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는 남자는 바보가 되니까 유익한 말을 한답시고 무익한 말만 골라서 하지.”
마음을 콕 쑤시는 이 말은 모리미 도미히코(森見登美彦)의 장편소설 『연애편지의 기술』에 나오는 글이다. 맞는 말이다. 사랑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바보가 된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의미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도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인생에서 두뇌 속 이성회로와 감성회로 사이의 균형이 가장 많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사랑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랑에 빠지면 이성회로는 작동을 멈추고 반대로 감성회로는 폭주한다. 엘리트든 건달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남자든 여자든, 누구도 인생을 살면서 이 상황을 피해 가지 못한다.
그래서 연애편지는 잘 쓴다는 것이 무척 어렵다. 내 머릿속 이성회로가 멈춰 있기 때문이다. 연애편지를 잘 쓰기 위해서는 전원이 나가 있는 이성회로를 최대한 가동시켜야 한다. 가끔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애편지를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연인과의 키스도 잘하는 사람에게 대신 시키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까지 남이 써 주는 삶을 사는 것은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연애편지는 꼭 자신이 써야 한다.
연애편지를 쓸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연애편지만큼 읽는 사람의 심리를 고려해서 써야 하는 글도 없다. 연애편지의 목적이 바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가 쓴 『전략적 편지쓰기』에 연애편지 쓰는 법을 다룬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편지 예문이 나온다.
“거리에 비가 오듯 내 마음에도 비가 온다.”
베를렌의 시가 떠오르는 안개비 내리는 밤……. 그 빗소리를 들으며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우스트에는 ‘영원한 여성’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예전부터 내 마음을 아프게 울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는 항상 이 단어를 떠올립니다.
엔도는 『전략적 편지쓰기』에서 이 연애편지에 대해 악평을 쏟아 냈다.
“가볍게 판단하면 안 되지만 나는 성격상 이런 편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좋아하지 않느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읽기에 너무 거북스럽기 때문이다. 베를렌이니 파우스트니 영원한 여성이니,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다니 등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다.”
그러면서 엔도 슈사쿠는 엽서에 겨우 한 줄로 ‘널 좋아해’라고 쓴 연애편지를 극찬한다.
“이 엽서를 읽은 여성이 백만 마디로 사랑이나 애정, 베를렌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남자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딱 한 줄 ‘널 좋아해’만 쓰여 있기 때문에 허다하게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고, 한숨 내쉬듯 흘러나온 남자의 애절한 마음을 더욱 진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 한 줄을 위해 다른 모든 줄을 ‘억제’하고 엽서를 쓴 남자의 진심을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엔도 슈사쿠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연애편지를 받는 사람은 엔도 슈사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슈사쿠는 자신의 취향으로 연애편지를 품평하고 있다. 엔도 슈사쿠의 취향보다 연애편지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닌가.
엔도 슈사쿠는 ‘널 좋아해’라는 압축적인 한 줄 엽서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어떤 여자가 비호감인 남자에게 ‘널 좋아해’라고 적힌 엽서를 받았다면 아마 짜증이 솟구치고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고 투덜댈 것이다. 엔도 슈사쿠는 베를렌과 파우스트를 거론하는 연애편지가 낯간지럽고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베를렌과 파우스트를 언급한 편지를 받은 여성은 감동의 소름이 돋는다.
지금부터 나는 이성회로를 가동할 것이다. 이성회로를 통해 개인의 취향을 넘어 객관적인 입장에서 연애편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얘기하겠다. 우선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는 무조건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없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써야 한다. 이것은 두뇌의 이성회로를 잘 가동하면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연애편지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이성에게 보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호감이 없는 이성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다. 각각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상대방이 호감이 있을 경우
호감이 있을 경우에는 편지 내용에서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괜찮다. 엽서에 달랑 한 줄로 ‘널 좋아해’라고 보내든, 베를렌이나 파우스트를 언급하며 장문의 화려한 편지를 보내든 상대방은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애당초 당신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애정을 과시해도 좋고 약간 조심스럽게 접근해도 괜찮다. 상대방은 당신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는 까닭이다.
상대방이 호감이 없을 경우
당신이 전혀 호감이 없는 이성으로부터 ‘널 좋아해’라는 한 줄짜리 엽서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라. 아마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기는커녕 짜증지수가 확 늘어날 것이다. 한 줄짜리 엽서? 지금 장난해! 그러면 베를렌이나 파우스트를 인용한 편지를 받는다면 괜찮을까? 엔도 슈사쿠의 표현처럼 낯간지러운 문장 때문에 등줄기에 느끼한 소름이 돋을 가능성이 크다.
호감이 없는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치는 것은 곤란하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 정말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십중팔구는 그 편지를 받은 이후로 편지를 보낸 사람을 슬슬 피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호감이 없을 때는 간접적이고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편지를 써야 한다. 이 말을 하고 나니 어디선가 폭풍 같은 비난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
“그걸 누가 몰라?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게 문제지!”
맞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아직 인류의 기술수준이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결국 무조건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없을 경우를 염두에 두고 연애편지를 써야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을 경우에는 편지를 어떻게 쓰든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을 경우에는 크게 고려할 것이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 나에게 호감이 없을 경우에는 내가 편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반응이 크게 달라진다. 조금만 이성회로를 동원해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그럼에도 사랑으로 인해 이성회로가 마비된 우리는 폭주하는 감성회로를 사용해 부담스러운 연애편지를 휘갈긴다.
엔도 슈사쿠는 『전략적 편지쓰기』에서 다음의 연애편지를 예로 들고 있다.
어제는 다섯 명이 드라이브를 갔다 왔어. 남자는 동건이와 상우 그리고 나. 여자는 왜 지난번에 한 번 봤던 태희와 나영이였지. 나영이에게 네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섭섭했다. 그래도 드라이브는 정말 재미있었어. 오랜만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뛰어다녔고 가져간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어.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신나게 놀기도 했지. 다음에 다시 한 번 가자고 모두 약속했어. 하지만 나는, 다음에도 네가 가지 않는다면 나도 가지 않을 생각이야.
이 편지에 대한 엔도 슈사쿠의 평가를 살펴보자. 그는 이렇게 칭찬하고 있다.
“이 엽서에는 앞에서 말한, 낯간지럽고 역겹고 거북스러운 느낌이 없다. 민망한 표현이나 아양도 없어서 제삼자인 우리가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지극히 젊은이다운 시원한 필치로 솔직하게 여행 보고를 한 후, 마지막 한 줄에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실었다.”
역시 엔도 슈사쿠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 ‘제삼자인 우리가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평가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글이라 좋다는 슈사쿠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이 편지는 잘 쓴 연애편지다. 이유는 슈사쿠와는 다르다.
이 편지는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모두 통용될 수 있게 썼다. 상대방이 호감이 있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만약 호감이 없더라도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이해할 만한 내용이다. 오히려 센스 있게 쓴 편지 덕분에 없던 호감이 생길지도 모를 정도다.
연애편지의 목적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데 있다. 마음을 훔치려면 상대방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내가 기회가 있을 때마나 글이나 강의로 누차 강조했듯 감동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따라서 연애편지를 쓸 때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앞서 예로 든 세 가지 연애편지를 보면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 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편지1
“거리에 비가 오듯 내 마음에도 비가 온다.”
베를렌의 시가 떠오르는 안개비 내리는 밤……. 그 빗소리를 들으며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파우스트에는 ‘영원한 여성’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예전부터 내 마음을 아프게 울리고 있습니다. 당신을 생각할 때면 나는 항상 이 단어를 떠올립니다.
편지2
널 좋아해
편지3
어제는 다섯 명이 드라이브를 갔다 왔어. 남자는 동건이와 상우 그리고 나. 여자는 왜 지난번에 한 번 봤던 태희와 나영이였지. 나영이에게 네가 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섭섭했다. 그래도 드라이브는 정말 재미있었어. 오랜만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뛰어다녔고 가져간 음식을 함께 나눠 먹었어.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신나게 놀기도 했지. 다음에 다시 한 번 가자고 모두 약속했어. 하지만 나는, 다음에도 네가 가지 않는다면 나도 가지 않을 생각이야.
사실 ‘편지1’과 ‘편지2’에는 ‘디테일’이라는 측면에서 큰 문제점이 있다. ‘편지1’에 나오는 파우스트의 영원한 여성이란 말은 어딘지 모르게 멋있어 보이지만, 편지를 읽는 입장에서는 파우스트의 영원한 여성이 꼭 자신일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만약 이 편지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낼지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다. 그것은 ‘편지2’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널 좋아해’라는 문구에서 ‘널’이 꼭 금천구 독산동에 사는 이유리일 필연적 이유가 없다. 이 엽서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 보내도 무리가 없는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이다.
반면 ‘편지3’은 ‘디테일’이 살아있다. 만약 ‘편지3’이 잘못 배달되어도 편지를 읽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자신이 동건이, 상우, 태희, 나영이를 모르고 또한 드라이브 여행이 금시초문이라면 당장 편지가 잘못 배달되었다고 우체국에 전화를 걸 것이다. ‘편지3’은 읽는 이에게 ‘이 편지는 나만을 위한 것이구나’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디테일’이 있기 때문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걸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라.
샐리: 미안하지만 해리, 송년의 밤이고 외롭다는 거 잘 알아. 하지만 갑자기 나타나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냐. 이런 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샐리: 몰라. 하지만 이런 식으론 안 돼.
해리: 그럼 이런 건 어때? 더운 날씨에도 감기에 걸리고,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 데 한 시간도 더 걸리는 널 사랑해. 날 바보 취급하며 쳐다볼 때 콧등에 작은 주름이 생기는 네 모습과 너와 헤어져서 돌아올 때 내 옷에 배인 네 향수 냄새를 사랑해.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너이기에 널 사랑해. 지금이 송년이고 내가 외로워서 이런 말 하는 게 아냐. 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 보내고 싶다면, 가능한 빨리 시작하란 말을 해주고 싶어.
샐리: 이것 봐, 넌 항상 이런 식이야 해리! 도저히 널 미워할 수 없게끔 말하잖아. 그래서 난 네가 미워, 해리. 네가 밉다고.
대학시절 궁상맞게 혼자 비디오방에서 보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해리가 샐리에게 건네는 대사는 그것이 도저히 샐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디테일’이 살아있다. 덕분에 샐리의 마음은 완전히 연두부가 되고 만다.
사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하우를 알고 있어도 연애편지는 잘 써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차분하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성회로가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성회로가 잘 돌아가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사랑’에 빠진 게 아니다. 유명한 작가도 사랑에 빠지면 유치한 연애편지를 쓰는 경우가 많다.
원문: 임승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