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인문학 페티시즘』 6장의 전반부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다시 재구성한 글입니다.
3년에 1만 권을 읽었다고?
인문 열풍의 한 가운데 있던 인물 가운데 하나인 김병완은 엄청난 독서량으로 주목받았다. 도서관에 틀어박힌 3년 동안 1만 권(정확하게는 9천 몇 백 권이라고 한다)을 읽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후 인문 강호에 나서서 당당히 인문 멘토로 활약했다.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강호 주유기 사이에 50여 권의 책을 써냈다. 그의 모든 집필의 근간에는 1만 권(이 좀 안 되는 권 수)의 독서가 자리한다.
이 방대한 독서를 통해서 김병완은 기적을 체험한다. 자신의 능력을 극도로 계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작가로, 강사로 그는 놀랍게 변신한다. 그것은 나름 좋은 일이다.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 나아가 독서를 통한 경력개발이 아니겠는가. 충분히 모범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분량을 3년이라는 단기간에 독파할 수 있었던 것일까?
과연 무슨 책을 읽었을까?
독자분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는 독서가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벌레로 살아왔고, (과장법을 써서 말한다면) 한시도 책을 멀리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평생 완독한 책의 수가 채 1만 권은 되지 않는다. 대충 어림잡아 7,000~8,000권쯤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물론 여기에는 만화와 무협지 등의 독서량은 제외했다(이것만으로도 1만 권을 훨씬 넘어설 것이다). 더욱이 부분적으로 읽은 것까지 합하면 몇만 권을 훌쩍 넘긴다.
이런 경험에 기초하여 김병완의 주장을 점검해보려고 한다. 3년에 1만 권 정도를 읽으려면 하루에 몇 권을 읽어야 할까? 1년이 365일이니까, 3년이면 1095일이다. 1일 평균 9.13242009권을 읽어야 한다. 즉 하루에 아홉 권을 읽어야 한다(1만 권이 조금 못 된다고 하니 소수점 아래는 버리기로 하자)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일단 고전을 중심으로 독서한다면, 불가능하다. 플라톤의 《향연》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을 하루에 아홉 권 읽는다니, 전국의 인문학도들이 혀를 깨물 것이다. 현대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다고 해도 역시 무리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을 생각해보라.
이는 문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토지》나 《태백산맥》,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을 날마다 아홉 권씩 읽는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차라리 우리 부모님이 키우는 강아지 해피가 딘 쿤츠(Dean R. Koontz)의 《와처스》에 등장하는 천재견 아인슈타인처럼 컴퓨터를 다루기를 기대하는 게 낫겠다.
나아가 장르소설에 한정 짓는다고 해도 쉽지 않다. 웬만한 장르소설의 분량은 매우 두툼하다. 가령 반전의 대가 할런 코벤(Harlan Coben)의 《페이드 어웨이》가 464쪽이고, 《결백》은 520쪽이다. 제아무리 술술 읽힌다지만, 분량이 독자의 발목을 잡는다. 애초에 한두 시간에 후루룩 완독하도록 쓰인 책이 아니다.
분량이 100여 쪽을 넘기지 않는 얇고 쉬운 자기계발서, 특히 우화식 자기계발서를 중심으로 읽는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1만여 권 가까이 읽는 것이 과연 모범적인 독서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하나 이것조차 일반인 수준이 아니라 숙련된 독서가의 수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처음부터 독서가는 아니었다고?
그런데 정말로 경이로운 것은 다른 데에 있다. 바로 김병완이 원래부터 독서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아템포)를 보면, 처음 1년 동안은 책 읽기에 익숙해지는 데에 상당히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3년 안에 1만여 권 가까이 읽었다. 이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
탁월한 두뇌와 학력 열등감을 동력 삼아 옥중 생활 6년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읽은 책이 대략 2천 권이라고 알려져 있다. 독방에 갇힌 채로 하루에 한 권을 읽은 셈이다. 그가 읽은 책은 문사철의 고전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것이다. 매일 열 시간씩 독서에 몰입했다는 것인데, 실로 그를 향한 존경심이 밀려온다.
일본의 소프트뱅크 회장인 손정의는 간염으로 인해 병석에서 누워 있었을 때, 그 4년의 기간 동안 무려 4,000여 권을 읽었다고 한다. 매일 세 권 가까이 읽은 셈이다. 이는 매우 놀라운 기록이지만, 숙련된 독서가에게 독서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옥에 있는 수인이었고, 손정의 회장은 병원에 있는 환자였다. 그런데 이 훈련된 독서가들이 외부 자극이 최소화된 폐쇄된 공간 속에서 읽은 것이 하루 한두 권. 물론 그들은 깊이 있게 읽고, 정리하느라 그런 것이다. 이렇게 독서조차도 제한된 환경이 주어져야 가능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읽고 싶은 책을 만날 때마다 옥중 생활을 그리워하곤 했다.
하지만 김병완은 3년 간 1만여 권을 읽었다고 말한다. 그나마 첫 해는 독서가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과연 그는 정말 완독한 권수를 기준으로 말한 것일까? 혹시 부분적으로 여기저기 훑어 읽은 책들까지 포함시켜 수를 매긴 것이 아닐까?
과연 매일 아홉 권씩 읽을 수 있을까?
더욱이 이것만으로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밖의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이번 절의 내용은 알라딘 북로거 yamoo 님의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가령 도서관의 휴관일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휴일은 논외로 치더라도 최소한 매주 한 번(보통 평일에) 쉬지 않나. 집에서 그렇게 집중적인 독서가 가능할까? 김대중이 교도소 생활을 그리워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통상 도서관 정기 휴관일과 겹치지 않는 주말과 공휴일에 있기 마련인 여러 경조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때마저도 허생처럼 독서에만 올인했을 지가 의문이다. 허생의 마누라도 결국 열폭하고 말았기에 결국 독서를 중단하고 매점매석을 자행하는 악덕 투자자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던가. 과연 김병완의 가족은 어느 정도로 이해해주었을까?
더욱이 그가 그 기간 중에 감기나 몸살로 앓아눕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 하루만 쉬더라도 열 권이 밀리는데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물론 3년 내내 건강했을지도 모른다(그래도 눈과 목과 허리에는 조금 무리가 쌓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경조사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의문은 이것이다. 김병완은 정말로 1만여 권에 가까운 책을 도서관에서의 3년 동안 완독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무얼 얼마나 어떻게 읽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매일 백분으로 3년 안에 천 권을 읽으라고?
더욱이 김병완은 3년 안에 1,000권 이상을 읽으라고 우리에게 독려한다. 가령 《48분 기적의 독서법》(미다스북스)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48분 기적의 독서법은 3년간 1,000권의 독서라는 명확한 실행 방향을 제시하는 법칙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3년은 의식의 임계점을 돌파하는 데 드는 시간을 말한다.
- 180쪽
이는 자신의 독서 경험과 여러 독서가들의 유사한 경험에 비추어 도출해낸 법칙이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일정한 기간의 다독과 남독이 필요하다. 분명히 대다수 독서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경험이다. 하지만 거기에 3년이라는 기간이나 최소 1천 권이라는 목표가 들어서야 할 당위적 근거는 없다. 모든 독서가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가 생각하는 독서법을 따르기 위해서는 1천 권 이상의 책을 3년 이내에 독파하는 것에 더하여 “오전 48분, 오후 48분의 독서법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면서, 이어 “권당 평균 독서 시간을 100분 정도로 맞춰야 한다”(284쪽)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계적인 접근법 자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말랑말랑한 자기계발서에 한정하지 않는 이상 이런 독서 시간으로 얼마나 읽을 수 있겠냐는 점이다. 애초에 이런 독서법은 정보 획득과 동기 부여를 목적으로 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독서법에나 어울린다. 독서를 통한 성숙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다. 책 속에서 길을 찾으려면, 적게 읽고 느리게 읽어도 좋으니 제대로 읽어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