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좋지 못한 글이다.
1. 전형적인 물타기 글.
글의 전체 내용이 일베 수습 기자를 정식으로 임명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고 더 큰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문제가 복잡하고 모호하고 더 큰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어쩌고 저쩌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쓰는 이유는 주로
1) 문제가 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해결책이 뭔지 모를 때, 아니면
2)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물타기를 위해서다.
2. KBS에서 일베 기자를 내쫓는 것 보다 중요한 것?
없다.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서 판단은 둘 중 하나다. 수습을 정식으로 임명하거나 말거나.
예를 들어 보자. 미국에서 짐머만이라는 넘이 트레이본 마틴이라는 흑인 10대를 따라가면서 시비걸다가 육박전이 벌어졌고, 총으로 쏴서 죽였다. 이 문제는 은밀한 인종차별(covert racism)과 공공연한 인종차별(overt racism), 정당 방위 범위, 미국 사법 시스템의 문제 등에 대한 복잡한 사회 구조적 문제가 걸려 있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구조적 문화적 문제들이 한창 재판이 진행중일 때 짐머만이 유죄를 받느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한가? 당연히 아니다. 재판이 진행 중일 때는 유무죄 여부가 제일 중요한 문제다.
3. 그렇다면 일베 기자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더 큰 문제는 없나?
있긴 하다. 표현의 자유와 공공부문에서 이를 수용하는 정도에 대한 논의. 하지만 김완의 글에는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이 단 한 문장도 없다. 쓸데없는 추상만 있을 뿐.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에 대해서는 정해진 규칙은 없다. 어떤 나라는 법률로 규제하고 다른 나라는 문화적으로 규제한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해석하고 주로 여론의 압력을 통해 문화적 규제를 한다.
동일한 것은 규제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 공공부문의 직업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미국에서도 여론에 입각한 규제를 한다. 국민으로부터 사실상의 세금인 수신료를 징수하는 기관이 여성과 호남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는 그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 자신이 혐오 발언을 여러차례 내뱉었는데 이를 규제없이 받아들이라고? 세상에 그런 사회는 없다.
4. 양심, 사상의 자유와 혐오 발언의 차이.
굳이 김완의 글을 선의를 가지고 해석하면 일베 문제를 정치적 우파와 좌파의 문제로 보고, 일베를 탄압하면 좌파 탄압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의 우파가 이런 식으로 써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와 <집단에 대한 혐오>를 구분하지 않고 섞는 논리적 오류다.
일베 기자의 임용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의 정치적 입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여성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자는 적극적인 법률적 보호의 대상이고, 후자는 법률적 제재와 문화적 제재의 경계선상에 있는 격퇴의 대상이다.
기억하라. 심지어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도 직업에 따라서는 제한된다는 걸. 그런데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일삼은 그를 수신료를 걷는 공공부문에서 일하게 할 수는 없다.
5. 일베를 몰아내야 하는가?
그렇다. 일베는 사회적으로 몰아내야 한다. 법률적으로 어려우면 여론을 통해 이들을 사회의 저 쪽 한구석으로 찌그러뜨려야 한다. 건강한 사회란 다수 집단이 일베와 같은 혐오주의자들을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배제해서 어릴 때 부터 이런 식의 사고를 해서는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리와 몸으로 깨닫고 익히는 사회다.
혐오를 마음껏 드러내게 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하겠다는 발상은 반종교 선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같이 놓는 북한식 논리다.
집단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심지어 고등학생이 사제폭탄을 만들어 터뜨리는 집단을 사회적으로 베제하지 않겠다는 건, 이들을 도와 사회적 혐오를 조장하겠다는 범죄적 발상이다.
6. 다시 일베 기자 임용 문제로 돌아와, 그의 임용을 철회해야 하는가?
그렇다. 만약 일베 기자의 발언이 면접을 보기 전에 알려졌다면 이 자를 면접에서 합격시켰겠는가? 앞으로도 KBS는 이런 자를 계속 뽑을 건가?
일베 기자는 수습이었다. 정식 발령 이전이다. 문제가 발견되었다면 임명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설사 법률적으로 애매하더라도 다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용한다는 건 KBS에서 이런 자를 계속 쓰겠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가 없다.
내가 기대하는 정상적인 조치는 이렇다.
- 일베 기자를 임용하지 않는다.
- 만약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 법적 다툼에서 일베 활동은 수습으로 합격하기 전의 일이라서 불임용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결이 나오면, 이를 따른다.
- 대신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을 한 경험을 묻는 항목을 입사지원서에 명기하도록 조치하고 이를 사원 임용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KBS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고 일베 기자를 정식으로 임용하는 길을 택했다. 이 선택이 우리 사회에서 권력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7. 한국 사회에서 집단 혐오를 조장하는 놈과 이 놈들을 감싸는 자들.
일베,
일베 폭탄 테러범에게 책을 보내서 덕담하는 정치인,
내 안에서 일베를 찾는 자들,
일베 관련 물타기 글쓰는 언론인들.
이들의 일부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이들의 일부인 자들이 매우 불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문 : SOVIDENCE