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형법 제3장 105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월호 집회 중 태극기를 태운 청년에 대해 우파들이 도덕적 비난을 넘어 사법처리까지 주장하는 것은 이 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전혀 타당성 없는 주장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태극기 패션” 논란을 기억할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4강 진출로 인해 전 국민이 열광하던 당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이리 접고 저리 뜯어 브래지어로 팬티로 망토로 만들어 입고 응원을 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명백한 국기 훼손임에도 그들에게 형법 제3장 105조가 적용되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러한 행위의 동기에 “대한민국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 청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주 국가(nation)와 정부(government)와 정권(regime)을 동일시하는데, 거기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정권보다 정부가, 정부보다 국가가 상위개념으로, 국가가 스스로 규정한 국민 영토 주권의 범위 내에서 영속적 존재 및 이상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추상적 공동체라면, 정부는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직된 통치기구이고, 정권은 한시적으로 그 정부의 운영을 맡은 권력집단이라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속 청년이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으로서 반대하려던 대상은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단지 5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의 운영을 맡은 박근혜 정권일 뿐이다. 그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나 우리가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했던가?
단지 수백 명의 자국민이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 무능한 정권, 그러면서도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없는 부도덕한 정권,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자식 잃은 부모들에게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뿌려대는 미친 정권을 반대하기 위한 상징적 의사 표시로서 태극기를 태운 것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게다가 애초에 국기 훼손(flag desecration)이 처벌의 대상이 되는 자체가 미개한 것이다. 보수파들이 큰형님으로 모시는 미국엔 그런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호랑이 마리화나 피던 남북전쟁 때나 있었을까, 지금의 미국에선 성조기를 태우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하나로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행위다.
작은형님 일본에서도 일장기(히노마루) 태우는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호주,캐나다, 덴마크,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합법이다. 불법인 나라는 중국,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이스라엘, 멕시코,사우디 아라비아 등이다. 두 그룹의 국가 명단만 봐도 국기 훼손의 불법성 여부가 그 나라의 정치적 자유, 사회적 관용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기는 다른 모든 엠블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 3.1절에 전국민이 태극기 내건다고 하루아침에 좋은 나라가 되지 않듯, 누군가 태극기 백만 장을 한꺼번에 태운다고 해도 실체로서의 국가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정말로 나라에 해가 되고 그 안정성을 흔드는 것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에 비해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리하여 국가의 존재가치를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인데, 지난 며칠간 박근혜 정권은 도피성 출국과 살수차와 최루액으로 다시 한 번 그런 이들의 숫자를 불렸다.
대통령 없는 국가는 있어도 국민 없는 국가는 없다. 그러므로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 바로 국가를 모독하는 것이다.
원문: 장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