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죽어서 인간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부 스포츠에 사용되는 운동용품의 부품으로 활용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현악기의 현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고양이는 죽어서 무엇을 남기나
운동용품으로는 테니스 라켓의 줄에 사용된다. 테니스의 경우, 중세 이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라켓의 줄은 고양이 창자가 주로 사용되었다. 라켓의 줄을 의미하는 단어 자체가 내장을 의미하는 ‘거트(Gut)’다. 단 최근에는 나일론, 폴리아마이드(polyamide) 같은 중합체를 주로 사용한다. 물론 전통방식에 따라 수가공으로 제작되는 초고가의 라켓의 경우에는 아직도 고양이 창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이걸 만들려고 일부러 고양이를 죽이진 않는다. 물론 중세시대에는 그런 건 없었다.
또 하나, 일본의 전통 현악기인 샤미센이다. 샤미센의 현은 전통방식대로 제작할 경우 고양이 창자를 사용한다. 현대에는 나일론이 대세다. 현악기의 스트링을 동물의 창자로 제작하는 건 흔한 일인데 바이올린과 첼로, 콘트라베이스, 비올라, 비올 등의 현악기는 금속으로 된 스트링과 양의 창자를 사용한 스트링을 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성품들은 물론 대부분 나일론을 사용하거나 폴리머 계열을 사용하지만. 클래식 기타도 마찬가지.
류큐 왕국(그러니까 오키나와)의 전통 악기 중에 하나로 샤미센이랑 거의 흡사한 샨센도 고양이 창자를 사용한 현을 사용했다. 물론 아주 전통적인 방식의 장인이 만든 것을 제외하면 샨센도 최근 생산되는 제품들은 모두 나일론 현을 사용한다.
캣거트의 유래
고양이 창자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녹는 실’을 떠올리신 분들이 꽤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의학 분야에서 녹는 실이라고 하는 장선(腸線), 영어로 ‘캣거트(catgut)’라고 하는 건 고양이 창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외과용 녹는 실이 탄생한 계기는 19세기에 개발된 소독법인 방부법(防腐法, Antisepsis)과 관련이 있다.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의 외과 수술이라는 건 지독히 비위생적이었다. 서양의 외과 의사들은 평상복 위에 ‘수술용 코트’를 입고 외과 수술을 했는데 이 수술용 코트의 용도는 의사들이 입고 있는 의복에 환자의 피나 고름, 체액 등이 튀는 걸 막아주는 용도 이외에 아무런 용도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옷이 더러워지는 걸 막아주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이 수술용 코트에는 주머니가 여럿 달려 있었고 수술용 칼이나 가위, 봉합을 위한 바늘과 실타래 같은 걸 수납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외과 의사들은 그 더러운 코트 주머니 속에 있는 칼로 상처를 째고 혈관을 절단하고 그 안에 있는 실로 봉합을 했다. 세균에 의한 감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까 뭐 운 좋으면 사는 거고 운 나쁘면 더 잘라버리는 거고 그러다 안 되면 죽는 거고.
당시에는 외과 수술 후 봉합을 할 때 실 꼬리를 아주 길게 밖으로 내놓는 것이 정석이었다. 수술에 사용하는 실 자체가 비싸서 이걸 회수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일단 봉합을 한 다음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서 실에 의해 염증이 생기기 전에 실을 빨리 뽑아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처참 황당한 수술 광경을 바꾼 것이 바로 영국의 외과 의사이자 현대 외과 수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세프 리스터 남작(Sir Joseph Lister, 1st Baron of Lister)이다.
현대적인 외과 수술의 아버지로 불릴 뿐만 아니라 외과 수술에 있어 획기적인 소독법을 창시한 인물이기도 한 리스터 경은 석탄산(Carbolic Acid, 혹은 Phenol)을 사용하여 수술 부위 및 의사들의 손, 그리고 수술 도구를 소독하는 방법을 개발한다. 이 방부법 덕분에 수술실의 환경은 상당히 깨끗해졌지만 한가지 문제에 봉착을 하게 됐는데, 여전히 봉합사로 인한 염증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던 거다.
리스터 경은 현악기나 라켓 등에 사용되는 동물의 내장으로 제작되는 장선을 이용하여 액체 속에서 서서히 녹는 실을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장선은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다만 이놈의 장선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녹아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소독 효과를 지님으로써 염증 발생 확률을 줄이고 봉합도 제대로 되기 위해선 실이 ‘2-3주 정도의 기간 동안 체내에서 천천히’ 녹아야 하는데 기존의 장선을 가지고선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
낙담하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환자 위문 차 방문한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새로 달아놓은 바이올린 줄이 아직 길이 덜 들어서 연주에 애를 먹었다’며 ‘장선을 단단하게 길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방법에 착안하게 된다. 바로 가죽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을 응용하기로 한 것.
당시 유럽에선 가죽을 빠르게 단단하게 굳히기 위한 방법으로 크롬산(Chromic Acid)용액에 가죽을 담그는 공정이 널리 이용되었다. 장선을 이 크롬산과 기존의 석탄산을 섞은 용액에 넣어봤더니 이게 체내에서 천천히 녹더라는 것. 현대적인 외과봉합술의 탄생이자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는 녹는 실, 캣거트가 탄생한 계기는 바로 이렇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캣거트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걸까. 그 이유로는
- 바이올린을 뜻하는 19세기 영국의 은어 ‘키트(Kit)’와 장선을 의미하는 ‘거트(Gut, 내장을 의미하기도 함)’가 합쳐진 단어가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했다는 설과
- 장선을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어 그럼 테니스 라켓에 사용된 실이랑 같은 거니 고양이 창자겠네?’라고 오해해 캣거트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
이렇게 두 가지 설이 있다. 실제 수술용 캣거트의 경우 양이나 돼지의 창자가 주원료로 쓰인다. 고양이 창자가 사용된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다.
원문: 김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