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단이 징계를 내려야 하는가?
KIA 타이거즈의 윤완주 선수가 일베 논란으로 자격정지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좀처럼 드문 강력한 징계로 일베에 대한 사회의 분노가 십분 반영되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이 글에선 이 사건을 계기로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징계의 명분과는 별도로 징계 과정 자체에 다소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압축하자면 아래의 질문이 되겠다.
왜 징계의 주체가 KBO가 아닌 타이거즈인가?
자격정지 3개월은 어제(9일) 타이거즈의 상벌위원회를 통해 확정된 수위이다. 보다 상위의 단체라고 할 수 있는 KBO는 앞서 ‘엄중경고’ 조치를 취했다. 결국 KBO 측의 엄중경고를 근거로 타이거즈가 중징계를 내렸거나, 혹은 KBO 측과는 별도로 구단 측에서 자체적인 징계를 내린 셈인데 나로선 이 구도가 좀 이상하게 보인다.
이런 질문들을 한번 던져보자. 만약 그가 팀 전력에 절대적인 스타플레이어였어도 타이거즈는 같은 수준의 징계를 내릴 수 있었을까? 혹은 그가 타이거즈가 아니라 다른 팀의 선수였어도 같은 수준의 징계를 받았을까?
징계의 주체, 구단이 아닌 KBO가 돼야 하는 이유
내가 하고픈 말은 타이거즈는 이 사건에서 상당히 모순적인 성격을 갖는 이해당사자라는 점이다. 그들은 선수들을 잘 활용해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하는 입장인 동시에, 연고지 팬들의 정서를 감안하고 배려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당연히 둘 다 매출 및 구단가치에 직결되는 대목.
이와 같은 상황은 타이거즈가 중립적 입장에서 공정하게 사안을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팀 전력 유지를 위해 징계기간을 짧게 잡을 유인과 연고지 팬들의 성난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징계수위를 더 높일 유인을 함께 갖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후자가 도드라졌지만 앞서 말했듯 그가 스타플레이어였다면 전개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전자의 유인이 한결 강해지니까.
때문에 난 KBO가 징계의 주체가 되는 편이 옳다고 본다. KBO는 이해당사자의 입장이 아니라 중재자의 입장에서 사안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O 측이 엄정한 논의를 거쳐 징계수위를 정하면 구단은 거기에 승복하도록 하는 편이 한결 효율적이고 부담도 적다. 지금의 시스템에서 KBO의 징계는 유명무실할뿐더러 오히려 책임회피에 가깝기도 하다. 가장 민감한 항목인 징계수위 결정을 사실상 떠넘긴 꼴이지 않은가. 그것도 이해당사자인 구단에게.
KBO가 징계의 주체가 되는 건 형평성 측면에서도 한결 장점을 갖는다. 같은 죄엔 같은 대가를 치르게 하기에 용이하단 뜻이다. 문제 행위에 대한 징계를 내릴 때 10개 구단의 모든 선수를 동등한 입장에서 대할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큰 장점이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A구단의 선수는 자격정지 1개월에, B구단의 선수는 벌금형에 처해진다면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시스템은 그런 불합리를 양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혹자는 윤완주 선수가 광주를 연고로 하는, 특히 호남인들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타이거즈 선수로서 부적절한 언사를 했기에 마땅히 더욱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차별이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법 앞의 평등’을 거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호남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언사를 했으니 잘못이다’와 ‘호남 연고 구단의 선수니 더 처벌받아야 한다’는 결코 동치가 될 수 없다. 전자는 죄과를 판단하는 과정이지만 후자는 그냥 차별이다.
공정하지 못한 징계의 과정과 결과
나는 지금 윤완주 선수에게 잘못이 없다고 두둔하는 것도 아니고 그를 비난하는 것이 과도한 행위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문제시하는 것은 그 잘못이 실제 징계로 변환되는 과정의 공정성에 국한된다. 즉 적절한 과정을 거쳐 적절한 수준으로 징계가 이루어졌느냐는 대목이다.
자격정지 3개월이다. 가뜩이나 활동하는 기간이 짧은 직군임을 감안할 때 그야말로 치명적인 수준이다. 구단 내 그의 입지를 감안할 때 사실상 퇴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한데 이 정도의 징계를 내린 주체가 다름 아닌 구단이라는 점엔 생각해볼 여지가 다분하다.
해외의 경우를 보면 이런 문제에선 대부분 상위기관인 협회 측이 징계수위를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구단은 거의 예외 없이 선수 측에 선다. 선수 측의 소명이나 반성 등을 협회에 전달하며 선수를 변호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다. 물론 내부에서는 크게 야단치며 자체적인 징계도 병행하지만 그것은 협회의 징계수위에 상응하는 벌금, 사회봉사 등이 대부분이다. 자격정지, 출장정지 등은 협회의 몫이고 그 부분에 대해선 구단이 선수 측에 선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연봉을 지불하고 고용한 수입창출원이니까. 지켜야 할 자산이니까.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징계수위 결정의 역할이 사실상 구단에 주어져 있다. 그러면 구단은 (이해관계가 있는) 판관이 되고 선수는 변호사 없이 재판에 임하는 피고가 된다. 이런 건 부당하다. 선수가 그 어떤 죄과를 지었다고 해도 적어도 소명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와 같은 이유에서 난 윤완주 선수에게 징계가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에 동의하지 못한다. 절차상의 결함이 여럿 있다는 소견이다. 제도적으로 보완해서 체계화할 필요성이 시급해 보인다.
또한 이번 건은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다들 KBS 일베 기자 사건을 알 것이다. 그는 여성차별, 지역차별, 특정인 비하 등의 글을 무려 6,870여 개나 게재하며 파문을 일으켰지만 결국 임용되었다. 많은 이들이 KBS를 비판하는 현황이지만 사실 적지 않은 법조인들이 해고할 경우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물론 반대의 견해도 있다.)
한번 죄과의 경중을 따져보자. 아예 대놓고 일베에서 분탕질을 해댄 KBS 기자와 여자친구와의 SNS 대화 도중 ‘노무노무 일동차렷’이란 표현을 쓴 윤완주 선수. 잘잘못의 경중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러나 징계 결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만약 윤완주 선수가 소송 등을 제기하면 타이거즈로선 상당히 곤란해질 수도 있어 보인다. 물론 그러기는 쉽지 않음을 안다. 그건 운동을 그만둔다는, 지금껏 몸담아온 세계를 완전히 떠나고 인연도 정리한다는 뜻이 될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일베가 싫다. 그 잘난 ‘www.warning.or.kr’ 딱지를 왜 일베에 안 붙이고 레진코믹스에 붙이는지 꽤나 의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논란에서 우린 좀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칫하면 감정적인 여론재판으로 흐를 소지가 다분할 테니. 난 윤완주 선수의 징계에도 그런 측면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