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돈을 낸지는 4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비디오 게임이란 것이 등장한지 반세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게임산업은 더이상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규모가 되어왔고, 블럭버스터 게임은 헐리우드 영화의 매출에 뒤지지 않을만큼 매출을 내고 있으며 성공한 게임이 나오면서 회사의 가치가 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게임에 돈을 쓰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는 문화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게임이란 취미에 대해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게임은 하나의 문화이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만의 방법으로 돈을 쓰면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은 산업인데도 불구하고 게임은 그 형태나, 방법을 바꾸면서 빠르게 그 세력을 넓혀왔다. 게임을 만드는데는 자원이 필요했고,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돈을 받을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고민해왔다. 자금이 없으면 게임을 계속 만들수도 없고, 유지할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게임의 국경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 각각의 나라에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의 차이들이 서로 문화적으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꼭 어떤 나라에서 성공한 방식이 다른 나라에서는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고향보다 이국땅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두는 게임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편 전세계에서 전세계의 게임들과 경쟁해야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음 게임을 낼 수 있을 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까는 모든 개발자들의 고민이 되었다.
게이머들이 보기에는 공짜라고 하지만 뚜겅을 열어보면 돈을 더 많이 쓰게 되는 게임들이 주변에 늘어나는 것이 불편하게 되었고, 어떤 게임에서는 정작 돈을 쓰고 싶어도 시스템이 그것을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지금 게임이 어떻게 게이머들에게 돈을 받으려고 했는지를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1. 태초에 게임에는 가치가 매겨져있지 않았다. – 유료화 모델이 없는 게임
그러니까 게임은 공짜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없었다. 윌리엄 히깅보덤이 연구소 방문객을 즐겁게 해줄 목적으로 만든 ‘둘을 위한 테니스’는 상업적인 고민이 없었다.
스티브 러셀이 10억원짜리 컴퓨터로 만든 게임 역시 팔 의도는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게임을 하겠다고 10억원짜리 컴퓨터를 사겠는가. 하지만 그가 만든 게임과 코드는 컴퓨터가 비치된 대학들로 퍼져나가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게임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연구실에서 태어난 온라인 게임의 먼 조상 뻘인 텍스트 MUD게임들 역시 소스코드들이 공개되어있었고, 누구나 소스코드를 받아 개조해서 학교, 혹은 연구실의 컴퓨터에 돌리고는 했다. 컴퓨터로 하는 게임이란 것은 해커의 취미였고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재미를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취미로 만들어지는 이 게임들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오픈소스등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개발자의 자기만족에 가깝고, 게이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최우선 되는 목표도 아니기 때문에 불친절하지만, 이렇게 등장한 게임들은 이후에 등장할 여러가지 유료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2. 한판에 100원. 게임 한판에 돈을 지불하는 동전오락기 모델
게임에 돈을 쓰는 것이라면 당연히 게임자체를 돈 주고 사는 것부터 떠올리겠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간 유료화 방법은 게임 한판을 하는데 돈을 지불 하는 것이었다.
비디오게임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동전을 넣고 쓰는 기계식 오락기는 옛날부터 있어왔다. 축제나 상점가에는 풍선 터뜨리기부터 사격까지 한번 하는데 돈을 지불하는 식의 오락시설이 빠지지 않고 자리잡았다. 나중엔 동전을 넣으면 음악을 틀어주는 쥬크박스나, 핀볼기계들이 자리를 잡았다.
게임의 역사를 다룰 때 흔히들 가장 먼저 다루는 퐁(PONG)이 그 위치를 처음 차지했다. 아타리 창업주인 놀런 부쉬넬은 대학생 때 축제 알바의 경험과 스티브 러셀이 만들었던 spacewar!에 푹 빠져 살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앞으로 비디오 게임의 시대가 올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의 첫 번째 시도였던 computer space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컴퓨터 스페이스를 말아먹고도 비디오게임을 놓을 수 없던 놀런 부쉬넬은 아타리를 창업하고 이어 퐁을 내놓았다.
술집에 시험 삼아 비치한 퐁은 2주후에 기계가 고장 났다는 술집 주인의 연락을 받는다. 기계의 고장원인은 단순했다. 동전통이 꽉찼던것이었다. 퐁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술집에서 술을 안마시고 퐁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비디오게임이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퐁의 복제기기들이 마구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깔린 퐁의 2/3가 복제된 기기였다. 너도나도 게임산업에 뛰어들면서 동전을 넣는 오락기는 마침내 비디오 게임 시장을 만들어냈다. 이후 브레이크 아웃, 스페이스 인베이더, 팩맨 등 걸출한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비디오게임은 술집 한 켠을 차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오락기만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런 모델의 게임들은 회사 입장에서는 수입이 많은 게임이 당연히 좋은 게임이라 게임 디자인 역시 사람을 끌어들이되 회전율이 높도록 디자인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중에서도 대전격투게임은 재미와 회전율을 둘 다 잡은 오락실의 꽃이라 부를 수 있었는데, 대전이다 보니 지는 사람은 일어나거나, 새로 동전을 넣어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내 게이머에게는 경쟁의 즐거움을, 오락실 주인은 많은 수입을 기대할 수 있어 스트리트 파이터 2 이후에는 너도 나도 대전 격투게임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대전격투게임을 비롯해 전자오락실의 붐이 많이 꺼져 오락실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일정 금액을 내면 한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모델은 앞으로도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전자오락실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유원지의 어트랙션부터 크레인 게임까지 이 모델이 사용되고 있고, 게임을 계속 할 때마다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라 개발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유료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게이머 입장에선 다른 유료화 방법에 비해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게 문제지만.
3. 게임기와 게임을 사는 패키지 게임 모델
퐁이 미국에서 대박나기 이전에 랄프베어가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라는 TV 수상기에 붙이는 게임기를 만들긴 했지만 별로 상업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이 오락실에 가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싫어했기 때문에, 아타리는 퐁을 가정용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결과는 뻔하게 대성공이었고, 본격적으로 비디오게임들이 거실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가정용 게임기는 그렇게 싸지 않은 가격이었고 처음에는 게임기 하나에 정해진 게임들만 즐길 수 있었지만, 카트리지로 게임을 교환할 수 있는 방식의 게임기가 등장하고, 아타리가 아타리 VCS 2600 이라는 게임기를 보급하면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의 시대가 열렸다.
아타리 VCS 2600에는 조이스틱이 달려있었고, 아타리가 가지고 있던 오락실에서만 즐길수 있는 게임들을 거실에서 즐길 수 있게 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인기도 잠시, 놀런 부쉬넬이 회사를 워너에 팔고,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경영자들이 팩맨 같은 뻘실수를 하고 다음 세대 기기로 넘어가지를 못하면서 미국은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일본에 뺏겼다.
닌텐도와 세가,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플레이스테이션까지 이 모델을 충실하게 지켜나갔다. 처음엔 게임기를 싸게 보급하고, 게임을 많이 팔아 수익을 보충하는 구조는 게임기 플랫폼 홀더들이 택한 수익을 내는 방법이었다.
이런 유료화를 선택한 게임들은 오래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미덕이었다. 덕분에 가정용 게임기에서는 RPG 같이 오락실에서 즐기기 힘들고 긴 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인기를 끌었다.
가정용 게임기 바깥에서 PC용으로 게임을 내던 개발자들도 PC용 패키지 게임을 돈 받고 파는 모델을 선택했다. 닌텐도 이후의 게임기들은 해당 게임기로 게임을 선보이려면 돈을 내고 라이센스를 취득해야했기 때문에 해커들은 여전히 PC에서 게임을 만들었다.
그런 해커들은 동네 PC 가게에 지퍼락으로 게임을 포장해서 게임을 팔고는 했다. 간혹 유통사들의 눈에 띄는 게임들은 계약을 통해 미국 전역에 팔리기도 했다. 가정용 게임기처럼 게임기를 싸게 보급하고 게임을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는 아니었지만, 게임이 많이 팔릴수록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 모델은 지금까지도 비디오게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고, 게임을 소유한다는 것에 가까운 개념의 유료화 모델이기 때문에 이 모델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게임을 서비스로 접근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개발자들은 게임을 출시를 하면 집에가서 쉴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4. 일단 한번 해보시고 마음에 들면 게임을 해보시라. – 쉐어웨어 모델.
상점에서 패키지로 포장된 게임을 몇 만원을 주고 사오거나,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는 것에서 또 다른 변화가 등장했는데, 90년대 PC게이머라면 이 로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얘네들이 한게 뭐냐하면 PC통신이나 잡지부록 같은 데에 첫 스테이지나 플레이 횟수 제한이 걸려있는 게임을 배포하고, 그것을 다 깨면 “재미있게 즐기셨나요? 게임을 더 하고 싶으시면 여기로 돈을 보내세요! 전체 게임을 “편지”로 보내드립니다” 라는 마케팅이었다.
당시에는 Shareware라고 게임뿐만 아니라 각종 프로그램들을 데모를 쓰게 하고, 전체 버전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는 돈을 우편이나 은행에서 입금 받고 (이 때 모바일 뱅킹이나 휴대폰 소액결제 같은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콘텐트를 모두 할 수 있게 해주는 키나 아니면 전체 소프트웨어를 보내주고는 했다.
여러분들은 커맨더키닝나 재즈잭래빗, 티리안, 랩터, 듀크뉴켐3D(포레버말고)등의 명작들을 기억하면서 추억에 빠져있겠지만 이걸로 가장 유명한걸 고르라면 역시 둠. 둠은 이 방식으로 돈을 갈퀴로 긁어 모았고. 충분히 갈퀴로 긁어 모은 후 소매점으로 넘어갔다. DOOM 을 다룬 책에 따르면 쉐어웨어 다운로드 이용자중 1%만 게임을 구매하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10만 $씩 돈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 모델은 큰 유통업체와 계약을 하지 못한 작은 규모의 캐주얼 게임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데모 게임의 배포는 더욱더 쉬워졌는데, 식물 대 좀비로 유명한 팝캡의 비주얼드도 초기에는 이런 모델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데모배포와 쉐어웨어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기도 했지만 스팀이 본격적으로 게임 유통망을 장악하기 이전에는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대부분이 이 방법으로 자신들의 게임을 팔았다.
5. 게임을 하려면 하신 만큼 돈을 내셔야 합니다. 집에서 하는 게임이라도 말이죠. – 종량제 모델
한편 컴퓨서브 같은 정보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서 취미로나 돌리던 MUD게임 같은 것들이 정식으로 서비스 되기 시작했다.
“케스마이의 섬” 같은 지금의 게임과 비교하자면 상당히 조악하겠지만 MMORPG의 선구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의 이용료는 무려 시간당 6$이었다. 더 빠르게 게임을 하고 싶으면 12$씩 내야 했다. 1986년 환율이 1$ = 9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게임 하는데 한 시간에 10,800원씩 내야 했던 셈이다.
한 시간에 만원이라면 2014년에도 비싸게 느껴지는 물가인데 이게 86년도 가격인 것을 감안해서 비교하자면 그 때는 한국에서 전자오락이 한판에 50원이었다. 라면이 하나에 200원이었다. 수학의 정석이 5000원을 안 넘었다. 영화 한편 보는데 3500원이었던 시대에 한 시간에 10800원씩 내고 온라인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후에 아메리카 온라인 (이하 AOL) 에서 네버윈터 나이츠 (유명한게임 말고 91년에 나온 옛날 물건)는 시간당 6$이었다.
6. 게임을 하려면 매달 돈을 내시면 됩니다. 그러면 무제한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어요 – 정기구독 모델
아까 Akalabeth의 개발자로도 등장했던 리차드게리엇은 게임계에서 엄청난 시도를 하는데 본인이 만든 인기 RPG 프랜차이즈인 울티마씨리즈를 온라인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울티마 온라인은 울티마 팬이라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울티마 월드를 온라인으로 구현해냈고, 가격은 월정액을 선택했다. 이미 인터넷 서비스 자체가 정액 모델이 중심이었고, 종량제로 게임을 하기는 솔직히 너무 비쌌다. 울티마 온라인은 무제한 정액제 모델을 확립시켰고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들은 종량제 대신 무제한 정액제를 선택했다.
울티마 온라인보다 좀 더 앞서 등장한 넥슨의 바람의 나라 역시 초반엔 종량제로 정보이용료를 내서 게임을 할 수 있게 하다가 인터넷으로 접속하는 것이 일반화 되면서 월정액 모델을 채용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역시 오픈베타 이후 월정액 모델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PC 패키지 게임 시장이 불법복제 등으로 빠르게 망할 때 온라인 게임들은 월정액 모델로 불법복제의 피해 없이 승승장구했다.
한편 유저들에게 월정액을 기대하기는 좀 힘든 가벼운 콘텐츠의 게임들은 월정액 모델을 그대로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컸다. 포트리스2는 월정액 모델이나 이용료 모델을 다른 방식으로 가져갔는데, 유저들에게 이용료를 부과하는 대신 유저들이 게임을 즐기는 PC방에 이용료를 부과하는 방식이었다.
IMF 이후 고소득 창업 아이템으로 부상한 PC 방은 스타크래프트 배틀넷의 인기와 함께 전국에 빠르게 그 세를 넓혔는데, 집 대신 PC 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많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넥슨의 퀴즈퀴즈 역시 월정액으로 유료화를 단행했다. 마찬가지로 무료유저의 반발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통신사와 제휴를 하여 특정 인터넷 통신 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은 집에서 무료로 게임을 하는 식으로 반발을 가라앉혔다.
7. 아이템을 돈받고 팝니다. – 부분유료화 비긴즈.
한국 인터넷 산업에서 유료화에 대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세이클럽에서 아바타를 유료로 팔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인터넷 웹서비스가 광고 외에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후 여러 웹사이트들이 세이클럽을 참고하기 시작했다.
넥슨의 퀴즈퀴즈는 당시 월정액제와는 별도로 아바타 꾸미기 아이템을 판매하는명품관을 도입했다. 게임 내 부분유료화가 도입된 첫 사례로 기록된 이시도는 뚜껑을 열어보니 대박이었다.
당시 퀴즈퀴즈의 월정액 금액은 7,700원이었는데, 한 달간 명품관에서 나온 매출은 25,000명의 월정액 금액이나 마찬가지였다. 퀴즈퀴즈는 이렇게 얻은 수익을 유저에게 환원한다는 취지로 한국통신 회선을 사용하는 PC방에서는 게임을 무료로 즐길 수 있게 했다.
환원은 했지만 매출은 더 올라갔다. 명품관 패치는 몇 달 후 7월 5일 퀴즈퀴즈가 전격 개인 무료화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개인에게 월정액을 받는 것보다 무료로 게임을 즐기게 하고 명품관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었다.
넥슨은 보다 적극적으로 부분유료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모두 부분유료화로 큰 성과를 냈다.
마비노기에서는 MMORPG에서는 혁신적으로 매일 2시간 무료라는 수를 두었다. 월정액을 쓰는 사람은 게임에서 쓸 수 있는 아이템들을 매일 받을 수 있었고 시간 제한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후 부분유료는 한국 온라인 게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게임의 접근성을 최대한 늘려 유저수를 많이 모아 돈을 쓰는 사람숫자를 늘리게 하는 방식의 경영은 게임의 유저를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유지시킬것인가에 집중하게 했다.
온라인 게임을 계속 서비스 해온 넥슨과 엔씨는이런 운영과 마케팅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특히 넥슨은 좋은 게임 콘텐츠를 사서 자기들이 가진 마케팅과 운영으로 유저수를 크게 늘리며 매출을 늘려왔다.
8. 대세가 되는 부분유료화 – 부분유료화 라이즈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전세계가 한국의 부분유료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8년 페이스북이 전세계에 이용자수를 늘려가고 있을 때 수많은 게임들이 페이스북과 함께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면서 어떻게 매출을 낼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직 앱스토어에도 스팀에도 In App Purchase 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소셜게임들은 처음에는 친구들을 많이 필요로 하는 아이템들을 즉시 팔기 시작했다. 마침 paypal 이나 신용카드 등의 소액결제도 활성화도 이런 분위기에 도움이 되었다.
타이니 타워와 포켓플레인의 제작사인 님블비트는 한국의 부분유료화(F2P)에 빨리 주목한 개발자중 한 명이다.
F2P를 다룬 게임 디자인 서적인 Free to Play의 추천사에서 님블비트의 형제 개발자중 동생인 이안 마시는 넥슨의 카트라이더에서 독특한 유료화를 보았지만 당시 스팀은 IAP 기능도 없어서 실현 못하고 애플 앱스토어에서도 IAP 기능이 없어 전통적인 유료로 게임을 판매하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IAP 가 생기자마자 그들이 한 일은 자신들의 가장 매출이 높은 게임이었던 Scoops를 무료로 전환했던 것이었다. 모두들 미쳤다고 했지만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1만 키로 떨어진 먼나라에서는 이미 이런 마케팅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증명되지 않았는가. F2P는 성공적인 유료화 방법 중에 하나라고.
SNS와 모바일 디바이스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SNS와 모바일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게임 역시 빠르게 보급되었다. 사람들은 가볍게 게임을 즐기게 되면서 기존의 비싼 게임기를 사서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큰 돈을 주고 게임을 사서 거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들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게이머들이 출현했다. 그들은 공짜로 게임을 다운받아 게임을 하고 자신들이 즐겁다고 생각하면 아낌없이 돈을 쓴다.
이런 게이머들이 등장하면서 북미도 빠르게 부분유료화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F2P 부터 시작해서 Pay to win, 한번에 돈을 많이 쓰는 고객을 지칭하는 고래(whale), 공짜(free)와 프리미엄(primium)을 합성한 freemium 등 수많은 단어가 생겨나고 소셜게임과 모바일게임의 디자이너는 이런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이제 모바일게임과 소셜게임 산업을 넘어서 가정용 콘솔 시장 역시 이런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가정용 콘솔의 월정액 게임은 MMORPG 몇 개 정도였지만, 소니와 MS 모두 게임기에 자신들의 온라인 마켓을 붙이면서 게임의 판매 권력을 소매점으로부터 가져오고 있다. 그와 함께 부분유료에 대한 실험 역시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마켓에는 공짜로 게임을 받게 하고 게임 내 아이템들을 돈을 받는 시도가 이미 진행중이다. 페이스북이나 모바일 앱마켓에 비교하자면 늦은 선택이었지만, 초기에 한국 온라인 게임이 콘솔 진입에서 부분유료화라는 결제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어하던 콘솔이 부분유료화를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 시대가 이미 바뀌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소니 뿐만이 아니다. 전통의 콘솔게임회사인 닌텐도 역시 자신들의 닌텐도 e샵을 통해 같은 실험을 진행중이다. 닌텐도 e샵에서 받을 수 있는 달구네스포츠 역시 게임은 공짜로 받되 추가 게임을 돈 주고 사는 형식의 게임인데, 이 게임은 한술 더 떠 상인이랑 흥정해서 인앱 구매 가격을 깎을 수 있다!
조만간 부분유료화가 적용된 슈퍼마리오를 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
9. 게임을 돈 주고 샀지만 추가 콘텐츠도 돈 주고 사셔야죠. – DLC 모델.
패키지게임 모델과 부분유료화 모델이 합쳐지면 이 모델이 된다. 지금이야 게임기에 온라인 기능이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시절에도 게임들이 추가 콘텐츠를 모아 따로 패키지를 내고는 했다.
코에이의 삼국지시리즈는 파워업키트로 추가장수와 추가기능들을 팔고는 했고, 스타크래프트 역시 브루드워같은 새로운 유닛과 스토리, 맵들을 모아 패키지로 팔았다.
이런 모델은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게임기에 연결되어있는 플랫폼 홀더가 제공하는 마켓에서 게임의 추가팩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넘어갔는데, 패키지로 나오는 확장팩의 경우 패키지로 찍어야 했기 때문에 볼륨이 꽤 갖춰져있는데 반해, 온라인 마켓에서 파는 DLC 확장팩의 경우 콘텐츠를 잘게 쪼개고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식을 주로 채택하였다.
게이머 입장에서야 원하는 게임콘텐츠만 사서 즐기면 되니까 이득일수도 있겠지만, DLC를 적극적으로 처음부터 활용한 아이돌 마스터의 경우 모든 DLC를 구매할 경우 100만원이 넘어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임을 한번만 사면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던 기존의 환경에서 돈을 내야 추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하면서 기존 비디오 게이머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반기면서도 예전처럼 한번에 모든 콘텐츠를 살수 없는 환경에 매우 아쉬워했다.
가정용 콘솔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들도 적극적으로 추가 시나리오, 추가 캐릭터들을 DLC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게임에서 꼭 필요한 콘텐츠들을 DLC로 판매할 경우 게이머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10. 돈을 내지도 않고 공짜이지만 사실 공짜가 아닌 게임들.
부분유료화보다 먼저 등장하긴 했지만 분류가 애매해서 부분유료화 뒤에 위치한 이 애매한 유료화 정책은 앱스토어가 활성화되고, 구글 등의 광고서비스가 일반적이 되면서 드디어 돈을 벌어먹을 정도가 되었다. 게임을 공짜로 뿌려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하게 하고, 그 사람들이 광고를 보면 광고를 본 횟수만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과거에는 그나마 이런 시스템마저 없어서 무료 게임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직접 광고를 유치하는 방법 외엔 없었기 때문에 괜찮은 게임성으로 유저를 많이 모았던 게임이더라도 유지비가 충당이 되지 않아 망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아라 개복치와 플래피버드 같은 게임들이나 사람들이 무료로 쓰는 유틸리티 앱들이 이런 방법을 통해 수익을 얻고 있다. (사실 살아남아라 개복치는 개복지 포인트를 앱내 구매가 가능하긴 하다.)
마치는 글
지금까지 유료화가 어떤 식으로 바뀌어왔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간단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깊은 내용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럽겠지만 그렇게 사람들에게 돈을 갈퀴로 끌어 모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을 필자가 안다면 필자도 비버리힐스에 이번에 모장이 산 주택 같은걸 사고 수영장에 앉아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공식은 간단하다. 게임값 x 돈을 내는 유저 숫자 x 횟수 이 숫자를 높이기 위해 지금도 많은 회사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고 있다. 유저 숫자를 절대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부분유료화이고 이 방법론은 지금까지는 다른 방법론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함을 보여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광고에다 돈을 써서 유저숫자를 높이는 방법엔 장사가 없다..) 앞에 언급한 유료화방법들을 섞기도 하고, 게임 외에서 매출을 얻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한다.
어쨌든 게임을 계속 만드는 생활을 하려면 르네상스 예술가 마냥 투자자라도 만나 스폰이라도 받지 않는 한은 게임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개발자들은 게임으로 돈을 벌기 위한 방법들을 계속 고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게이머가 지갑을 열만한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게임이 재미없다면 아무리 광고를 해도 성공을 거두기 힘들다. 앞으로 새롭고 효율적인 유료화 방법론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는 게임들은 재미있고 훌륭한 게임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