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업계의 작은 현실
지난 1월 20일, 현대로지스틱스가 택배 단가를 최소 500원은 인상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 집에 들르는 택배기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기사에 쓰인 택배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이미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자 회사)은 시가 아니라 군에 속해 있다. 한마디로 시골이다. 집 바로 앞에 도로가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질뿐더러, 지대가 살짝 높고 교통량이 적어 눈이 오면 제설 작업도 빨리 되지 않아 더욱 다니기가 힘들어진다. 해서 택배를 되도록이면 모아서 보내곤 한다. 사실 택배를 이용할 일을 최소로 하고 싶지만 일을 하다 보니 자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고객 입장에선 배달할 때 배송품도 받아가면 되지 않나 하고 쉽게 생각이 되지만, 짐이 섞이기 때문에 배달과 배송을 동시에 하기 어려운가 보다. 그래서 보통 오전에 배달하러 한 번 오고, 우리 쪽에서 보내는 물품을 수령하러 주로 저녁 7시 이후에 또 한 번 오신다. (명절이나 대목엔 12시가 넘어 오시기도 한다.) 그게 고맙고, 고생하시는 게 안쓰러워 오실 때 뭔가를 챙겨주려고 하는 편이다. 채소를 수확해서 한 번씩 드리기도 하고, 김치를 줄 때도 있고, 고구마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 드리기도 하고, 식사 시간이 겹칠 땐 저녁을 아예 같이 할 때도 있다. 워낙 바빠 식사를 거의 거른다는 걸 들어 알고 있기 때문.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그러시는 거니 내가 칭찬받을 일은 전혀 아니다.)
여담으로… 드시고 가라 하면 배달이 밀려 바쁘다며 항상 거절하셔서, 난 오가면서 먹을 수 있게 간단하게 도시락처럼 포장해 드릴 것을 권했었지만, 어머닌 굳이 제대로 먹고 가라고 붙잡으신다. 그러면 또 드시면서 굉장히 고마워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제대로 드시고 가시라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지난 1월 15일도 그런 날이었다. 바쁘다고 가려는 기사님을 기어이 붙잡아 저녁을 대접했다. 바쁜 마음에 미역국에 밥을 한가득 말아 드시며 기사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맺혀있는 게 많은 기사님의 말을 옮겨보자면…
1) 일이 힘들다.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데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1년은 해야 일이 손에 익는데 힘들어서 금방 관둔다. 최근에는 4년을 일한 베테랑이 관뒀다. 올겨울 잦은 눈과 추운 날씨에 길이 얼어 일이 힘들어지자, 아내가 월차를 내고 3일간 일을 도왔는데 4년 동안 이러고 있었냐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하면서 집에서 놀아도 좋으니 이것만은 하지 마라며 관두게 했단다.
2) 힘든 만큼의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전 12시에 퇴근을 한단다. 아침엔 짐을 정리하고 배달하고, 저녁엔 배송품을 수거를 해야 하기 때문. 배송차가 떠나는 시간 전에 꼭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일할 수 밖에 없단다. 그걸 놓치면 새벽에 허브 터미널(아마 이천이었던 듯)까지 가서 짐을 내려놓고 와야 하는데, 그러면 밤을 새우게 된다고. (하루 정도 짐이 밀리면 어떻냐고 생각할만하지만, 기사님들은 결벽적으로 그걸 싫어한단다. 신선식품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쌓이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 처음부터 베테랑들이 그렇게 군기를 잡는다고.)
일도 힘들고 조건도 힘든데 벌이가 어렵다. 기사들은 택배업체에 속해 있는 게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월급제가 아니라 배송 건당 (요즘은) 700원 정도를 받는단다. 당연 4대 보험도 못 들고, 사고가 나면 본인이 다 책임져야 한다.
그런 조건에 밥 한 끼 제대로 못 챙겨 먹으며 07 to 24로 한 달 내내 일하고도, 기름값 제외하면 300만 원을 벌었단다. 기타 경상비를 제외하면 더 적으리라. 그런데 본인은 구역 내 2등을 해서 그만큼 번 것이지 더 못 한 친구들은 훨씬 못 벌었을 거란다.
벌이가 어려운 데는 여러 요인 때문에 단가가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최근 어떤 업체는 1800원까지 단가를 떨어뜨렸단다.
ㄱ) 택배업체 간의 과당경쟁도 있지만 기사로서 택배업체를 욕하지 못하는 게, 택배업체도 사정이 힘든 거 뻔히 알기 때문이란다. 이는 ㄴ) 배송을 대량으로 맡기는 쪽의 힘이 너무 강해졌고 ㄷ) 20년의 역사와 가격 대비 높은 만족도에도 불구하고 택배 관련법이 전혀 없는 게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라 하신다.
기사님 왈, 최근 최저택배비를 정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 적이 있는데 정부 측에선 소비가물가상승을 핑계로 거절했단다. (관련 자료를 못 찾아 정확한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견을 여러 사람이 내긴 했다.)
바쁜 와중에도 한풀이하듯 쏟아내는 기사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배도 엄청 고프셨는지 밥 두 그릇을 미역국에 말아 폭풍흡입하셨다) 아무 조치 않고 이대로 가다간 택배업 망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차라리 파업이라도 하시지’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마침 이야기를 해주신다.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어 노조도 없고…화물연대 파업할 때 택배는 안 했잖아요? 내가 노총에 있는 친구한테 우리도 참여하면 효과가 직빵일거라고 이야기를 하니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대화를 하기 위해 파업을 하는 건데 택배가 파업을 하면 테이블을 엎는 행위나 다름없다.”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우리 사회와 관용
2011년, 프랑스 출장길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열린 폭주족 집회였다. ‘제대로’ 무장을 한 경찰들의 ‘호위’ 아래 너무나도 평화롭게 집회를 하길래, 처음엔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한 프랑스 특유의 시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정말로 폭주족 집회란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 없었다. 이유인즉슨, 이렇게 건전하고 안전한 폭주족 문화가 탄생하려면 시민의 공감 혹은 묵인 그리고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폭주족 연령대와 그에 따른 성격이 다르겠지만 그 점은 넘어가자…) (2/1: 폭주족이란 용어와 성격에 관해 Sebastian Kim 님이 댓글로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회적 관용도는 어느 정도일까?
같은 시기, 한국에선 불쌍한 대학생 아해들이 미친 등록금 낮춰달라 했다가 끌려가고 있었고, 더 불쌍한 유성기업 아저씨들은 밤에 잠 좀 자자고 했다가 “연봉 7천만 원이나 받은 놈들이!” 라는 엉뚱한 오명을 쓰고 있었더랬다.
요즘은?
이마트의 지저분한 행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태일 평전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직원을 감시, 탄압하고, 노동부와 유착해 산재 처리를 유리하게 끌고 갔다는 이야기말이다. 이때다 싶었는지 오마이뉴스는 <헌법 위의 이마트>라는 특집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듣고 가까운 이마트를 이용하지 않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까운 거리에 다른 마트가 있는 경우는 논외로 하자… 이 경우 이마트를 이용 않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니) 이 사태가 이마트 매출에 끼치는 영향은 전무하다는데 500원 건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과연 소비자로서의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고서라도 도서정가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1월 26일 21시 47분 현재, 알라딘에서 도서정가제 찬반을 묻는 페이지에 반대 댓글은 119페이지, 찬성은 35페이지가 달렸다.
(물론 도서정가제에 대한 의견이 무엇이 옳은지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도서정가제의 목적이 동네 책방을 살리는 것이라면 난 이 글에 동의하며, 회의적이다. 하지만 앞선 글의 댓글에서의 논의처럼 출판업 전체의 공멸을 막고 다양한 출판사를 양성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또 도서정가제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면 난 적극 찬성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가격과 유통 구조가 비정상적이고 언젠가는 공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꾸준한 설득 과정이 있어야겠지. 그런 과정 없이 지금과 같은 프레임에서 허덕인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단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 기사들이 파업을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수가 그들의 행동을 지지할까? 과연 대다수의 사람들이 택배가 늦어지거나 오지 않는 상황을 감내할 수 있을까? 파업의 결과 택배비가 오르는 걸 용인하려 할까?
한사 님이 “국개”는 바로 당신들이다란 글에서 이야기했듯, 사회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돈, 사람, 조직’이 필요하다. 이 중 개인의 수준에서 참여하기 쉬운 것은 돈(편의)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우리 사회는 (자신과 무관한또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의) 공멸을 막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편의와 경제적 이익을 쉽게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의 무관용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일을 하기 전 농업에는 문외한이던 내가 관련 공부를 하며 가장 놀라고 염려스러웠던 점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달리 농부가 자신이 수확한 종자를 다시 심는 것이 불법이 되었다는 것과 이로 말미암아 식물의 종과 종자가 급격하게 단순화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역사적으로 다양성이 줄어들고 생태계가 약해지는 것의 폐해가 가장 도드라진 사건인 19세의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이상으로,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생물종 다양성의 감소와 이를 이용한 대형 종자회사의 독점이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관해선 예전 글 종자독점 세계를 지배하다 시리즈를 읽어보면 좋으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은 아일랜드에서 주식으로 삼던 감자가 잎마름병으로 인해 전멸됨으로 인해 일어난 참사다. 이로 인해 1845년부터 1852년 사이, 약 100만 명이 굶고 병들어 죽었다. 감자가 ‘전멸’까지 이른 이유는 남미에서 도입된 1종만을 재배했기 때문. 생물종이 다양할 경우, 병에 약한 종자도 있지만 강한 종자도 있기에 ‘전멸’까지 이르지 않는다. 물론 감자 역병이 창궐함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영국의 착취도 대참사의 주요한 원인이겠다.)
그런데 닮지 않았는가? 생물종 다양성 급감 vs. 종자독점, 농민 vs. 대형종자회사의 구도와, 택배회사와 기사 vs. 싼 단가로 ‘당장의’ 이익을 보는 모든 이, 중소형출판사 vs. 할인으로 인해 ‘당장의’ 이득을 보는 모든 이 등등의 구도가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과 그로 인한 효율성의 극대화가 정작 전체의 질을 낮추고, 종국엔 공멸로 가는 모습이 말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엄청난 이득을 본다.
(캡콜드 님의 말을 살짝 변용하자면) 각 문제는 개별적이되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개개인은 각각의 사회적 문제들에 무관한 것 같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maerong님의 말씀처럼 이 세계가 나와 무관하다고 믿는 순박한 개인주의가 만연할 때 악은 일상이 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필리프 사시에는 사회적 관용, 즉 똘레랑스를 자기중심주의의 포기라 했다. 똘레랑스는 관념이 아니라 실천할 때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단지 편협함을 버리는 것만으로(그것도 쉽지 않지만) 타인의 가치가 나의 가치만큼 소중하게 여겨질까? 난 옆집 수저 개수도 관심있어하는 오지라퍼 한국인들에겐 되려 자기중심주의의 다원화, 적극적인 자기중심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즉, 모든 일을 나와 연관 짓는 것이다.
당장의 싼 비용에, 당장의 큰 할인 폭에, 당장의 큰 편의성에 만족하면서 그를 가능하게 했던 타인의 희생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희생이 임계점에 다다라 폭발했을 때, 무지에 의한 악은 희생을 하던 약자에게 향한다. 파업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을 생각해보라.
하지만 무지를 걷어내고 모든 사회적 문제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 나도 어느 영역/순간에는 희생하는 약자임을 깨닫게 되면, 나의 무관용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한 줄 결론 : 무식하게 있다가 내가 갑인 줄 착각하고 있으면 그냥 아주 x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