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한 청년의 성적은 선동렬 방어율을 능가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성적표수령 주소를 항상 자취방으로 바꾸는 습관을 가질 정도로 영리했죠. 사회인이 되어서는 택배 배송주소만 신경 쓰던 그는, 주민등록주소지로 어떤 서류가 날아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_그것이_실제로_일어났습니다
며칠 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다소 격양된 것 같았지만 이내 “아들 잘 지내고 있느냐, 요새 뭐하고 다니느냐, 별다른 문제는 없느냐?”등의 질문으로 말을 돌리셨습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짐작한 저는 “왜 그러시냐?”고 되물었습니다. 한참을 뜸들이시던 아버지는 집으로 경찰 출석 요구서가 날아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저는 다소 어이가 없어서 아버지를 진정시켜드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서류상에 적힌 내용인 “정보통신망 관련법”을 위반하였다는 사실과 담당 경찰서의 전화번호만 확인한 뒤에 황급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담당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경찰서의 담당 형사는 제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1항 3호 및 8호”(이하 정보통신법)를 위반했다고 했습니다. 대체 저의 무슨 행동이 해당 법률을 위한한 행위인지 어리둥절했고, 자세한 경위를 물었더니 “우리민족끼리 트위터의 내용을 리트윗” 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박정근의 구속에 열받아 올린 조롱 리트윗, 그 결과는 제2의 박정근.
2012년 11월 21일. 아마도 박정근씨의 법정 공판에서 실형 판결이 난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정근씨 사건은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 했다는 혐의로 가택을 압수수색 당하고 검찰 조사 끝에 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받은 사건입니다.) 당시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불만이 가득했던 저는 작게나마 무엇인가 항의를 표하는 행동을 하고 싶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정신으로 ‘리트윗 따위가’ 범죄가 된다면 기꺼이 그 범죄행위를 다같이 저질러 버리자는 심정이었습니다.
이렇듯 당시의 제가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한 이유는 국가보안법이란 시대착오적 법률을 기어이 다시 끄집어내서 리트윗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판결한 현재 사법부의 수준에 대해 조롱하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박정근을 잡아가려면 나부터 잡아가라!”라는 의지^^ 로 트위터를 하는 모든 분들이 제 소영웅주의적 선동에 동참 해주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간편하게 조롱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모든 시민들이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장면과도 유사한 장면을 재현해보리라는 망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당시 제 행동은 다른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조용히 묻히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망했어요
우리민족끼리의 리트윗은 : 공포심과 불안감 유발. 읭?
제44조의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①항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3호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
8호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
경찰 측의 법 해석은, 제 리트윗이 어떠한 “상대방”에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혹은 “리명박 역적패당과 상종조차 하지 않겠다” 따위의 주장이 과연 어떻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조장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현재는 좀 증가했으나 당시만해도) 50명 남짓했었던 제 팔로워들이 제 행동을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지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더불어 리트윗이란 수단이 무조건적인 동의를 의미하는지에 대한 해석도 쟁점이었습니다. 경찰은 제가 우리민족끼리를 리트윗한 행위가 ‘지속적으로 북한의 사회주의 사상을 찬양한 행위’라고 일축했습니다. 저는 북한의 사회주의 이념을 찬양할 목적으로 리트윗하지 않았습니다. 리트윗이라는 행위에 무조건적인 동의가 함의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판단력이 부족한 일부 사람들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북한의 사회주의에 동조할 수도 있지 않냐는 해석도 제기되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경찰은 대체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리트윗으로 접한 북한의 전형적인 프로파간다를 보고 그것에 동화되는 사람이 과연 실존할 수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경찰의 넋나가게 하는 어이 없는 질문들
경찰 조사 관련 트위터 모음은 이 링크를 보시면 됩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우리민족끼리 팔로우하냐? 아니오. 그럴 가치가 없는 계정인데요?
– 그런데 왜 리트윗했냐? 박정근 씨 법정 공판이 있어서, 실형 선고한 사법부에 조롱했지용. 많은 트위터 사람들이 동참하길 바랬어요.
– 우리민족끼리 몇 번 리트윗 했냐? 한 번요(…)
– 한 번 아닌데, 더 했는데? 그랬나 보죠(…)
– 그래서 그 사이트 접속 했냐? 아니오. 소라넷처럼 http://warning.or.kr 뜨던데요?
– 트위터 통해서 지속적으로 북한 사회주의 찬양한 거 아니야? 찬양한 적도 없고, 리트윗이 동의해서 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 판단력 떨어지는 국민이 너 리트윗 보고 사회주의 동의할 수 있잖아? 국민들을 너무 과소평가 하지 마세요(…)
– 탈북자들이 두려워할 거 생각하지 않았어? 하아(…)
개드립도 맘대로 못하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이런저런 결과로 저는 지금 박정근씨와 유사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국가보안법 자체가 아닌 정보통신법에서 부차조항으로의 국가보안법으로 말입니다. 현재는 경찰 조사를 받고 온 상태이며, 조사 결과가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가면 기소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고 합니다. 사건이 경미하다고 판단하여 기소 중지가 될 수도 있고, 약식 기소로 벌금 정도로 처벌될 수도, 법정으로 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당히 긴 싸움이 예상됩니다.
저는 민주 투사도 아니고,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정의로운 시민도 아닙니다. 그냥 인터넷상에서 “아아, 쎾쓰하고 싶다!” 등의 1차원적 리비도를 여과없이 개진하는 병신일 따름입니다.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개드립을 칠 수 있는 자유를 원하는 평범한 잉여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나의 개드립에 대한 자유를 제한한다면 그것의 끝에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박통시절, 슈퍼 앞 평상에서 막걸리 마시던 아저씨가 대통령 욕을 했다고 잡아가던 시절과 조금도 바뀐 것이 없는 것 같은 각박한 사회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은 분명 사회적으로는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저 역시도 친구들과 막걸리 안주 삼아 늘어놓을 일종의 “썰”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반증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의 소원은 로또 당첨도 조국의 통일도 아닙니다. 저는 소원합니다.
“큰 소리로 개드립 칠 수 있는 자유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