ 이탈리아나 다 별명들이 좀 전투적(?)이기도 하고.
이 축구가 연유가 돼서 전쟁까지 벌였다는 얘기는 들어봤을 거야. 월드컵 때만 되면 나오는 이야기니까. 바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벌인 축구 전쟁이지. 하지만 오로지 축구 때문에 벌어진 전쟁은 아니야. 지구상에서 이웃나라끼리 친한 경우는 드물다. ‘가깝고도 먼 나라’는 한국과 일본만이 아니야. 중앙아메리카의 고만고만한 독립국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도 마찬가지였어. 둘 다 멕시코 제국에 속한 채로 스페인에서 독립했지만 갈라져 나온 역사도 같고 인종도 크게 다르지 않고 스페인 말을 쓰지만 두 나라는 그닥 사이가 좋지 않았어.
1968년 축구 전쟁의 전초, 엘살바도르 대 온두라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온두라스가 땅이 훨씬 넓어. 인구는 비슷한데 말이지. 과거 조선 사람들이 폭정을 피해, 살기 위해 간도로 건너갔듯 스페인 이래 14가문이 온 나라를 쥐고 흔들던 엘살바도르 사람들도 새로운 땅을 찾아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갔지. 이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중남미의 유태인이라고 불리울만큼 상술도 수완도 좋았다고 해. 그러니 온두라스 사람들이 엘살바도르 사람들을 어떻게 봤을지는 뻔하지 않겠니. ‘어디서 굴러먹다 온 줄 모르는 약삭빠른 족속’ 정도였겠지. 1968년 온두라스 정부는 토지개혁을 선포하고 양국 사이의 불분명했던 국경선을 확정해서 그어 버렸어. “엘살바도르 사람들 나가! 네 나라로 돌아가!“
하루 아침에 재산 잃고 쫓겨나야 했던 엘살바도르 사람들의 포한이 없을 리가 없지. 온두라스 사람들 역시 “어딜 이 거지같은 놈들이…..”하면서 어깨를 으쓱했을 것이고. 상호 감정이 쌓이는 차에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중미예선이 벌어진 거야.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한 차례씩 홈 앤 어웨이 경기를 해야 했지. 1차전이 1969년 6월 7일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열렸어. 그런데 경기 전날 엘살바도르 숙소 앞에서는 때아닌 ‘축제’가 열렸어. 축제일도 아니었고 기념일도 아니었지만 온두라스 사람들은 떼로 몰려들어 폭죽을 터뜨리고 노래를 부르고 밤샘을 했지.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한숨도 자지 못했어.
다음날 경기에서 온두라스는 퀭한 눈의 엘살바도르를 상대로 1대0으로 이긴다. 엘살바도르 사람들은 이를 갈았지. 온두라스 놈들 산살바도르(엘살바도르 수도)에서 보자. 그런데 여기에 한 열정적인 소녀가 불을 지른다. 18살 소녀가 패배에 충격을 받고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버린 거야. 가뜩이나 분노하고 있던 전 엘살바도르가 슬픔에 잠기고 그 장례식에는 대통령 이하 전 각료가 참석한다. 이걸 지켜 본 엘살바도르 선수들의 심경은 딱 이거였을 꺼야. “지면 죽는다.”
온두라스 팀이 엘살바도르에 왔을 때 그들은 응분의 댓가를 치른다. 밤새 소란은 물론이고 호텔 창문을 깨고 죽은 쥐를 던지는가 하면 호텔 요리사가 설사약을 탔다는 소문이 분분할만큼 호된 보복이었지. 그 분위기에서 축구가 되겠냐. 1968년 6월 22일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관중에서는 양국민들끼리 몇 명이 죽어가는 난투극이 벌어졌어. 적지 한 복판의 온두라스 방송 중계팀은 공포 때문인지 증오 때문인지 모를 소리를 계속 내뱉고 있었다. “엘살바도르인들에게 죽음을!, 엘살바도르에 신의 저주를!” 이건 중계가 아니라 선동이었고 바짝 열받은 온두라스에서도 엘살바도르 사람 사냥이 벌어져 수십 명이 죽어. 이미 축구가 축구가 아니었지.
이때는 골득실을 따지는 룰이 없었고 1승 1패니 결승전을 치러야 했지. FIFA는 중립국 멕시코를 선택했고 멕시코 정부는 골머리를 앓다가 관중보다 더 많은 경찰을 투입해서 양국의 충돌을 막으려 했지. 덕분에 관중석 충돌은 막았지만 경기 자체가 전쟁이었어. 육박전이 벌어지고 피가 튀고 선수들은 주먹을 휘둘렀다. 엘살바도르가 3대2로 이겼지만 두 나라의 감정은 악화될 대로 악화돼 있었어. 양국은 교역을 단절했고 국교도 끊어 버렸다. 그 며칠 뒤 엘살바도르의 군대가 온두라스를 공격하면서 ‘축구 전쟁’이 시작돼.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 때 쓰던 구닥다리 비행기들이 폴락폴락거리며 날아올라 상대방 영토를 공습했고 탱크를 앞세운 보병들도 격전을 치렀다. 영토는 넓었지만 초반 공격을 당한 온두라스가 밀리는 형국이었어. 순식간에 수천 명이 사망했고 전투원 뿐 아니라 국경 지대에 살던 양국 국민들 역시 수없이 목숨을 잃었지. 전쟁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지만 양국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어. 엘살바도르는 전쟁에 이겼지만 주요 시장이던 온두라스가 교역을 끊어 버림으로써 국가 경제가 나락에 빠지고 말아. 군부독재는 기승을 부렸고 그를 뒷받침하는 귀족 가문들이 농민들을 쥐어 짜는 가운데 좌파 반란군들이 일으킨 내전은 80년대 내내 엘살바도르를 지옥으로 만들었지.
온두라스는 전쟁에서 지다시피 했고 국토 일부가 초토화된 가운데 역시 잔인한 군부독재에 시달렸지. 오늘날 온두라스는 전 세계에서 살인율이 가장 높은 나라야 10만 명당 90명 정도가 살인자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고 하니까. 치안 불안하기로 이름난 남아공이 30명 정도고 우리는 2.9명인데 말이지. 온두라스에는 살인율 세계 최고의 도시도 있는데 10만 명당 130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 피폐함을 짐작할 수 있지.
축구 전쟁이라고 말은 하지만 축구 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아니야. 축구 때문에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온두라스로 넘어간 것도 아니고 축구 때문에 온두라스인들이 엘살바도르 인들을 내쫓은 것도 아니고 축구 때문에 두 나라 국민들이 이를 갈게 된 것도 아니고 축구 때문에 두 나라가 지금도 저 모양 저 꼴인 건 아니야. 우루과이 소설가 갈레아노가 묘사한 시에서는 그 숨겨진 ‘이유’가 잘 드러나 있지.
“작은 농업국가인 온두라스는 소수의 대지주에 의해 지배된다. 작은 농업국가인 엘살바도르는 소수의 대지주에 의해 지배된다. / 온두라스는 쿠데타로 태어난 독재정권이 통치한다. 엘살바도르는 쿠데타로 태어난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한다. / 온두라스의 독재자는 미국으로부터 무기와 고문관을 공급받는다. 엘살바도르의 독재자는 미국으로부터 무기와 고문관을 공급받는다.”
결국 쌍둥이 형제들의 발목잡기 싸움이었을 뿐이야. 미국이라는 아버지와 특권계층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나는 동기들의 골육상쟁
사람들이 흔히 비웃는다. ‘축구 때문에 전쟁을 해? 멍청한…..’ 하지만 만약 냉전 시기 남한과 북한 사이에 홈 앤 어웨이 경기가 벌어졌고 우리 응원단이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 원정갔다가 북한 사람들한테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처럼 정열적이지도 않고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가만히 있었을까? 섣부른 장담이긴 하지만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벌인 전쟁의 열 배는 넘는 사상자를 낸 충돌이 벌어졌을 거야. 아니 아니 섣부르다? 취소…. 분명히 그랫을 거야.
원문: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